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신 1 (단 3:1-12) - 8강

사람들이 남을 비판하고 공격할 때 보면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언제나 자기 입장에서 상대방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입장에서 남을 보기 때문에 남이 하고 있는 것이 자기가 보기에는 무조건 틀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은 무조건 옳고 남의 것은 무조건 틀리다는 생각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갈 때 그것은 자기 것을 주장하는 고집으로만 보여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의 문제에서도 보면 기독교 입장에서는 다른 종교는 다 틀린 것이고 구원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의 입장에서는 또 그들 나름대로 고집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나 다른 종교가 같은 종교의 입장에서 서로 자기 것을 주장하다 보면 결국 부르는 신의 이름만 다르지 추구하는 것은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불교가 추구하는 것이나 기독교가 추구하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을 말한다면 불교도 죽어서 극락에 가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가 사랑을 말하고 자비를 말한다면 불교에도 사랑이 있고 자비가 있습니다. 이것은 유교도 마찬가지이고 다른 종교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독교는 단지 종교이지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가 아니라 인간의 머리 속에 상상하고 있는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내세우기 때문에 이런 기독교가 불교의 부처를 가지고 우상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단지 기독교라는 종교단체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만 보여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언제나 성경적인 기독교가 무엇이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깊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느부갓네살이 세운 신상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이것을 가리켜서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왜 우상인가는 알지 못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단지 자기 고집을 내세울 뿐입니다. 우상을 말하는 사람들은 십계명을 근거로 삼아서 어떤 형상이라도 만들어 절하면 그것이 우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자들이 어떤 형상에 절하지 않고 있으면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까? 골로새서 3:5에 보면 탐심을 우상숭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형상이 우상이 되는 것은 그 형상 앞에 나오는 목적이 자기가 잘되는 것일 때, 세상에서 잘되고 자기 몸을 높이고자 하는 탐심을 가지고 나올 때 그것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상은 불교의 부처만이 아니라 기독교 안에도 우상은 얼마든지 존재하는 것입니다. 헌금도 우상일 수 있고, 예배도 우상일 수 있고, 봉사도 우상일 수 있고, 기도도 우상일 수 있습니다. 어떨 때입니까? 나오는 목적이 땅에서 복을 받기 위한 것일 때입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헌금하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예배드린다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면 신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라 진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신은 우리의 소망을 땅에 두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소망을 하늘에 두라고 하십니다.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라고 하십니다.

느부갓네살의 신상도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신상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금신상을 만들어서 거기에 절하라고 한 것은, 신에게 자신들의 정성과 열심을 보여서 자기의 나라를 지켜 주고 번영시켜 주는 신을 기쁘게 해서 그 신의 힘으로 나라를 굳건히 해보겠다는 생각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형상을 만들어 절하기 때문에 그것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까?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살아갑니까? 진심으로 주님만이 여러분의 소망이고 주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십니까? 이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자신이 소망으로 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자기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신, 우리에게 번영을 약속하고, 땅의 복을 약속하는 거짓된 신을 섬기지 않기 위해서는 날마다 참된 신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분명히 알고 그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하면서 확고한 믿음 위에 서 있을 때 그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이며 신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