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강) 호세아 13:1-8 배부름으로

<본문>

에브라임이 말을 발하면 사람이 떨었도다 저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인하여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이제도 저희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공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장색이 만든 것이어늘 저희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의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 이러므로 저희는 아침 구름 같으며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우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권고하였거늘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사자 같고 길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내가 새끼 잃은 곰같이 저희를 만나 그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같이 저희를 삼키리라 들짐승이 저희를 찢으리라(호세아 13:1-8)

<설교>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배부름입니다. 배부름은 음식을 먹고 배부른 상태를 말하지만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배부름은 그러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예전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기를 밥 먹듯 했던 시절에는 배부르게 먹는 것으로도 행복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현대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배부름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활동은 배부름과 연결되기 마련인데 그 속에 종교 활동도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즉 종교 활동도 자기만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러한 믿음은 천국과는 전혀 상관없음을 말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예수님이 부자가 천국가기가 불가능하다고 하신 것은 단순히 돈 많은 사람을 지칭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인간에게 있는 부자 되고 싶어 하는 열망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부자 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열망이며 희망입니다. ‘부자’라는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인간에게 부자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는 것은, 지금의 자신의 형편과 환경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자신의 지금의 형편이 자기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기에 부자 되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이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살게 하시는 은혜를 잊었기에 그런 자는 천국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본문에 이스라엘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1절을 보면 “에브라임이 말을 발하면 사람이 떨었도다 저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인하여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라고 말합니다.

에브라임이 말을 발하면 사람이 떨었다는 것은 에브라임이 그처럼 힘이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에브라임이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면서 스스로 높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범죄 함으로 망했다는 것입니다.

2절의 “이제도 저희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공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장색이 만든 것이어늘 저희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의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는 내용을 보면 에브라임은 자신들을 강하게 해주는 것을 참된 것으로 여기고 경배하였습니다.

시편 2편을 보면 아들에게 입 맞추라는 말씀이 있는데, 에브라임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거기에 입 맞추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을 잘되게 하는 신만이 참된 신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세상에 예수님이 오셔서 복음을 전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우리가 전하는 것보다 믿는 자가 더 많아질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그때 그 시절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거지와 다를 바 없고 별 볼일 없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생각하는 신은 강한 자, 능력이 있는 자이며 힘과 능력으로 자신들을 살기 좋은 나라로 인도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을 향해서 ‘함께 죽자’라고 외치는 말을 어느 누가 ‘이것이 참된 복음’이라며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겠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저 살아 있는 동안 될수록 좋은 것을 많이 누리고 싶은 욕망으로만 살아갈 뿐입니다. 배부름의 복만을 열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 대해 “이러므로 저희는 아침 구름 같으며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마당에서 광풍에 날리우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3절)는 계획을 갖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계획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가 바로 지혜있는 신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세상을 보게 되면, 세상에서 배부르게 산다는 것이 일장춘몽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서의 배부름이라는 것은 한순간이며 잠시 동안의 만족일 뿐 영원한 것이 결코 아님을 알기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한 채 나의 인생을 살고자 힘쓰기 때문에 헛된 것을 좇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왜 소중한 분인가에 대해서도 놓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7,8절의 “내가 저희에게 사자 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저희를 만나 그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저희를 삼키리라 들짐승이 저희를 찢으리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이 결국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를 보여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세상이 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바람 앞에 꺼져가는 등불일 뿐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희망을 둔다면 그것보다 더 어리석음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에게 희망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외에 구원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입 맞추는 금송아지도 그들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4절에서 말씀한 대로 애굽의 강한 힘을 누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영원한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애굽 땅에서 건지신 분이 누구신가를 보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들을 잘살게 해줄 신을 바라보고자 할 뿐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악함이요 어리석음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악함과 어리석음에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무엇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까? 무엇을 얻기 위해 세상을 헤매며 살아갑니까?

여러분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마음에 두고 사신다면, 여러분의 눈에 세상은 사라지고 깨어질 헛된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에 미련을 버리지 않고 좇아가기에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찌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9호2:5-7)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길을 막으셔서 좋아하여 따라가던 것을 얻지 몫하고 찾지 못하게 하심으로 본 남편에게 돌아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가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떠났으나 결국 원하는 것을 얻기는커녕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을 때 아버지의 짐을 사모하고 돌아간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채워지는 배부름은 헛된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아니고 잠시 만족을 주지만 금방 꺼져 버리는 안개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열망할 것은 그리스도로 인한 배부름입니다. 우리에게 생수가 되시는 그리스도만이 나의 배부름으로 영원하기를 소원하는 그 마음으로 산다면 세상의 어느 것도 부럽지가 않게 됩니다.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신자란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