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기쁨 (사 24:1-13)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며 뒤집어 엎으시고 그 거민을 흩으시리니 백성과 제사장이 일반일 것이며 종과 상전이 일반일 것이며 비자와 가모가 일반일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채급하는 자와 채용하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일반일 것이라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거하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거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으며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 소고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마치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노래하며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될 것이며 약탈을 당한 성읍이 훼파되고 집마다 닫히었고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암흑하여 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으며 성읍이 황무하고 성문이 파괴되었느니라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

세상의 모든 종교에는 각기 경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경전들의 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인간을 좀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수준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의 목적으로 기록되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종교의 추구점은 현세에서 인격적인 인간,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인간으로서 인간이 생각하는 선의 도리를 다하다가 내세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상을 받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러한 종교의 가르침을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적당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려고 하게 마련입니다. 여기서 제가 적당히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은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분명한 선을 그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선이란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고 자신의 삶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지켜져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즉 자기를 포기하면서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삶도 자신의 유익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반박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 종교를 따르지는 않지만 가르치는 내용은 맞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종교가 지향하는 것이 착한 사람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자'는 것에 누가 반대를 하겠습니까? 착한 사람을 많이 만들어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말하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되면 그 세상에 몸담고 사는 자신에게도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교육시켜서 착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부터 마지막 심판하실 때까지 이 땅에 대해서 어떻게 하실 것인가에 대해서 계시되어 있는 책입니다. 이 우주를 어떻게 움직여 나가실 것인가에 대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 스스로 밝혀 놓으신 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세상 종교의 경전에서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인간들이 상상하는 좋은 말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종교의 경전에는 인간을 위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지만 성경은 인간을 위하는 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해서 어떻게 하시는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믿든 믿지 않든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믿어달라고 사정하지도 않으시고, 믿어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지도 않으시고, 또 믿는다고 해서 특별히 이뻐해 주시는 하나님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애당초 자신에게 합리적이고 자신에게 상식적인 인간은 자신에게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성경은 믿지 않도록 되어 있고, 만약 믿는다면 하나님이 믿도록 하신 것이기 때문에 믿는다고 해서 특별 대우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믿든 안믿든 관계없이 하나하나 진행되어 가고 이루어져 갑니다. 믿는자가 적다고 해서 계획이 늦추어지거나 취소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홍수 때에도 믿는자가 적다고 해서 심판을 늦추거나 하지 않으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도 의인이 없다고 해서 심판을 취소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될수록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심판을 보류하시고 참고 계신다는 것은 인간들의 상상에 불과합니다. 심판의 때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때가 되면 구원받을 자가 몇 명이냐에 상관없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세상은 망한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누가 하나님의 가르침 속에서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느냐를 살피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인간을 기분 좋게 해주는 말이 없습니다.

세상 종교의 경전은 읽으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래 맞는 말이다. 나도 이런 인간으로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데 반하여 성경에는 인간을 기분 나쁘게 하고, 반발이 나게 하는 말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누가 해야 하느냐면 선지자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지자하기가 힘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사람들이 듣기에 기분 좋은 말이라면 선지자로 사는 것은 전혀 힘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사람들의 환영을 받고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궁중선지자들은 왕에게 기분 좋은 말만 해줬기 때문에 편안한 삶을 살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참된 선지자는 듣는 사람이 기분 나빠하든 반발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신 말씀은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래서 참된 선지자는 애매하게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욕을 먹으면서 돌에 맞기도 하고 죽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늘에서 특별한 대우가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선지자로 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참된 신자로 산다는 것도 역시 힘든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사람들이 반발하고 기분 나빠할 수밖에 없는 말을 하게 하심으로 무엇인가를 구분하시고자 합니다. 그것은 장차 메시아가 세상에 오실 때 누가 과연 메시아를 주로 영접할 것인가를 선지자의 말을 통해서 확인하겠다는 것입니다.

