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5강 2009. 4.12설교)

고전 2:1-5  믿음과 십자가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지혜는 무용지물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내 믿음을 보시고 구원해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들은 참으로 철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 이래로 사람들은 자신의 지혜와 힘을 동원하여 구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으로 구원에 이른 자가 없음을 증거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4,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는 말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그로 인해 믿는 자가 많이 발생하였지만 그 모든 것이 사도의 말과 사도의 지혜로 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인간의 뜻과는 무관한 채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이 전해지고 구원 받는 자가 있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말이나 지혜와 무관한 것이라면 사람의 말재주나 능력이 칭송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 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각기 자기 임장에 따라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을 골라 추종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책망하면서 복음은 사람의 지혜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임을 강력하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 구원이 자신의 능력으로 된다는 말을 하면 당장 이단으로 낙인찍힐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신이 뭔가 하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이처럼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신앙으로 여기는 행위가 있어야 구원 받은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야 말로 구원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는 것보다는 구원도 받을만한 사람이 받는다는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인간의 사고와 이성에 맞게 맞추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의 이성과 지혜를 초월하여 일하시는 것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고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제 아무리 복음이라고 해도 자신의 이성에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고 그들은 복음을 사람이 얼마든지 이해하고 환영할 수 있는 말로 바꾸고 변질 시켜서 결국 다른 복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초월하여 주어지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할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의 지혜와 말로 권하여서 예수님을 믿게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어리석은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흘린 예수님의 피의 은혜는 오직 하나님께서 사랑하기로 작정하시고 택하시고 부르신 백성에게만 해당됩니다. 평소에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했고, 십일조는 철저하게 잘했으며, 성경은 몇 번을 봤고, 교회에서 봉사는 얼마나 했는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묻지 않으시고, 설사 그가 악한 자라고 해도 기어이 구원하고야 말겠다는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구원을 이해를 못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신다는 말에는 전혀 싫어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당연히 구원받을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의 신앙생활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일도 수없이 빠지고 기도도 하지 않고 자신보다 더 형편없는 신앙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는 말에는 반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도 구원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기 이성으로 하나님께 접근하는 결과인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2절)고 말합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 아무것도 알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구원의 능력은 오직 십자가에만 있음을 알기 때문에 십자가 외에 다른 것에는 마음을 두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오셔서 만나는 자리는 예수님의 피가 흐르는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는 것이고, 자신의 모든 죄를 덮어주시는 용서와 자비하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하늘의 그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죄인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만 생각하게 되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신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는 자연히 십자가가 전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다 배워서 잘 아니까 이제는 십자가 밖으로 나가서 선행을 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신자가 행할 일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의 피로 죄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인의 자리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는 졸업을 하였으니 이제는 죄인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말고 신자로서 선행을 행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신자다운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자 신자가 죄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죄와 상관이 없는 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요? 비록 죄 용서를 받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것은 용서 받고 다시 죄짓고 또 다시 용서 받는 삶이 계속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가 자신이 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자신의 죄에서 확인하면서, 그러한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십자가의 능력임을 날마다 깨닫고 주를 바라보고 주의 의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사나 죽으나 예수님의 은혜가 전부인 삶의 길을 가는 것이 신자라는 것입니다.



죄란 십자가의 은혜가 어떠함을 알게 해줍니다. 만약 인간이 헤어날 수 없는 죄의 자리는 외면한 채 신자로서 행해야 할 것에 몰두한다면 그에게 십자가의 은혜는 이미 과거의 것으로 흘러가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항상 죄를 말하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외치는 것이야 말로 신자를 십자가에만 붙들어 놓으려는 한쪽에 치우친 복음으로만 들려질 것입니다. 즉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외에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한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러한 말이 나오는 이유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자신의 이성과 사고로 성경을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연구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이성에 맞는 말로 맞추어 가기 때문에 오직 십자가만을 외치는 복음은 한쪽에 치우친 반쪽 복음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5절의 말씀대로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만을 믿게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되는 것이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만을 자신의 전부로 바라보게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신자에게 십자가만을 알게 할 뿐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을 보게 하고, 주가 흘리신 피의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하고 감사하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신자는 주로 인해서 모든 것이 충족된 복된 길을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가 찬송하고 감사하고 자랑할 것은 주의 은혜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한쪽으로 치우친 믿음이라면 저는 기꺼이 예수님의 십자가에만 치우친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믿음에 대한 여러분의 기존의 생각을 버리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서 믿음이 자라고, 그 믿음이 역사하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능력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입니다. 물론 믿음이 역사함으로 신자는 능력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능력의 삶은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오직 십자가만 알기를 원하는 삶입니다. 다른 것에 마음이 가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에만 모든 마음이 향하는 것이야 말로 믿음의 능력이고 역사입니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은 믿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수준의 행함을 보일 것으로 여깁니다. 이것이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여러분을 십자가만을 알기를 원하는 신자로 새롭게 만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이 내 인생의 전부라는 고백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그가 온전히 믿음에 붙들린 신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