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 나라 (사 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여러분 가운데 천국에 가기 싫어하시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세상을 포기하라는 것은 싫지만, 살아서는 세상을 보장받고 죽어서는 천국을 보장받는다면 그것 같이 금상첨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금상첨화와 같은 천국을 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가고 싶어하는 마음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천국과 지옥을 애써 부인하려고 할뿐이지 만약 천국이 있다면 나도 그 천국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때로는 착한 일을 하려고 힘쓰기도 합니다. 착한 사람은 죽어서도 좋은데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상식이기 때문에 혹시 있을 수도 있는 천국을 대비하기 위해서 나쁜 일은 안하려고 하고, 착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야 천국 간다'는 말을 싫어합니다. 착하게 살면 천국 가는 것이지 왜 꼭 예수를 믿어야 천국 가느냐는 불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도 별 수 없더라. 거짓말하고, 싸움이나 하고, 예수 안믿는 사람보다 더 악하더라'는 말로 공격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를 안믿어도 착하게 살면 된다는 논리를 펴는 것입니다.

예 맞습니다. 착하게 산다면 예수를 믿지 않아도 천국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내 힘으로 천국에 가지 못하고 예수를 믿어야 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은 착한 사람만 사는 천국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착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의지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땅에는 스스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모릅니다. 물론 그들은 착하다는 의미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남에게 해를 주지 않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서 양심 바르게 사는 것을 가지고 착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착한 모습은 죄짓기 전의 인간의 모습입니다. 즉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며 사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으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자기를 사랑하는 모습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죄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는 착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게 어떤 가능성도 두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여러분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천국에 가고 싶다면 '왜 천국에 가고 싶으신 것입니까?' "목사님, 천국은 좋은 곳이니까 가고 싶은 것 아닙니까?" 이런 대답은 안됩니다. 그냥 좋은 곳이니까 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살아서는 세상을 보장받고, 죽어서는 천국을 보장받겠다는 그런 생각에서 교회를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교회를 나오는 나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해도 뭔가를 기대하고 하게 될 것입니다.

왜 천국에 가고 싶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분명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동안 천국은 죽어서 가는 좋은 나라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예수를 믿어왔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귀한 나라가 아니라 교회에 다녀준 대가로 가는 나라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왜 천국에 가고 싶습니까?"라고 저에게 물으신다면 저는 한마디로 "천국은 죄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의 대답이 시시하게 들립니까? 목사의 입에서는 뭔가 거창한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다 아는 이야기라서 실망했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천국은 죄가 없는 나라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그것을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나름대로 수많은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 많은 세월을 살아오시면서 여러분은 세상사는 것이 쉽고 편하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봐도 세상사는 것은 힘들고 어렵고 고통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고통과 눈물과 어려움 속에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 눈물과 고통은 돈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식 때문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인간관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고통과 눈물의 세월을 살게된 원인을 항상 세상에 두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나에게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고통을 겪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아닙니다. 여러분의 고통과 눈물은 남의 탓이 아니고 세상 탓이 아니고 바로 여러분 자신의 탓입니다. 내 탓이라는 얘기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준 고통과 눈물이 아니라 내 죄 때문에 스스로 안고 살아왔던 세월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내 탓인지 아십니까? 이것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겪든 그 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살아가면 고통은 없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이 있을리가 없습니다. 염려 걱정은 내가 어떤 일에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욕한다고 합시다. 내가 욕을 먹을 때 그것이 마음에 고통이 되는 것은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에게 뭔가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애매하게 욕먹는 것을 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욕을 한다고 해도 내가 나를 보지 않고 거기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고통이 될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위해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남편 때문에 속상하고, 자식 때문에 고통받고, 돈 때문에 친구 때문에 고통받으면서 세상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눈물과 고통 속에서 살게되는 이유는 그 누구 때문도 아니고 내가 나를 위해서 살아가려고 하는 죄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는 이러한 죄가 없습니다. 천국은 자기를 사랑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천국은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안에서 한몸된 지체를 사랑하며 사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고통과 눈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죄가 없는 천국이 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제가 저를 포기하지 못하고 나를 사랑하며 사는 죄가 너무 커서 그 때문에 고통이 떠나지 않기 때문에 죄가 없는 천국이 기다려지는 것입니다.

