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노래 (사 12:1-6)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사람이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그 일에 서투르기 때문에 남에게 묻고 배워가면서 일을 하게 됩니다. 아마 이럴 때는 남보다 안다고 해서 나서는 일도 없을 것이고, 언제나 뒤에 물러서서 남이 하는 것을 배우기에 모든 관심을 둘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일이 손에 익숙해지고 뭔가 알게 되었을 때는 남에게 묻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 여기고, 자기보다 연륜이 적은 자는 자연히 무시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의 신앙생활도 이러한 과정을 밟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교회에 나왔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조용하게 남들이 하는 것을 배우면서 살아갑니다. 자랑할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습니다. 안다고 해서 남을 무시할리도 없고,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해서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경쟁도 없고, 비교하는 것도 없습니다. 단지 주님을 알게 된 즐거움 속에서 순수하게 주님으로 기뻐하면서 교회생활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기존 신앙인들의 잘못된 모습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교회 일이나 여러 가지의 것에 지식이 쌓이면서 자기의 것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는 예수님이 좋아서 예배당을 찾는 것이 아니라 거의 습관적으로 예배당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스스로 어른 행세를 하게 되고,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틀린 것으로 간주해 버리면서 교회를 시끄럽게 합니다. 사실 많은 신자들이 이러한 과정을 그대로 밟으면서 교회생활을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모두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에게서 일어납니다. 뭔가 안다고 하는 사람들, 스스로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이런 사람들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교회에 출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에베소 교회에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하시는 것도 바로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않고 예수님만 기뻐하는 순수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모두 같습니다. 처음에는 뭔가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세월이 갈수록 세상의 방식에 같이 동화되어 버리고 나중에는 순수함은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신자가 처음에 신학교에 들어갈 때는 정말 순수하게 복음만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졸업할 때는 성장에 원대한 꿈을 지니고 졸업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설령 졸업할 때까지 그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고 해도 목회를 하면서 뭔가 현실을 떠나서는 배겨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서 교회 성장을 위해서 힘쓰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 교회가 성장해도 순수함만 잃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적당한 타협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에 동화되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의 모습만 드러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40년을 믿어도 1년을 믿은 듯 신앙생활하자는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처음이나 나중이나 처음의 순수한 그 마음으로 주님을 찾자는 것입니다. 아는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고, 내것을 고집할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자로서 주님을 찾아 나오자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오직 주님에게만 관심을 둘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엉뚱한 것으로 얼굴 붉히는 일이 사라질 것입니다. 40년을 믿었어도 일년을 믿은 듯 모이는 교회라면 분명 사랑이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때 주님께로 돌아온 자의 감사의 노래입니다. 1절에 보면 '그 날'이라고 말하는 데 그 날이란 주님께로 돌아오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특별한 날입니다. 그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절을 보십시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고 합니다.

그 날에는 여호와의 진노가 쉬는 일이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서 진노가 그친다는 것입니다. 또 그 날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위하십니다. 안위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편히 쉬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날, 즉 그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들입니다. 이것을 바꾸어서 말하면 그 날이 있기 전까지는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살아가야 하고, 안위가 없는, 쉼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쉼이 없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것은 누구나 동일합니다. 죄인의 몸으로서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에 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쉬지 않고 땀을 흘리고 일을 해야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에는 일하고 싶어서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되기 위해서는, 풍족한 사람을 살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많이 일하지 않고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되기를 원하는 탐욕이 있습니다. 그 탐욕의 지배를 받고 있는 한 인간은 일하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결국 세상에서는 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안식이 없습니다. 노동은 죄의 결과입니다. 노동이 그치고 안식할 수 있는 날은 그 날이 와야 합니다. 그 날이 바로 우리가 영원히 쉴 수 있는 날입니다. 신자는 그 날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날을 바라본다는 것은 쉼이 없고 죄만 있는 세상이 싫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이 싫어지지 아니한 사람이 어떻게 그 날을 바라보고 살아가겠습니까? 때문에 우리가 그 날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신자라면 비록 쉼이 없는 이 세상에서라도 영원한 안식의 그 날을 소망하며 세상에서 벗어난 자로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상을 힘들고 피곤하게 살아가면서도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가져다주실 영원히 쉬는 날을 미리 기뻐하면서 살았던 자가 그 날에 부르는 감사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절에 보면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기르리라"고 합니다. 이 감사의 노래를 지금 이 땅에서 미리 부르며 살아가는 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날에 이르러 하실 일을 그때 가서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을 아는 자로서 지금 이 땅에서 미리 감사하고 찬송하는 자로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인생을 세상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그 날을 아는 자로서 현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어려움과 고통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그 날에 주어질 영원한 쉼의 나라를 바라보라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결과로 보자는 것입니다.

세상은 쉼이 없습니다. 세상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신자는 그 날을 더욱 기대하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쉼이 없도록 하는 죄에서 멀어지고자 힘쓰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신자가 그 날에 주님이 오라고 하시면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기뻐하면서 찬송하면서 주님께로 돌아갈 남은 자인 것입니다.

피곤하지 않는 삶을 사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쉼이 없는 세상을 싫어하는 자가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쉼이 있는 나라, 여호와의 안위가 있는 그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바쁘고, 힘들고, 피곤하게 살아가시면서 바쁜 것도 없고, 피곤도 없는, 죄가 없는 그 나라를 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바쁘게 하시고 피곤하게 하셨다면 그것은 안식이 있는 그 나라를 소망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편안하면 그 나라를 마음에 두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순수하게 주님만 사랑하면서 그 날을 기뻐하고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모이는 교회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