마지막 (단 12:1-4) - 39강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자리에서 떠나면 자연히 주변의 힘센 것을 사모하게 됩니다. 주변의 힘센 것이 자신의 믿음의 대상이 되고 의지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세상의 힘을 사랑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 편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게 됩니다. 즉 옳고 그름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이 뭐라고 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살게 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향해서 마음이 가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의 특성이 나오는데 그것은 세상을 심판의 자리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기의 소망과 꿈을 이뤄주는 장소로만 보고 있지 심판 받아 사라질 대상으로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항상 세상을 둘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 편과 사탄 편으로 나누어서 보기 때문에 신자가 세상을 보는 눈도 심판과 영생이라는 두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세상을 이런 시각으로 보게 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고 자기의 신세를 한탄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세상을 그리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롯이 그 가족과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나올 때 천사의 명령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심판 받아서 멸망할 곳에 미련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심판 받는다는 것을 믿는다면 관심은 그곳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느냐에 두는 것이 당연합니다. 세상이 심판 받는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나오는 것보다 살아가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면 그것은 뭔가 모순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1절에서도 미가엘이란 천사가 나타나서 세상을 심판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의 일입니다. 세상은 온통 힘을 원합니다. 힘 때문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믿지를 않습니다. 세상이 힘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망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 멸망의 원인인 세상의 힘을 신자가 추구해서야 되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힘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힘때문에 결국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힘이 없는 고아, 과부, 나그네, 이방인을 내세워서 하나님 나라를 알리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즉 세상을 힘으로 삼지 않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심판 받는다는 것을 믿습니까? 믿는다면 여러분에게서 나타나야 할 모습은 세상의 힘을 원하는 욕심이 우리에게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욕심이 없어진다는 것은 죄인인 우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힘을 원하는 그 마음이 곧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원수된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그런 마음 때문에 내가 지옥 가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오셔야 했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을 사모하는 그 마음이 우리 안의 힘에 대한 욕심을 극복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심판에 대한 믿음이 하나님 편에서 옳고 그름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 자기 사랑으로 살게 되면 모든 목적이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애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옳고 그름을 아예 생각지도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기 때문에 오늘 본문 1절에서도 책에 기록된 자가 있을 것이라고 했고, 2절에서도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입을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저주를 받을 자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신자라면 무엇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까? 누가 과연 영생을 입을 자이며 누가 과연 저주를 받을 자인가에 관심을 두게 되지 않겠습니까? 누가 과연 저주를 받을 자이고, 무엇이 저주를 받게 되는 모습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그들과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을 알고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 심판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망설이고, 세상 힘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다면 그것이 진심으로 심판을 알고 주님을 따르는 모습이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세상에는 심판을 외치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는 반면에 무조건 평안을 외치는 거짓 선지자가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에서도 거짓선지자의 특징은 심판이 아니라 평안을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제사가 있고, 제물이 있으니까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심판의 장소로 보지 않습니다. 때문에 세상일에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부지런히 벌어야 하고 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신자의 눈에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그들이 어리석고 불쌍한 존재로 비춰져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의 세상 영광은 얼마못가서 끝날 것들입니다. 그러나 심판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받아 사는 신자들은 영원히 빛난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3절). 가치 없는 것을 쫓아 살면서 심판의 자리에서 멸망당하는 어리석은 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생명 책이 우리의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오늘 말씀이 믿어진다면 여러분은 '내 이름은 생명 책에 기록되었다'는 그 한가지만으로도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어야 마땅합니다. 곧 멸망할 세상이 보이지 않고 세상에 있는 좋은 것들만 보인다면 그것은 믿지 않는 자의 모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