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업을 이을 자(갈4:1-7) - 8강

사람은 누구에게나 환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만났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대립입니다. 서로 자기가 살아온 환경이라는 시각에서 상대방을 바라보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환경이 아닌 다른 환경에서는 마찰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오면서 환경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을 때 이제 대학교라는 환경이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요구하는 것에 순종하는 것이 대학 생활을 하는 것이지 대학이라는 환경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고등학교 때의 환경만을 생각하고 그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대학 생활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은 뭔가 예전의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유업을 이을 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유업을 이을 자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아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환경에서 자란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자기의 아들이 어릴 동안에는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두어서 정한 기간을 지내게 하신 것 같이 유업을 이을 자, 즉 하나님의 아들이란 명분으로 모든 것을 상속받을 주인이지만 어렸을 동안에는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하게 하셨는데 정한 기간이 되자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뀐 환경입니다. 초등학문의 종에서 유업을 이을 자로 바뀐 것입니다. 서로 전혀 다른 환경입니다. 유업을 이을 자로서의 환경은 초등학문의 종으로 살아왔던 그 환경을 벗어버릴 것을 요구하는 데 벗어버리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업을 이을 자로서의 환경,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가는 환경과 초등학문 아래서 종으로 살아가는 학문은 어떻게 다릅니까?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서로 어떻게 다르내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사람으로 구분하는 것은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교회 다니는 것과 다니지 않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되고 안되고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과 다니지 않는 것의 차이점은 살아가는 생활 환경이 다르다는 것뿐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헌금하고, 하나님 이름 부르면서 기도한다는 것의 차이로 끝나는 것이지 그것이 하나님 아들과 아들이 아닌 자의 차이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과 아들이 아닌 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살아가느 방식 자체에 대한 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선 6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 되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의 영이 우리 마음 가운데와야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들의 영, 즉 성령이 와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부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혼란스러워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냐는 것입니다. 교회 다닌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교회 다닌 사람은 모두 아들의 영을 받은 사람으로 봐야 합니까? 물론 그럴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여기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은 교회 다니기 때문에 교회 문화에 젖어서 하나님이란 신을 아버지라는 다른 호칭으로 불러주는 정도의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은 내가 의지할 분으로서의 아버지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존재할 수도 없음을 알고 오직 나의 힘이요 나의 도움으로서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들입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밖에 없는데 우리를 또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예수께 속한 자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 속했다는 것을 4:19절에서는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었다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옴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사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이는 자로서 달라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것입니다.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이것이 주님과 내가 하나로 되어 있는 모습이고, 주님과 하나인 자는 주님의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등록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교회의 교인으로 등록은 되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로 등록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목사라고 해서, 장로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세상둁르 사셨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남에게 대우받고 존경받기 위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섬김 ꑸ기 위해서 살지도 않았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우어졌다는 것이나, 내가 하나님의 아들 되었다는 말이나 다같은 의미로서 나는 이제 옛날 환경에서 옛날 방식으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보여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기를 높이고자 하고, 사람들로부터 섬김으 받고자 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사람들의 위에 설려고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마귀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목사라고 해도 마귀의 아들입니다.

요즘 교회가 자꾸 성경에서 비정상적인 길로 나아가는 이유가 목사 중심으로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중심으로 되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중심으로 한다고 하면서 목사 중심으로 하는 것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목사 한 사람의 잘못된 말에 의해서 교회 전체가 비성경적인 방향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총등학문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합니다.

7절에 종이 아니요 아들이라는 말은 아들의 영을 받은 자는 이제 세상에 매여서 살아가지 않느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께 매일 뿐이지 세상이 자기를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이 나를 살리고, 회사가 나를 살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께 매이는 것이 아니고 회사에 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람은 자유자가 아닙니다. 이것이 초등학문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하기 위하여 능력있는 자가 되어야 하고, 능력있는 자가 되기 위하여 공부해야 하는 것이 초등학문입니다. 신자는 공부는 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 학문으로도 천국은 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한마디의 말씀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입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거침없이 부르고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된 새로운 환경에서 살려고 하지 않고 옛날의 환경 방식 그대로 살려고 합니다. 옛날 방식으로 사는 것이 더 든든하다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세상일이 잘 안돼서 도와달라고 부르는 호칭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천국 간다는 그 사실이 너무 기뻐서, 이제는 땅의 것은 나에게서 희미해지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더욱 확실해지는 그 기쁨에서 부르는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업을 이을 자로서 아버 아버지라고 부르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