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신 (사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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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지난 시간에는 '빛을 발하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면서 이 말씀을 우리의 결단과 행동을 촉구하는 말씀으로 이해하지 말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이 말씀을 신자에게 빛이 될 것을 요구하고, 신자 편에서 빛과 같은 삶을 보여줌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아름답게 만들라는 하나님의 지시사항으로 이해하는 것은 성경 자체를 크게 오해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빛을 발하라는 것은 구속자가 장차 세상에 와서 하실 일에 대한 예언인데, 빛이 세상에 와서 하실 일을 세상에 대한 변화로 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빛을 비춘다는 것을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비춰준다는 의미로 이해하기 때문에 빛이 되는 삶을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보기 때문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는 말씀을 세상에 맛을 내고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빛을 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이 빛을 발하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과연 예수님이 세상을 변화시키셨습니까? 변화는커녕 세상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실패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는데 세상의 힘에 밀려서 죽은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메시야도 아니고 구세주도 아니고 다만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까불다가 죽음을 당한 어리석은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어도 변화되지 않은 세상인데 인간이 변화시켜 보겠다는 것은 인간을 예수님보다 한 수 위에 두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세상에 빛을 발할 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은 약자 편에 서계시는 것이었습니다. 힘이 있어도 힘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스스로 약자 되신 그것이 바로 빛입니다. 빛이 할 일은 어둠을 물리치고 세상을 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어둠인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빛이 오되 어둠이 어두움을 깨닫지 못하더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셨을 때의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60:3절에 보면 빛을 알아보고 빛으로 나아온 자들이 발생합니다. 4절에서도 무리가 모여 네게로 온다는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빛으로 나아오지 않은 자들에 대한 운명을 얘기합니다. 파멸과 진멸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사람들은 쉽게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빛으로 오신 자를 섬기고 빛으로 나아가면 되겠네' 이것은 마치 '예수 안믿으면 지옥 간다'고 하니까 '그래 그럼 믿어주지 뭐'라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빛을 만나지 못하고 빛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진멸당하고 파멸 당할 백성의 모습인 것입니다.

빛을 만난 자는 '내가 바로 어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영영한 빛으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되는 것이 모두가 인간의 소관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이런 말을 왜 해야 합니까? 혹 '내가 어둠이었구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자기 공로로 삼지 말라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닌데 그렇게 되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분명 나말고 누군가가 우리를 그렇게 되도록 만드신 분이 있습니다. 60:22절을 보면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고 말씀합니다. 때가 되면 여호와께서 이루십니다. 그러면 그 때가 언제입니까?

본문에 보면 여호와의 신이 임한 그 분이 등장할 때입니다. 1절에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 성신, 여호와의 신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모두가 성령을 의미합니다. 한국교회는 성령에 대한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성령을 자신이 외부로부터 어떤 영적이고 신비한 힘을 부여받아서 자기 자신이 신비하고 영적인 능력을 행하는 사람되게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충만도 영적인 신비의 힘을 강하게 아주 많이 부여받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 받으신 예수님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왜 성령을 받으셔야 했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을 받아야 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성령 받지 않으면 할 일을 못하시는 무능하신 분입니까? 예수님이 성령을 받으신 것은 장차 예수님이 하늘나라로 가셨을 때 무엇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성령을 받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성령과 함께 일하신 것은, 앞으로 성령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미리 보여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성령을 보내신 것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절대로 받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으로 생각하지만, 주님은 주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면 절대로 받지 않으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무턱대고 교회에 연관된 것에 열심을 내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주님이 일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과 성령이 만들어 내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1절에서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내게'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령이 임한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갇힌 자를 놓여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일하신 결과로 이 세상에 생겨난 결과는 가난 때문에 낙심하고 힘을 잃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마음에 기쁨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마음이 상했는데 고침 받은 사람들이 생겨나고, 죄에 포로 되고 갇힌 자였는데 자유를 얻은 자가 생겨나는 것이 주님이 일하신 결과입니다. 이 사람들이 모임을 가지고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하늘로 가신 지금 성령에 의해서 발생한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성령에 의해서 발생한 교회의 분위기는 '나는 가난 때문에 괴로워하고 실망하고 살던 사람이었는데 예수님 때문에 돈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게 되고 기쁨을 얻게 되었다. 나는 마음이 상한 자였는데 예수님으로 기쁨을 얻었다. 나는 죄에 갇힌 자고 포로된 자였는데 예수님 때문에 죄에서 해방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만들어낸 교회는 크다 작다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관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성령에 의해서 발생한 그리스도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란 성령이 의해서 부름 받은 자들이 모이는 모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고정적이 아니라 항상 유동적입니다. 교적부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교인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교회로 모여 있는 사람들이 바로 성령이 만들어 낸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숫자에 관심을 두지 말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교회로 부르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지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불러내는 것은 단지 의자를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긴 인간의 욕심이 빈 의자를 채우는 것에 있으니까 당연하다 하겠지만, 성령이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빈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신이 임한 자는 내가 가난한 자였고 마음이 상한 자였고 포로된 자였고 갇힌 자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나 자신이 돈에 매어 사는 자였고 사단에게 갇히고 포로 되어 살아가는 자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내가 바로 망하는 자이고, 내가 바로 어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무엇이 생명인가를 알게 되었고 자연히 주님을 향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우리가 포기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지 못한 것 때문에 영생이 되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것을 붙들다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성령이 오셔서 하는 일은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버려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땅의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내가 사는 길은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죽는 길에까지 마다하지 않도록 밀어붙이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에서 놓여나고 자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여호와의 은혜의 해라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라고 합니다. 은혜의 해는 구원해주겠다는 것이고, 신원의 날은 심판의 날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마지막 심판이 오기 전에 주님에 의해서 주님만 찾고 원하는 자들을 불러모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모여진 자들이 심판 날에 살아남을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지금 성령이 하고 계십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만 바라보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성령에 의해서 보여진 자들의 특징은 오직 주님만 다르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합니다. 희락으로 슬픔을 대신하고 찬송으로 근심을 대신하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일입니다.

그냥 교회로 나올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만들어진 교회는 어떤 교회인지, 빛을 바라보고 모여든 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생각하시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과연 나는 성령으로 만들어지고 빛을 만난 자인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