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 속한 자(갈 3:26-29) - 7강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받으시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만을 받으신다는 알아야 합니다. 보통 신자들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받으신다고 착각을 하는데 전혀 그렇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찾으실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내 보였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모두 거부하십니다. 제아무리 인간이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거룩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인간의 것은 더러운 것이기 때문에 받지를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배를 드렸다고 해서, 헌금을 했다고 해서, 기도를 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당연히 기쁘게 받으실 것이라는 생각은 크나큰 착각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우리들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라고 수없이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믿음을 우리에게 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믿음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에서 보여지는 믿음은 천태만상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의 전시회라고 할만큼 믿음이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것, 헌금하는 것, 구제하는 것, 선교하는 것, 봉사하는 것, 믿음을 이런 여러 가지 모습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행위가 없으면 믿음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버립니다. 전도하고 헌금하고 구제하고 선교하는 것 등을 통해서 보여지는 믿음이 바로 인간이 스스로 만든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찾지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한다고 본문 26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성경 어느 곳에서 사람이 전도하고, 헌금하고, 구제하는 인간의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구절이 있습니까? 분명히 그런 구절은 없다라고 말하고,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그 믿음의 증거를 우리의 행위에 두어 버린다면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한다는 말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은 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른 것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다른 것은 전혀 믿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삼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믿음의 대상으로, 내 힘으로 삼는 것이 믿음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다 없다라는 말은 예수님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느냐 의지하지 않느냐를 묻는 것이지 봉사 열심히 하느냐, 헌금 잘하느냐, 전도 잘하느냐를 가지고 믿음이 있다 없다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예수님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이 예수님이라는 것은 내 생활이 내 관심을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는 쪽으로 움직여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내 몸에 대한 문제는 2차적인 것이고 오직 예수님만 높여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보면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사람들이 모두 예수에게로 간다고 하자 그는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쇠하여도 예수님이 흥하여지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흥하여지려고 하는 것은 믿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혀 있을 때 자신을 시기하던 무리가 자신을 비방하면서 바울에 대한 경쟁심으로 복음을 전파했을 때 어찌됐든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하면서 자신에 대한 비방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는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자기 중심의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내 중심으로만 나아가려고 합니다. 내가 해를 입고, 내가 공격당하는 것을 참지를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것 때문에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평소에는 자기를 위해서 열심히 살다가 주일에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교회일 하면서 자신이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을 말할 때 가장 힘든 것은 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 중심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부인을 말합니다. 즉 자기 포기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즉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삶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삶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믿음은 힘든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세상의 나는 어떻게 되든 나는 주님 안에만 있기를 원한다고 할 때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포기할 수 없는데도 자기를 포기하고 주님만이 높여지기를 원하며 주님의 중심으로 살아가는 믿음이 보여지고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것을 기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살고, 자기를 중심으로 살고, 자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행동하는 모든 것은 믿음이 아닌 것을 명심합시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하나님 아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그것은 믿음의 모습, 즉 자기를 위하지 않고 주님을 중심으로 사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라고 말씀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안에서'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할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땅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늘에 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인간을 하나님 나라에게 거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아들 되신 분은 예수님 한분뿐입니다. 갈라디아서 3:16절을 보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즉 아브라함을 통해서 약속하신 자손은 오직 한분 그리스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29절을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자니라"는 말씀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앞에서는 한분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시고 뒤에서는 우리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안에서라는 말이나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자만 예수안에 있는 자, 즉 그리스도께 속한 자이고 그 사람만 아브라함 자손으로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믿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그리스도만을 중심으로 사는 자는 주님께 속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되신 그리스도와 동일하게 아들로 여기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창 15:5). 한분 안에 다수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 속한 것입니다.

한분안에서는, 즉 그리스도안에서는 그리스도와 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주안에 주가 내안에'라는 말로 하나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한분안에 있는 다수도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각각이 아닙니다. 그래서 28절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보지 않고, 자기를 믿지 않고, 자기를 중심으로 살지 않고 예수님만 붙들고 예수님만 의지하는 자를 하나님의 아들된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붙든다고 하면서 결국 자기를 위해서 붙든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이 단 하나 기억할 것은 누구를 위해서 사느냐입니다. 과연 내가 나를 포기하는 가운데서 주님을 믿고 있는가입니다. 신자가 자기를 중심으로 살지 않을 때 남이 자기에게 뭐라 한들 그것 때문에 주님을 향한 믿음이 방해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중심으로 사는 자는 남이 하는 말, 남이 하는 행동 때문에 쓸데없이 상처입고, 흔들리고, 마음 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자기를 중심으로 살 때 보여지는 것은 나이고, 나를 나타내고 자랑하는 그것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언제나 주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된 모습을 보이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