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날 (사 24:14-23)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여호와의 위엄을 인하여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치리니 그러므로 너희가 동방에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며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 땅 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기를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하도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궤휼자가 궤휼을 행하도다 궤휼자가 심히 궤휼을 행하도다 하였도다 땅의 거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임하였나니 두려운 소리를 인하여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땅이 깨어지고 깨어지며 땅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침망 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지고 다시 일지 못하리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땅에서 땅 왕들을 벌하시리니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에 모임같이 모음을 입고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라 그 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세상을 향해서 기쁨이 소멸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심판을 말하는 것은 세상의 기쁨으로 인하여 천국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모습 때문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과연 천국을 마음에 두고 사십니까? 세상의 기쁨과 즐거움에서 떠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벌리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때, 또 다른 기쁜 일이 있을 때 기뻐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습니까? 기뻐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감사하면서 기뻐하면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인생의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전혀 다른데 두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인생을 나그네, 안개, 풀의 꽃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자리에 영원토록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잠시 후에 사라지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인생을 이렇게 묘사하는 이유를 잘 아실 것입니다. 잠시 거할 곳과 영원히 거할 곳의 구분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의미를 마음에 두고 사는 신자라면 당연히 잠시 머무는 곳에서의 기쁨보다는 영원히 거할 곳의 기쁨이 더 비중이 커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신자가 진심으로 천국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물론이고 안다고 하는 사람도 천국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오직 땅에서의 기쁨과 즐거움을 위해서 몸바쳐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의 문제보다는 육신의 편안함과 행복의 문제가 더 우선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도 우선 내 인생이 편안할 때 생각할 문제로 여겨버리고 삽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보혈보다도 내 행복을 더 귀히 여기고 세상의 기쁨을 더 좋아하며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눈독을 들이고 살아가니까 당연히 그 머리 속에서 천국이 사라집니다.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세상에 치우쳐서 천국을 천국으로 여기지도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장차 천국도 그들을 거부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필연코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버림입니다. 버림이 없는 천국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버림은 무가치한 것에 대한 행동입니다.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에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천국의 가치를 발견한 자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버림이기 때문에, 버림이 없다면 영광의 하나님 나라는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나라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천국은 천국의 가치를 모르는 자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심판과 연결됩니다. 심판 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다 사라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으로 재창조됩니다. 그 새로운 것은 현재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악한 것이고 더러운 것이고 썩어질 것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현재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들은 마지막 때에 남아 있지 않을 것들에 불과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현재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로 새롭게 교체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보이는 것에 대한 애착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이는 것을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모든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와서 들어야 할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고 버리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서 이 말 외에 다른 말은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은석교회에 이사야, 예레미야 등 구약의 선지자들이 다시 와서 설교를 한다고 해도 같은 말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이 아닙니까? 스데반이 다시 살아서 설교를 해도 마찬가지이고, 바울 사도가 와서 설교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설교를 해도 여러분은 같은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결국 교회는 선지자 사도 예수님이 하셨던 말을 그대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여러분을 돕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오신 것은 천국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여러분들이 천국에 갈 수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때문에 항상 목사 입장에서 여러분께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은 교회에 나오실 때 여러분 자신을 부수고 깨뜨리고 찌르는 말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알고 천국 가는데 도움을 받으려는 마음으로 나와달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전혀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요즘 교회를 보면 교회가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천국을 바라보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상하게 교회가 있다는 것이 신자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교회는 신자를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도움을 줘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물론 모든 교회는 신자들이 예수님을 알도록 돕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설교를 하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천국도 말하고 그리스도도 말하고 십자가도 말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말하고 그리스도를 말한다고 해서 다 옳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설교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면서 신자들로 하여금 '그래 세상은 다 사라지고 썩어질 것밖에 안된다. 세상에 소망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이렇게 뭔가를 포기하고 버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국에는 희미하게 만들고 반면에 버려야 할 것에 소망을 두게 한다면 그것이 신자를 돕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방해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배로 비유한다면 사람을 태워서 건너편으로 옮겨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가 사람들을 천국으로 보낸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교회는 사람들이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적은 사람들이 건너편으로 건너가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교회는 유람선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제공하는 것이 교회의 할 일이 아닙니다.