즉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이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나중에 틀림없이 메시아도 주로 영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아가 세상에 오셔서 선포하실 말씀은 선지자의 말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말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장차 오실 메시아의 말과 같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말의 내용이 똑같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추구하는 의미가 같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 선지자의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고 듣지 않으려고 하고 선지자를 욕하고 때리고 죽인다면 결국 장차 메시아에게도 같은 행동을 할 것임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십니까? 여러분이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사랑하시는 증거는 오늘 이 시간 선지자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선지자는 지금 우리를 심하게 나무라고 있고 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말이 귀에 거슬리고 반발이 되고 싫어한다면 결국 예수님의 말씀도 반발하고 듣기 싫어한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세상을 향해서 경고를 합니다. 선지자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세상이 좋다고 웃고 떠들면서 좀더 기쁘고 좀더 재미있게 살아보고자 발버둥을 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벌었다고 좋아하고, 그 돈으로 좋은 집사고 맛있는 음식 사먹고 좋은 옷 사 입으면서 세상 살맛 난다고 좋아하고 있는데 그런 세상을 향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며 뒤집어엎으시고 그 거민을 흩으시리니"라고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참 재미있게 놀고 있는 사람들 속에 뛰어들어서 훼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선지자가 세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수요일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세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금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지자가 세상에서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8절에서 기쁨이 그칠 것이라 하고, 9절에서는 술을 마셔도 즐거움이 없을 것이라 하고, 11절에서는 땅의 기쁨이 소멸될 것이라고 외치는 이유는 사람들이 세상을 기쁨을 누린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땅의 기쁨만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것 때문입니다. 땅의 기쁨만 추구하고 하늘의 기쁨은 전혀 염두에 두지도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땅의 기쁨이란 아주 단순합니다. 땅의 기쁨은 자신을 돋보이는데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남을 이기고, 자신이 드러나고, 자기 이름이 알려지고, 칭찬 받는 이 모든 것이 기쁨을 누리는 조건들입니다.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의 관심도 자기를 돋보이는 것입니다. 남에게 무시 받고 따돌림당하는 것을 큰 고통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무시당하지 않고 따돌림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다수 아이들의 행동이나 옷차림을 같이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돋보이지 못하면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습니다. 친구를 만나도 자기를 돋보일 수 있는 뭔가가 하나라도 있어야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자랑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랑할 것이 없을 때는 만남을 기피하게 됩니다. 남들은 자랑하는데 자신은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은 고통이고 자존심 상하는 문제이고 또 즐거움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남을 이기는 즐거움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욕망입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있는 여건과 환경이 자신의 그런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 사람은 자신의 환경에 대해서 원망을 하게 되고 분노를 품게 되며 평소에는 나타내지 않던 그 분노가 술을 먹었을 때 자제되지 못하고 튀어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모든 즐거움과 기쁨은 자기를 돋보이는데서 얻어집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즐거움이 고 기쁨입니다. 이사야는 이런 세상을 향해서 너희의 모든 기쁨과 즐거움이 그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드린 대로 단지 세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 때문은 아닙니다.

5절을 보면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고 합니다. 즉 그들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언약을 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까? 율법에는 세상의 기쁨을 누리지 말라는 것이 없습니다. 언약에도 세상 기쁨을 누리지 말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율법, 언약은 무엇입니까? 14,1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즉 그들은 세상의 기쁨에 빠져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맨처음의 율법은 유월절 규례입니다. 하나님은 이 규례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십계명의 정신도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언약의 정신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신 분임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나에게 보내셔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안다면 자기를 돋보이고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구원을 아는 자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누가 여호와의 이름을 나타내느냐를 보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이름을 돋보이므로 세상의 기쁨을 누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하나님이란 이름은 단지 자신을 천국 보내는 효용으로서만 가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너희가 지금은 세상것 때문에 기뻐하는데 그게 언제까지 가나 보자'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이면 인간의 모든 기쁨과 즐거움은 그치고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백성과 제사장이 일반일 것이며 종과 상전이 일반일 것이며 비자와 가모가 일반일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채급하는 자와 채용하는 자가 일반일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일반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눌린 자와 누르는 자, 있는 자와 없는 자, 천히 여김 받는 자와 귀히 여김 받는 자를 서로 비교하면서 마지막 때는 이것의 구분이 없이 서로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는 자신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는 조건들이 마지막 때에는 전혀 가치 없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때를 바라보면서 살아간다면 참된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게 될 것이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세상의 기쁨, 즐거움을 누리며 사십시오. 하지만 그 기쁨이 자기를 돋보이는데서 나오는 기쁨이라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자기를 돋보이면서 기뻐할 때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은 여러분으로 인해서 감추어지고 무시를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에 의해서 눌려지고 상처를 입은 자가 발생한다는 것도 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든 모든 관심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남들이 무엇을 자랑하든 자신을 드러내든 신경 쓰지 마시고 그 모든 것이 마지막 때에는 다 사라지고 그칠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시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에 관심을 두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하늘의 기쁨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