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내심 (단 2:17-30) - 5강

신자가 하나님을 믿을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십자가를 바로 알고자 힘쓰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고 그렇게 살고자 힘 쓸 때도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십자가를 바르게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아무일 없이 잘 산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저렇게 하나님을 믿어도 벌을 받지 않고 잘 살고 있다면 저 믿음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이 아닌가? 열심히 예배드리고, 정성껏 헌금 바치고, 봉사 열심히 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니까 저들을 잘 살게 하시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소위 뭔가를 열심히 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런 복으 주시고 형통했다는 말을 듣게 될 때 신자의 마음에는 갈등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믿음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은 현재를 바라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습들입니다. 현재의 모습에서 믿음의 증거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니 믿음의 증거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현재 우리가 누릴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장래에 누릴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미래의 우리의 운명이지 현재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신자는 우리의 현재가 미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현재는 미래를 준비하는 삶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래의 마지막, 즉 하나님의 심판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심판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그 예비하는 것이 곧 현재의 삶입니다. 심판을 안다고 하면서도 현재의 삶은 심판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은 심판을 아는 것이 아니라 단지 머리 속으로 상상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신자가 진심으로 마지막 때에 있을 심판을 안다면 현재의 삶에서 많은 것을 누리며 풍족하게 사는 것보다는 심판에서 벗어나는 것에 더 관심을 두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삶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하나 발생해도 불안해하고 조급해 하면서 참지를 못합니다. 살아갈 소망이 끊어졌다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미래를 위해서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알게 된 자는 관심이 달라지게 됩니다. 느부갓네살은 꿈을 꾸고 나서 그것이 계시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계시를 확실히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의 주위에는 계시를 아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느부갓네살을 분노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느부갓네살은 그 동안 자기 옆에서 계시 전달자의 역할을 했던 박사와 술사들을 모조리 줄이라고 명령으 합니다. 느부갓네살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자기에게 계시를 바르게 알려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목숨도 위태롭게 되자 다니엘은 그 동무들과 함께 하나님께 계시를 알려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다니엘은 계시를 나타내시고 보여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기도했기 때문에 계시를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하나님께 계시를 받고 은사를 받는 조건이 아닙니다. 계시는 인간의 힘과 방법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한 것은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까지도 하나님께 매어있음을 고백하는 것이 다니엘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27절에서 다니엘은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30절에서도 사람이 알게 하신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재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아가 이 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관자이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인간 스스로가 알아 갈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깨달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신자는 항상 말씀 앞에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면서 말씀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말씀을 알고 미래 일을 아는 자입니다. 내가 미래일, 마지막에 심판이 있을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을 때 그 마지막을 모르는 사람들이 현재만 바라보고 사는 모습을 보고 답답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는 자의 반응입니다. 그렇지 않고 말씀을 모르는 자들이 누리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마음이 끌린다면 결국 나는 마지막 심판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마지막으 모르는 사람을 보면서 답답해하고 뭔가를 모르고 살아가는, 헛된 인생을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있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날마다 말씀을 통해서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만이 알 수 있는 은밀한 것이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날마다 새롭게 주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그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고 현재에 나를 잘살게 하는 것보다 미래의 일, 마지막의 심판을 알게 하신 그 은혜가 더욱 크다는 것을 알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입니다.

느무갓네살은 하나님께서 계시가 담긴 꿈을 자신에게 나타내시자 모든 관심이 계시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계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은 계시를 알고자 하는 갈급함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는 것은 미래 일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마지막에 심판이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말씀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말씀으로 우리를 주관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계시는 나타내셔서 마지막 일을 알게 하시고 현재의 삶이 마지막으 준비하는 삶이 되도록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