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강) 호세아 10:9-15 묵은 땅을 기경하라

<본문>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의 시대로부터 범죄하였거늘 무리가 기브아에 서서 흉악한 족속을 치는 전쟁을 거기서 면하였도다 내가 원하는 때에 저희를 징계하리니 저희가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저희를 치리라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그의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너희는 악을 밭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훼파되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훼파한 것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미와 자식이 함께 부숴졌도다 너희의 큰 악을 인하여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멸절하리로다(호세아 10:9-15)

<설교>

죄에 대한 하나님의 원칙은 반드시 보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아래 지금 세상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눈에는 죄에 대한 보응이라는 원칙이 가볍게만 보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이 없이도, 죄에 거하면서도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9-10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의 시대로부터 범죄하였거늘 무리가 기브아에 서서 흉악한 족속을 치는 전쟁을 거기서 면하였도다 내가 원하는 때에 저희를 징계하리니 저희가 두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저희를 치리라”는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기브아 시대부터 범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도 멸망하지 않고 지내왔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이스라엘을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가 되면 분명히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마치 심판이 없는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죄에 대한 심판을 말하면 단지 엄포로만 듣는 분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잘 지내고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죄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보응하실 때를 기다리고 계심을 선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죄는 무엇입니까? 12-13절을 보면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너희는 악을 밭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의를 심어 긍휼을 거둘 존재로 삼으셨는데, 정작 그들은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문제에 대한 고발이고, 오늘 우리를 향하신 고발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다는 것은, 그들이 엄청난 악행을 향하였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악행이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살인 강도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악행은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둔 것인데,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길과 자신의 용사의 많음을 의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라, 자신들의 길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기쁨과 만족을 위해서 힘을 의지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악행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스라엘의 이 악행의 길에서 벗어나 있지를 못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살았던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세상에 남겨두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긍휼이 거두어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 자기를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그들에게 의를 심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서 긍휼을 거두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심으신 의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에 의해 존재하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심으신 의를 바라봤다면 자기들의 많은 용사를 의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용사의 많음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들을 굳게 세우는 것이며 결국 자신들이 의지할 것도 약속임을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범죄하는 자신들이 존재하는 것이 곧 약속에 의한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에는 긍휼이 담겨 있기에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앎으로서 하나님의 긍휼을 높이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야 말로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악을 밭갈았습니다. 의가 아니라, 약속이 아니라 용사를 바라본 것입니다. 용사의 많음으로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거둔 것은 죄입니다. 긍휼이 아니라 용사의 많음을 의지한 것이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자신의 길을 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심으신 의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심으셔서 긍휼을 거두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심으신 의를 바라보는 신자는 자연히 하나님의 의가 오셔서 자신을 살렸음을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에는 자신의 힘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 역시 자신의 능력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긍휼과 자비의 결과임을 알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긍휼을 거두는 것이고 이것이 참된 신자에게서 거두어지는 열매입니다.

그런데 의를 보지 않을 때 자신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행하는 것을 신앙으로 여기게 됩니다. 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을 밭 갈고 죄를 거두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거두고자 하는 긍휼이 아닌 자신의 능력과 열심을 내보이는 것이 악이라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새로움은 나의 의 없음을 알고 주님의 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묵은 땅이 새롭게 될 때 여호와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의를 내 속에 두심으로써 내가 주님의 긍휼 아래 살고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긍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자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긍휼의 열매입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가려면 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의 없음을 애통해 하면서 하늘의 의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묵은 땅이 기경되는 것입니다.

묵은 땅 그대로라면 하늘의 의를 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필요성을 느끼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 없음에 대한 애통이 없기에 하늘의 의 역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세상 것이 있기에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만 여길 뿐입니다. 이것이 묵은 땅의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악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오늘도 묵은 땅과 같은 우리의 심령을 갈아엎으면서 회개케 하시고 내 속에 의가 비처럼 내리게 하십니다. 의가 비처럼 임하는 것은 곧 주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세상의 것으로 애통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애통하는 것이며 세상의 것으로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시기 위해 날마다 묵은 땅을 기경하시는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