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석 (단 2:31-45) - 6강

어떤 사람이 실현 가능성도 없는 일을 하고자 할 때 사람들은 '꿈꾸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꿈이라는 것은 그 말 자체가 '헛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꿈속에서 살아갑니다. 앞으로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소망을 가득히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꿈이라도 좋으니까 이렇게 되어 봤으면 좋겠다라는 말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꿈이라는 것이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고자 하시는 방향과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즉 신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인간의 꿈이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헛된 꿈들이 하나님을 오해하도록 만들고 잘못된 발상으로 하나님을 찾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꿈을 이뤄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꿈을 버리고 하나님의 소망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촉구하십니다. 결국 우리의 꿈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비는데 크나큰 장애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느부갓네살의 꿈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느부갓네살 한 사람만늘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라 온 바벨론 사람,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위해서 그 당시 가장 강한 강대국의 왕인 느부갓네살에게 꿈으로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미래의 일은 하나님께서 미리 작정해 놓으신 일이고 인간은 그것을 고치거나 변경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 땅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미래의 일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미래의 일을 미리 알리심으로 우리에게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신다고 했습니다. 즉 현재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를 알고 준비하는 자가 진짜 미래를 아는 사람이고,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미래를 안다고 말을 해도 그는 미래를 믿지 않는 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땅의 나라는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기 위해서 준비하는 장소입니다. 때문에 준비를 위해서 잠시 거하라는 세상에 내 삶의 목적을 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를 벗어나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은 멸망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고 눈에 보이는 세상에 모든 소망을 두고 삽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까지도 세상에서 누리는 부요함과 번성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으로 보내고 지금 누부갓네살을 통해서 그들이 브토록 열망하는 강대국이라는 것도 결국 망한다는 것을 계시고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꿈의 내용을 보면 느부갓네살은 하나의 신앙을 보았습니다. 머리는 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 다리는 놋이고 종아리는 철이고 그 발은 철과 진흙이 섞인 모습의 신상이었습니다. 이것은 가장 강대국인 바벨론을 머리로 해서 온갖 약하고 강한 나라가 다 모여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신상을 사람이 뜨이지 아니한 돌이 날아와서 부서뜨려 버립니다. 사람이 뜨이지 아니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던졌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세상이 되어질 일입니다. 세상은 무너집니다. 그 어떤 강한 모습을 하고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던지신 작은 돌에 의해서 무너지게 됩니다. 인간은 모두가 자기를 위해서 일합니다. 자기의 자랑을 위해서 일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고 자기의 이름을 위해서 일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의를 모두 깨버리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신상의 모습은 느부갓네살에게는 자신의 현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는 강한 힘을 소유한 자로서 모든 나라의 머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돌멩이에 의해서 무너지게 됩니다. 돌멩이에 의해서 무너지는 세상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을 무너질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조건을 얼마든지 갖고 있는 장소로 봅니다.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세상에서 행복으 찾으 수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보다도 돈을 행복의 조건으로 여깁니다. 하나님 나라보다 좋은 집을 행복의 조건으로 여깁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보다 자신의 남편과 아내를 행복의 조건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헛된 소망을 하나님이 던진 돌멩이에 의해서 무너뜨리겠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의 힘으로 살지 않습니다. 다니엘을 보더라도 다니엘과 그 세친구는 자신이 거하는 나라가 강하든 약하든 상관없이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살지만 자신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었기 때문에 영원한 하나님의 권세를 의지했고 따라서 세상 나라의 힘과 상관없이, 자신의 환경과도 상관없이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 나라만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44절을 보변 하나님은 영원한 나라와 무너질 나라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믿음이고 이 믿음으로 사는 자는 자신에게 있는 세상의 것이 강하든 약하든 상관없이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세상이 볼 때는 정말 무가치한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치 없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세상의 모든 권력과 힘을 무너뜨립니다. 십자가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내가 부인하지 못한 세상의 힘과 물질에 대한 것,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십자가로 인해서 무너뜨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는 죄인된 인간인 나를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날마다 새롭게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세상의 마지막을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재의 삶에서 내가 힘으로 삼고자 하는 땅의 것을 십자가 앞에서 하나하나 무너뜨려 갈 때 여러분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쌓여 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