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의 이사야 (사 6:1-13)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하더라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 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요즘 국회가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했다는 것 때문에 여기저기서 데모가 일어나고 경제가 어렵다고들 아우성입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나라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노라고 변명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그런 것을 바라볼 때마다 나름대로 가지는 생각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합니까? 혹시 국가의 장래에 대해서 염려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일들을 보면서 역시 하나님이 말씀대로 세상 나라는 짐승의 나라라는 것을 느낍니다. 짐승의 나라는 장래가 없습니다. 망하는 것이 그 장래이고 끝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에 대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관심을 두지 않고 천국을 모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나라가 그들의 전부입니다. 자기가 살아가는 자기 나라가 부강해짐으로 자기 또한 덩달아서 혜택을 보고 발전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한 기대를 깨버리는 대상에 대해서는 결코 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데모를 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자기들의 이익을 생각하고 일을 처리합니다. 나라의 부강과 국민을 위해서 우리 당을 희생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당의 힘을 위해서 국민을 희생시키는 일도 서슴치 않고 합니다. 정부는 힘이 있습니다. 공권력이라는 힘을 내세웁니다. 공권력이 도전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합니다. 사실 그 힘도 국민에 의해서 주어진 것인데 그 힘이 주어지자 이제는 오히려 그 힘을 가지고 국민을 억누릅니다.

저는 지금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는가를 따지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데모를 하든 날치기 통과를 하든 그들이 원하는 것은 같다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의 복지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 마음이 천국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몸담고 있는 국가가 흔들리면 두려움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을 보면 웃시야 왕이 죽습니다. 웃시야 왕은 소위 백성들이 원하는 능력있는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시야 시대에 이스라엘은 경제력으로 부강한 시대였습니다. 3장에서 말했던 이스라엘 여인들의 사치나, 5장에서 말했던 돈있는 사람들이 땅을 사고 집을 사모으면서 재산을 불리고 먹고 마시며 호화판으로 살게 된 것이 모두 웃시야 왕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경제력으로 부강해지니까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은 버리고, 말씀에는 관심 없고 오직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세상 재미에 빠져 버립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는 관심 없이 세상에 빠져 살아가는 그 결과는 결국 망하는 것임을 이사야를 통해서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망하는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까? 본문에 보면 이사야가 웃시야가 죽던 해에 하나님이 계신 곳의 장면을 보게 됩니다. 주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는데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고 천사들은 각기 여섯 날개가 있는데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니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이사야가 보고 나서 그 반응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사야와 같이 그런 광경을 보게 되었다면 어떤 반응이 나오리라고 생각합니까? '야 기막히다' '야 멋있다'라고 하면서 넋이 나간 채 서있을 것 같습니까? 그런데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나오는 반응이 '나는 망하게 되었다, 나는 부정한 사람이다'라는 외침입니다. 즉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난 자의 반응입니다.

여러분,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 주님을 만났다'라고 하면서 자랑하고 떠벌리는 사람의 말은 믿지 마십시오. 진심으로 하나님을 만난 자는 자기의 죄를 고백할 뿐입니다. 죄에 대한 고백은 말씀 안에서 만난 하나님으로도 충분합니다. 말씀 안에서는 하나님을 만나지는 못하고, 꿈에서나 어떤 신비스러운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헛된 것을 쫓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자 상대적으로 추하고 더러운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그 장면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이 왜 망하는가를 계시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는 자기의 더러움을 발견했습니다. 이사야가 더럽다는 것은, 이사야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다 더러움에 빠져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러움에 대한 결과는 영원히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사야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해가 바뀌면 '올해는 좀 나아지려나'라는 기대를 가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일을 보면서 올해도 좋아지기는 틀렸다고 한숨을 내쉽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욕을 하면서 나를 부강하게 만들 위대한 인물을 기대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지금 관심이 다른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세상은 망한다는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사 세상이 망한다는 것을 믿는다고 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망하지 않겠지'라는 기대 속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싶어합니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먼저가 아니라 세상이 먼저이고, 말씀이 먼저가 아니라 내가 먼저로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더러움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내가 망할 존재라는 것도, 세상이 망한다는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울고 웃고 슬퍼하고 데모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헛되고 헛된 것을 추구하다보니까 결국은 헛된 것 때문에 다투고, 헛된 것 때문에 낙심하고, 헛된 것 때문에 슬퍼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이유는 결국 천국을 보지 못하고 세상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말씀 앞에 세워 놓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선 급한 것은 세상사는 문제고, 성경은 보지 못해도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으면서도 세상에서 문제만 생기면 심각하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성경을 보고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말을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사가 성경을 보라고 말하면 목사니까 의례히 하는 말로 여겨버립니다. 그러나 목사로서 의례히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지 않으면 자기를 모릅니다. 자기도 망하고 세상도 망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헛된 것에 소망을 두게 됩니다. 성경을 안봐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지 않으므로 자신의 죄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을 바라보지 않게 되고, 그래서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세상으로 빠져들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당 문만 나서면 말씀과는 상관없는 세상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이 세상을 말씀에 나를 맡기지 않고도 믿음으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말씀 속에서 주님을 발견하고 주님께 나를 맡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웃시야 같은 왕을 기대하지만 신자가 기대할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주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는 외침이 있어야 합니다. 신자가 할 일은 세상은 망한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보냄 받았습니다. 세상은 망한다는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