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 말미암아(갈1:1-5) - 1강

사도 바울은 여러 교회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중의 하나가 갈라디아서입니다.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라는 지방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쓴 편지인데 사도 바울은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그 동기는 갈라디아에 있는 개종한 이방인들에게서 유대인의 율법에 대한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할례와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에 대한 잘못됨을 지적하고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는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살피면서 우리에게서도 보여지고 있는 많은 율법적인 부분들의 잘못을 깨달아야 할 것이고,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를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은 그 본성상 자신의 행위를 떠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종교성은 행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행위나 의식이 없는 종교라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행위와 의식을 통해서 자신이 지금 믿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종교는 의식을 신성시하고 그 의식을 통해서 신과 만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종교심을 우리가 이해를 하고 기독교를 바라보고 믿음을 생각할 때 현대 교회의 많은 잘못된 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율법을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면서도 믿음의 확보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눈에 보이는 행위와 의식을 믿음의 증표로 삼고자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결국은 율법을 신뢰하고 있는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잘못된 점들을 갈라디아서를 배우면서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진실로 신뢰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시작하면서 뭔가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의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에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이라고 시작하고 있는 말씀을 보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두 대립을 통하여 복음이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이 한 절을 통해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부정해 놓고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라는 말씀은 사람과 관계된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좋든 싫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워했던 사람도 자신이 외로울 때는 그리워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문명과 문화가 발달하고 번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힘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면 그 힘이 곧 자기의 힘인 것처럼 든든해합니다. 유명한 사람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자랑으로 삼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법칙인 것입니다. 때문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고아와 과부, 또는 나그네는 세상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것을 부정해 버립니다. 자신은 사람을 의지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 때문에 사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 보면서 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사도된 것은 사람이 세운 것도 아니요,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세움 받은 것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서 사도가 된 것이기 때문에 내가 힘으로 삼고 의지할 분은 하나님이지 세상이 아니요 사람도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기독교이고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힘있는 자를 두려워하는 것은 힘있는 자를 통해서 세상의 것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힘있는 자란 꼭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야 힘있는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존재라면 나에게는 힘있는 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장사를 한다면 손님은 모두 자신에게는 힘있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손님의 눈치를 보면서 비위를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애를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신은 하나님으로만 만족한다는 뜻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이 사도된 것, 세상을 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힘있는 분은 하나님이고, 자신이 두려워해야 할 분도 하나님이지 세상의 사람들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을 소망하는 자의 모습이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사회인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교회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세상에 힘있는 사람들이 어른노릇하는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목사, 장로라는 것이 지위나 계급으로도 존재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내세우고 자신에게 있는 것을 자랑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지하는 모습이 팽배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보다는 헌금을 많이 하는 교인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목사를 더 믿으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많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흔히 교회는 '우리교회는 목사님이 계셔야 된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있는 모습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목사가 재력이 있는 교인 때문에 힘을 얻거나, 열심 있는 교인 때문에 힘이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힘으로 삼고 있는 신앙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나 신자가 사람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힘을 얻는다면 그 신앙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있는 신앙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은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신자라는 것은 목사가 신자 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으로 인해서 신자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신자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신자는 불의와 죄악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며 타협하지 않는 신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사람으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신자가 목사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 또한 교회에서 힘있는 자의 눈치를 보거나 자기를 도와준 신자를 의식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자기는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만을 기준으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는가? 분명히 '하나님 때문에 삽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힘으로 삼고, 누구의 뜻을 기준으로 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과연 사도 바울과 같이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끌려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단지 우리를 만드신 분이라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피조물은 오직 창조주의 뜻에 따라서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내 삶을 책임지시고 나를 위해서 계신다는 것만 생각하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이 땅에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지금의 나의 모습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이것을 꼭 기억하고 살 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