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호세아 4:6-10 하나님을 아는 지식

<본문>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저희가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저희의 죄악에 두는도다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 내가 그 소행대로 벌하며 그 소위대로 갚으리라 저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행음하여도 수효가 더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 좇기를 그쳤음이니라(호세아 4:6-10)

<설교>

세상 여기저기서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을 부르지만 중요한 것은 과연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하나님이고 예수님이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밤새도록 소리쳐 하나님을 부른다고 해도 성경에 계시된 그분이 아니라면 그는 하나님을 부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완고함이 결국 망하는 길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6절을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는 말을 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 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이 곧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이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오랜 세월 동안 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믿어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을 두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을 지식으로 인정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머리에 담고 있는 신에 대한 부분적인 상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상식은 이스라엘에게도 있었고, 심지어는 이방인들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붙들고 ‘하나님이 누구신가?’ 물어 보십시오. 다들 나름대로 몇 가지씩은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을 두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지식을 그런 의미로 이해한다면 이방인도 자신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상식으로 멸망을 피할 수 있다는 말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신에 대한 상식적인 내용들을 뜻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에게 없었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생각할 것은, 당시 이스라엘에게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2:5절을 보면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는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신에 대한 지식은 ‘신은 나를 사랑 한다’는 것입니다. 신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 이해하고 있던 신의 사랑은, 떡과 물과 양털과 삼과 기름과 술들을 제공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을 신의 사랑으로 이해하였고, 이러한 사랑을 신으로부터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상은 신을 이런 존재로 생각합니다.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을 신의 본질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예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이러한 지식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는 이유를 삶의 풍요와 평안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신을 찾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신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것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삶의 풍요를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무엇이기에 이스라엘에게는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까?

호세아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세워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 하나님의 긍휼인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긍휼을 알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치기 위해 호세아를 세워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게 하고, 결혼을 한 후에 또 다시 다른 남자에게로 간 아내를 다시 값을 주고 사서 데려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고자 하신 지식이 ‘하나님의 긍휼’이라면 이스라엘에게 없었던 지식은 ‘긍휼’이었고, 하나님은 긍휼이라는 지식이 없는 자는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결국 멸망으로 끝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없으면 안되는 것은 긍휼입니다. 신자라는 신분 자체가 하나님의 긍휼이 없이는 안되는 것이기에 신자로서 긍휼을 잊고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음란한 멸망의 존재를 값을 주고 다시 사셔서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로 붙들어 놓으신 것이기 때문에 긍휼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신자라는 신분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이며 그러기에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는 자가 신자 되게 한 긍휼을 잊고 살아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긍휼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긍휼이 머리에만 있을 뿐 그 심령에 스며들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긍휼이 없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긍휼이 있다면 긍휼로 인해 멸망의 자식인 나에게 베풀어진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함이 있게 됩니다. 긍휼과 은혜로 인한 감사가 너무 크기에 어떤 어려움에서도 감사는 사라지지가 않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긍휼을 대신할 수 없으며 소중하지 않음을 알기에 긍휼의 지식이 있는 자라면 삶의 풍요를 위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긍휼로 인해 이미 그 마음이 콷요로운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긍휼은 제사장을 통하여 전달되게 됩니다. 제사장의 역할은 백성의 죄를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제사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죄를 드러내며 그 죄를 무엇이 어떻게 담당함으로써 죄 있는 자가 죄 용서를 받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증거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제사장이 자신의 역할을 잊어버리고 다른 것에 관심을 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백성들은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지식이 없게 될 것이고, 제사장과 함께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이었습니다.

6절에서 말한 대로 당시 제사장은 긍휼의 지식을 버리고 율법을 잊어버린 채 제사장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즉 백성들의 죄를 드러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긍휼로 인도해야 할 제사장의 역할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8절의 “저희가 내 백성의 속죄 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저희의 죄악에 두는도다”라는 말을 보면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가져오는 제물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백성이 바치는 제물 중 일부를 취하여 생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이 가져오는 제물에만 관심을 둠으로써 백성으로 하여금 제물을 많이 가져오도록 하기 위해 죄를 다그쳤던 것입니다. ‘그 마음을 저희의 죄악에 두는도다’라는 구절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드러내기 위해 백성의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물을 바치도록 하기 위해 죄를 말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죄를 이용하여 헌금하도록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범죄 하였기 때문에 징계하신 것이라고 말하면서 용서 받기 위해 헌금을 하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헌금이라는 것을 이용하며 돈으로 해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목사가 목사의 역할을 잊고 하나님의 말씀을 잊은 채 자기 배를 불리는 것에만 모든 관심을 두고 있는 악한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러한 사람 때문에 백성들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께서 지식이 없는 제사장을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백성들도 백성이 되지 못하게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9절에서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 내가 그 소행대로 벌하며 그 소위대로 갚으리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긍휼 없이 행한 모든 소행을 벌하고 갚으시는 분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에 자기 것을 바쳐서 원하는 것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만이 죄인된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며 죄인된 자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지식이 없기에 내가 잘하면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잘못된 지식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의 신자다움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것으로 증거됩니다. 그 지식은 죄인된 나를 살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인데, 그것이 곧 하나님의 긍휼이며 자비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살아간다’라는 고백이야 말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식은 긍휼과 자비가 아니면 안되는 죄인의 자리에서 가르침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지식으로 채워질 때 신자는 세상에서 맛보지 못할 배부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나를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는가를 잊지 마십시오. 나를 백성 되게 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담고 있는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백성다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