유람선은 배를 아름답고 호화롭게 치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즐거움을 손님들에게 제공을 해줘야 합니다. 유람선은 건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재미있게 노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꼭 유람선과 같습니다. 건너가야 할 목적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없이 배에 탄 손님들에게 향응을 베풀고 즐거움을 제공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만 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유람선이 아닙니다. 교회는 저쪽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탄 배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지금 가고 있는 건너편에 대해서 알려주면 됩니다. 이미 떠나온 세상에 미련 두지 않고 지금 건너고자 하는 목적지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교회가 신자를 돕는 것인데 지금 교회는 유람선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말한다면 과연 너무 지나친 말이겠습니까? 보이는 것을 포기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보이는 것에 집착하도록 하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좋으면 천국이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이 있는데 어느 정신나간 사람이 좋은 것을 버리고 보이지도 않는 것에 목숨걸고 살겠습니까? 그래서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세상보다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더 관심을 두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의 바램은 은석교회가 바로 그런 역할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 역할을 위해서 오늘도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계시하신 말씀을 그대로 여러분께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심판의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심판을 많이 말씀드렸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쩌면 굳이 심판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도 세상은 망한다는 것을 잘 아니까 심판이야기는 이제 대충 넘어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심판을 몰라서 심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알면서도 아는 사람답게 살아가지 않는 것 때문입니다. 심판을 안다고 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는 사람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심판을 아는 사람답게 살아가십니까? 그것을 점검하자고 다 아시는 심판의 이야기를 또 다시 하는 것입니다.

19,20절에 보면 심판 때의 땅의 모습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왜 마지막 때의 땅의 모습을 이렇게 미리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지금 세상 사람들이 취해서 살아가는 땅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땅의 영광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장차 깨어지고 흔들리고 갈라지고 비틀거릴 땅과 함께 사라질 운명에 들어 있습니다. 반면에 장차 나타날 영광은 참으로 귀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해서 땅의 영광은 버려도 좋을 만큼 가치 없는 것임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그 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고 합니다. 마지막 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 할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영광 때문에 우리는 땅의 영광은 포기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자를 통한 심판의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이 말씀대로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해서 세상 영광은 형편없는 것이고 진심으로 다 사라지고 버려져도 좋을 만큼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장차 나타날 영광이 좋으면 뭐합니까? 정작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 영광을 모르면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영광입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은 영광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 해당됩니다. 영광의 가치를 아는 신자들만이 '그 영광 때문에 나는 세상의 것을 잃어버려도 좋습니다'라고 할 것이고 천국은 바로 이런 분들이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 일을 돕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남들보다 좀 어렵게 살고 힘든 일을 겪는다고 해서 거기에 너무 마음쓰며 살지 마십시오. 마지막 때의 영광된 장래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까지 여러분 홀로 신앙을 지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도우시고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사건과 사고 속에서 지키시기 위해서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과 고통으로부터 구해주기 위해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은 고난과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함께 하시고 도우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우리를 빼내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목자를 우리를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되게 하시기 위해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자는 천국을 위해서 세상을 잃어버린 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하시고 도우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우린 그런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시며 도우셔서 우리를 때리시면서까지 가르치셔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자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린 오늘 선지자의 외침을 들으면서 우리가 너무 세상에 눈독을 들이고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우쳐야 합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간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도우십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사는 새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일하십니다.

세상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목사는 자신이 목사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목사가 목사라는 지위 아닌 지위를 잊어버리지 않을 때 교회로부터 대우받으려는 욕심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장로도 자신이 장로라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신자는 오직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찾을 뿐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모습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사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할 것은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자는 버리기 위해서 살아갈 뿐입니다. 오늘 땅의 심판을 말하는 선지자의 말을 들으면서 과연 나는 세상에서 멀어지고 버리는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아니면 반대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천국에 대해서 희미해지는 자로 살아왔는지 자신을 점검하며 심판을 기억하고 사는 신자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