천국은 죄가 없습니다. 경쟁도 없고 시기도 없는 나라입니다. 사람이 경쟁하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피곤합니다. 남이 잘됐을 때 내 마음은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데, 마음 한구석에는 나보다 더 나아 보이는 상대방을 향해서 시기가 일어나고 질투가 일어나고,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버려지지 않는 자신이 미워질 때, 바로 그러한 시기 질투가 없는 천국이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가 없는 천국은 어떤 모습입니까? 오늘 본문이 그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두가지의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본문의 이야기가 실제로 천국의 모습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느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천국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천국은 이렇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지금까지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오기도 했던 이야기입니다.

본문이 논란의 대상이 된 이유는 천국에도 동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때문입니다. 본문을 상징적인 표현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천국에는 동물이 없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주장하고, 실제 천국의 모습을 말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천국에도 동물은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느 편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천국은 동, 식물이 있겠습니까? 아니면 동, 식물은 없이 그냥 부활한 신자들만 있겠습니까? 사실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동물이 있든 없든 나중에 천국에 가서 보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를 가지고 싸운다면 결국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편한 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본문이 그것을 언급하고 있으니까 성경을 통해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실제 천국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에는 동물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이들은 본문을 천국에 대한 하나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서로 싸우는 죄악된 세상에 이새의 줄기로 오신 예수님이 일하신 결과로 사람들의 싸우는 성품이 서로 용납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성품으로 달라진 천국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예수 믿는 사람들의 달라진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온 교회가 미움이 없이 시기도 없이 경쟁도 없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천국에는 동물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무엇을 근거로 천국에는 동물이 없다고 합니까? 성경을 보면 여러 곳에서 마지막 심판때를 말하면서, 그때에는 하늘도 땅도 불에 타서 녹아지고 사라진다고 말합니다(벧후 3:10,12, 마 24:29, 히 1:10-12, 12:26). 이렇듯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없어지기 때문에 땅위에 있던 모든 동식물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동물의 부활은 말하지 않기 때문에 천국은 동물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본문도 천국의 실제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신자가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 예수님의 성품으로 닮아가서 강한 것과 약한 것이 함께 어울리는 것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본문은 천국의 실제 모습을 말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즉 천국도 동물이 있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사 65:25의 구절을 그 증거로 말합니다. 사 65:17절에서는 분명히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 새 나라의 모습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천국은 동물도 식물도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또 로마서 8::19절을 보면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고대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21절에서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는 말씀과 같이 인간의 죄로 인해서 모든 피조물도 악해졌는데 피조물조차 그 죄에서 해방되기를 고대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새나라를 창조하시면서 악한 세상을 다 버리시고 새나라를 창조하실 때 모든 동물도 다시 창조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천국도 동물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여러분 편한 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조금 다르게 봐야 합니다. 본문은 새하늘과 새땅의 모습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지난 수요일에 말씀드린 대로 이새의 줄기에서 난 분이 일하신 결과로 이루어지는 나라의 속성에 대해서 말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힘을 의지하고 힘으로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힘을 소유하기 위해서 경쟁하며 서로 싸우는 나라입니다. 힘의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남은 자는 누구입니까?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분의 모습과 같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만 의지하며 산 자들입니다. 그 남은 자가 모인 나라의 모습은 약육강식이 아닙니다. 힘을 드러내지 않고 약자를 누르지 아니하는 나라입니다. 본문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가지는 고통은 누구 탓도 아닙니다. 힘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한 바로 나 자신 탓입니다. 자기를 향한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 탓입니다. 그 누구도 탓하지 마십시오. 나를 욕하고 나를 핍박하는 사람도 다 내탓임을 아십시오.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내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이 나를 가만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가 살아있는 세상이 싫어지는 것이고 본문과 같이 강자와 약자가 없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천국을 기다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싸움이 있고 경쟁이 있고 시기 질투가 끊이지 않는 세상을 사시면서 예수님을 알게 된 은혜에 감사하며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