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30강 2009.10.11 설교)

행 2:37-41  믿음과 회개


신자의 구원을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회개 없는 구원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린 사람들이 ‘우리가 어찌 할꼬’라고 묻자 베드로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말합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이 곧 구원을 의미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회개는 분명 구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회개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다면, 구원 이후에 회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회개를 함으로 이미 죄사함 받았고 구원을 받았는데 구원을 받은 자가 또 다시 죄사함을 위해 회개한다는 것은 뭔가 모순이 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원죄와 자범죄라는 것입니다. 원죄는 아담의 죄로써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나오는 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범죄는 원죄로 인해서 발생하는 죄라고 하면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는 원죄를 회개하는 것이고, 구원 받은 이후에는 사람이 계속 범하는 자범죄에 대해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범죄는 구원과는 상관이 없지만 세상의 복을 누리는 것과 연관이 있어서 자범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복을 누릴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죄를 원죄와 자범죄로 구분하면서 구원 이전과 이후의 회개를 구분하는 것은 성경을 인간의 상식과 이해에 맞게 개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그 누구도 죄를 구분하여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에 원죄와 자범죄란 구분은 없습니다. 그냥 죄일 뿐입니다. 사람의 속에 죄가 있어서 죄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죄의 행동이 나오는 것이지 스스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20)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앞서 말한 대로 이미 구원된 신자에게 회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구원파의 박옥수란 사람은 이 문제를 ‘구원 받은 신자가 회개하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는데, 구원 받은 신자가 또 다시 회개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를 믿지 않는 불신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에 어떻게 반박하시겠습니까?지금까지 말씀드린 회개에 대한 의문과 혼란은 회개를 구원의 용도로 생각하고, 또한 자신이 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오해로 인한 것입니다.



38,39절을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회개, 세례, 죄사함,  성령, 이 모두는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에게 하신 약속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 죄사함, 성령 받음, 이 모두는 인간의 결심이나 행동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에게 하나님이 이루신 축복인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스스로 하는 회개가 있다면 그것은 뉘우침이고 반성에 해당됩니다. 가룟 유다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룟유다가 회(悔)는 했지만 개(改)는 하지 않아서 지옥 갔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모두가 인간이 만들어 낸 그럴싸한 말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사람은 회개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할만한 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에게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회개는 과연 무엇일까요? 회개는 단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한 말은 하나님이 하게 하시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마음이 예수님에게로 돌이켜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게 하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회개는 곧 하나님이 신자에게 일으키신 기적입니다.



말 4:5-6절을 보면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고 말합니다. 



선지 엘리야를 보내서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 돌이키게 하겠다는 것은 엘리야가 오기 전에 아비와 자녀의 상태는 단절의 관계였음을 의미합니다. 아비 즉 하나님의 마음은 자녀를 향하지 않았고, 자녀 역시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않은 상태로 살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려면 죄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 일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이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가신 뒤에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때문에 회개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이 이루시는 일입니다. 신자로 하여금 자기 죄를 보게 하시고 사망에 갇힌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주를 보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생명임을 깨닫게 하시고, 그래서 예수님이 나에게 가장 존귀하신 분이라는 고백으로 살게 합니다. 이것이 마음이 주께로 돌이킴을 받은 것이고 이것을 회개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마음에 찔림을 받고 ‘어찌할꼬’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회개하여 세례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을 문맥 그대로 이해하면 회개하면 성령 받는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면 성령도 받고 구원도 받는다는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는 예수님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한 자가 예수님에게로 마음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도 예수님에게 마음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결국 회개는 믿음이 있음으로 가능한 것이고, 믿음이 있는 것은 이미 성령 받은 상태를 뜻하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이미 예수님의 용서의 능력 아래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회개해서 죄사함 받고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과는 맞지 않는 모순과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창세전에 이미 택하셨습니다. 즉 신자는 세상에 날 때부터 하나님의 택하심에 의해서 구원된 자로 계획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회개는 그가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부르심을 받은 자임을 증거하는 증거물입니다. 세상에 두고 살던 마음을 예수님에게 두면서 세상의 것이 없어도 예수님이 함께 하심이 기쁨이 되는 회개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지금도 자기 백성에게 함께 하시고 일하고 계심을 만방에 나타내고 증거하는 증거자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이루시는 신자의 회개인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단순히 감정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우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눈물을 흘리고 울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회개의 증거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자신이 가는 길이 틀렸음을 아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서의 출세와 성공이 곧 행복이라는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악한 생각임을 깨닫고 생명이신 예수님에게 마음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죄가운데 있고, 죄를 이길 수가 없으며, 그래서 나를 죄에서 건지실 예수님만이 희망이고 의로움이며 가장 존귀한 분임을 믿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에게 돌이키는 것이 성령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해야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왜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는 말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신자의 회개가 곧 죄사함을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구원 받은 자라고 해도 회개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수시로 세상에 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끄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것으로 낙을 누리는 것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의 실체가 교회에 와서 말씀을 접할 때 생생하게 발각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예수님이 아니면 안되는지를 실감하게 하면서 마음을 주께 두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생활입니다.



신자가 말씀으로 인해 깨닫는 것은 죄에 갇힌 우리에게 비취는 생명의 빛입니다. 예수님의 용서와 자비하심이 죄인된 자에게는 빛이요 생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용서로 인해서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이 역사하는 현장이고, 마음에 찔림을 받은 자에게 있는 회개입니다.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매일 회개가 계속되게 합니다. 이 회개는 말씀을 가지고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죄에 대해 찔림을 받게 하시고 예수님의 피의 용서가 영광의 빛이 됨을 깨닫게 하시는 예수님의 일로 가능하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신자는 항상 예수님으로 인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기 구원 문제에 매어 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구원의 문제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 있는 신자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살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