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1강 2009.3.8. 설교)

롬 4:1-8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가장 쉬운 질문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이 믿음에 대한 문제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믿음의 분량은 적고, 부족한 면이 많지만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고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믿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현대 교인들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천국은 여러분 자신이 생각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그 믿음이어야 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믿음에 속은 채 멸망의 길을 달려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믿음을 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을 복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게 되면 믿음에 차별을 두게 됩니다. 즉 열심이 있는 믿음과 열심이 없는 믿음으로 구분하면서 하나님은 열심 있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그러한 믿음이 있는 신자에게 더 많은 복을 주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을 갈구하는 세상의 종교성이 만들어 낸 믿음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가 말하는 믿음은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은 세상의 믿음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보려는 것입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김 받게 된 근거가 무엇인가를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은 믿음에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지 않으면 믿음이 아니라는 말이 가능해 집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신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창 15:4-6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이 내용을 보면 아브라함이 믿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을 것임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 믿음에는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믿는 믿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인 것입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믿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신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신에게 나의 정성을 보여주면 신은 나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이 그 본질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기 소원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향합니다. 자기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실 것을 기다리는 믿음인 것입니다.



사람은 절대 이 믿음에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믿음은 인간의 소원은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인간의 욕망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인간의 뜻은 부인되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놓은 채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실지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을 인간은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막연한 것이고 추상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믿음이 아니라고 반발할 뿐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세상이 생각하고 말하는 믿음이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행함을 기준으로 해서 믿음을 판단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믿음이 좋으면 그만큼 행함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행함은 대개가 교회 생활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도덕과 윤리의 틀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선행이 많으면 믿음이 좋은 것이고, 교회에서의 활동이 많고 부지런하면 믿음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생각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브라함이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 여김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의 행함은 우리를 의의 자리로 이끌어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시라는 것을 믿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라는 것을 믿는다고 하기 전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곧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사실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창세전에 이미 계획된 것이고, 그 계획이 아브라함을 향한 약속을 시작으로 점차 구체적인 사건이 되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는 마귀의 그 어떤 훼방에도 지지 않으시고 강력한 힘과 권능으로 자기 뜻을 이루신 하나님의 열심히 들어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바로 이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시고, 십자가의 피가 나를 구원하심을 믿는다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문제는 자기 구원으로 즐거워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점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만약 자신의 가문이 번성하게 될 것을 믿고 그것으로 기뻐한 것이라면 그 믿음은 세상의 믿음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이루실 분임을 믿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신자라고 이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루어주실 복을 바라보고 그것을 즐겨하면서도 그것이 믿음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믿음의 함정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은혜를 믿고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도 그 은혜와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가 천국에 가는 것을 믿고 그것으로 기뻐하는 것이라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결국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생에 대해 질문한 부자처럼 모든 것을 버리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등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좇으라고도 말씀을 하셨고, 세상에서는 나그네로 사는 것이 신자고 좁은 길로 가야 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인간이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영광 이러한 것들이 없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신자는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가는 것이 곧 생명에 이르는 것임을 믿습니다. 다른 길은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에 이르게 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에 있는 신자는 가는 길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예수님이 가신 길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참된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에는 인간의 소원과 욕망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믿음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부름 받은 자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내가 아니라 주를 위해 살아가지 않습니다. 세상의 믿음은 오히려 예수님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고 할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믿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노력이 개입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인간도 노력하면 믿음을 향상 시킬 수가 있는데 그러한 노력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인간의 노력이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노력하면 믿음이 향상된다고 고집합니다.



 그래서 노력하여 믿음을 향상시켜서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소원이루고 기도에 응답을 받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은 인간으로 하여금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끊임없이 자신이 노력하고 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소위 믿음이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노력할 부분은 없다고 해버리면서 자신이 해야 할 무엇인가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로인해서 막막함을 느끼게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갖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뭔가 하는 것이 있어야 그것으로 자신을 확인하고 안심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대한 오해입니다.



세상은 인간이 행함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믿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자신의 행함을 보시고 자기 믿음을 판단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을 용납하지 않는 믿음에 대해 막막함과 함께 불안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하시고 그 말씀을 이루시기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보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피 흘리게 하시고, 우리를 그의 지체가 되게 하셔서 생명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은 쉬지 않고 계속됩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