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9강 2009.5.10 설교)

엡 2:8-10  믿음과 은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고 할 때 믿음의 주체를 자기에게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의 믿음과 자신의 믿음에 차별을 두려고 하고, ‘누구의 믿음이 더 나은가?’라는 경쟁으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은 처음부터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의 자질로는 예수님을 믿을 가능성이 단 1%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나는 부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예외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자는 단지 소유한 재물의 양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부자는 자신의 재물을 귀히 여기고 재물을 힘으로 삼고 재물을 의지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재물을 힘으로 삼고 재물을 의지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는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의 양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부자라는 말씀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막10:26)라며 놀랍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10:27)였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하나님으로만 가능한 것이 구원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믿음의 주체를 인간에게 둘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는다면 구원은 사람으로는 안되고 하나님만으로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헛말이 되고 맙니다.



본문 8절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말씀합니다. 이 말씀처럼 인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은혜를 인하여’라는 말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인간에게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예수님을 믿는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어진 믿음에 의해 새롭게 된 나라는 생각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자기의 뜻, 자기 열심, 자기 의지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니 숨을 쉬고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자기 뜻, 자기 열심, 자기 의지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사실  자기 뜻이 없고, 자기 의지가 없고, 자기 열심히 없는 인간이라면 죽은 자거나 아니면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 드린 것은 뜻과 열심, 의지가 전혀 없는 채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옛 사람의 때의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엡 4:22절을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옛사람의 특징은 자기 욕심을 따라 사는 것에 있습니다. 즉 옛사람의 뜻이나 의지, 열심의 모든 것은 다만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발휘될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주어짐으로써 세상이 아닌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된 신자는 더 이상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한 길을 가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두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길에 복종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 소원이 마음에 있는 신자라면, 그의 뜻이나 의지, 열심, 이 모든 것은 자기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증거되는 방향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냐?’라는 반문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 자의 어리석은 말일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시고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의지대로 우리를 사용하고 계시는 참된 현실에 눈을 뜨지 못한 소경의 말에 불과할 뿐입니다.



대개의 교회에서 강조하는 열심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면 그 결과가 자신에게 복으로 돌아온다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열심을 믿음으로 강조하고 복을 받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강조하면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의 열심을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도구로 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게으른 것이며, 따라서 복을 받지 못하는 믿음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하지만 믿음에 의한 신자의 열심은 행함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열심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의를 자랑하고 주님의 의만 높이고자 하고 주님이 가신 고난의 길에 자신도 함께 동행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그 소원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세상보다는 하늘에 더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열심이 있게 할 것이고, 그래서 그 열심은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예수님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이 있게 할 것입니다. 그래도 믿음이 신자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까요? 그런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산을 바다에 던지우라는 말도 이룰 만큼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의 믿음이 신자에게 주어졌다면 믿음에 의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 현상이 곧 나만을 바라보던 내가 주를 바라보게 되고, 내 의를 좇던 내가 나의 죄인 됨을 자각하며 예수님의 피만을 의로움을 인정하게 되고, 내 뜻이 아니라 주의 뜻에 복종하며 살기를 정말 간절하게 소원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의해서 발생하는 기적의 사건입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현대 교회가 말하는 대부분의 믿음은 믿음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강조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고, 자기 의와 자기 열심을 보여주기 위한 믿음도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신자라는 것은 내가 교회를 다녀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은 될 수 있겠지만 신자는 교회 다님과 상관없이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을 신자 되게 하신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가 자기 열심을 동원하여 자신의 뜻을 성취하고자 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뜻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 자체가 그가 신자가 아니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음의 증거를 자꾸 행함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있으면 그에 따른 특별한 행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행함이란 아마 구제나 전도, 이웃 사랑, 이러한 것을 상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있는 모든 신자는 모두가 구제를 열심히 해야 하고, 전도해야 하고, 사도 바울처럼 여기저기 다니면서 교회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까?



물론 구제나 전도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동일한 구제와 전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형편과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부득이 할 수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신자라면 구제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설령 먹고 살기 어려운 가운데서 돈을 모아 구제한다고 해도 그 수준이 돈 있는 사람과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믿음을 특별한 행함에서 찾아야 할까요?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특별한 행함을 하게 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모습은 모든 신자에게도 동일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는데, 그것은 죄인의 자리에 있던 우리를 구출하시고, 저주에 속한 자에 불과한 우리를 의롭다 하신 예수님의 의에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그 의만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의한 신자의 실천입니다.



신자는 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형편과 환경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재물이 많아도 재물을 힘으로 여기지 않고 여전히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돈이 자신을 생명에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의 은혜가 생명에 있게 했음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는 재물보다 예수님의 은혜가 더 귀함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자기 수중에 있는 재물도 자기 소유로 여기지 않게 하는 것이고, 이 믿음으로 구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제는 구제한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구제 하게 하신 주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행함도 자랑할 것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자신의 삶에서 살펴야 하는 것은 ‘내가 열심이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어떤 것이 십자가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살피게 되면 ‘역시 나는 신자답다’라는 생각보다는 ‘나는 십자가에서 멀어진 채 살아가는 존재에 불과했구나’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조차도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입은 바 되었고, 믿음을 선물로 받았음을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이 감사함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실패에서도 유일하게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는 ‘왜 이렇게 하십니까?’라는 원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일에서도 다만 ‘주님이 옳습니다’라는 고백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주 안의 세계입니다. 이런 고백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하늘의 선물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영원토록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일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로 믿게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내 마음에 기쁨으로 자리하는 자가 된 이 복됨을 깊이 감사할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