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전 (사 2:1-4)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세상은 가치 있는 것은 환영을 하고 가치 없는 것은 쓸데없는 것으로 간주해서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치 있고 없고의 판단 기준이 자신을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이고, 이익이 되지 않고 손해가 되는 것은 가치 없는 것이고 버려야 할 것으로 간주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치관 속에서 교회를 바라보고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교회도 진리의 판단 기준을 내 교회에 이익이 되고 안되고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나를 유익 되게 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진리가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교회에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진리를 따르고 진리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접해야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더욱 어려운 것은 진심으로 진리를 깨닫고 그 말씀대로 세상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찾아보기가 힘들고 대다수의 교회가 진리 아닌 것을 진리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약하고, 비진리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강하다는 것입니다. 약자는 강자에게 눌릴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기 때문에 결국 이 땅에서는 진리가 비진리에 눌리고 공격당하는 모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진리임을 알기 때문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곧 참된 신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참된 신자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생각합니다.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내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싫어하고 멀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참된 신자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에 눌린다고 해도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신자는 그리스도에게만 모든 가치를 두고 사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가치가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에게 가치를 두게 되면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해야 하고, 눌려야 하고, 어렵고 힘들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에 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하는 것이 잘하는 일인가에 대한 의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이다.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지옥갈 인간이었는데 남들이 욕한다고 그것을 못참고 원망을 하는가?'하면서 모든 것을 견디어 갈 때 그리스도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을 포기하여도 결코 버릴 수 없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때는 모든 것이 판가름 날 것입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였는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참된 것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무너지고 사라지게 됩니다. 그때를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힘들다고 진리를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절에 보면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 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고 합니다. 말일이라는 것은 마지막 때라는 의미입니다. 마지막 때에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서고 작은 산 위에 뛰어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여호와의 전의 산이라고 합니다. 즉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만이 모든 산위에 굳게 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가 피해야 할 곳은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입니다. 이곳으로 피할 자는 이곳을 아는 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것을 알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는 자가 따로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만이 여호와의 전의 산으로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전의 산이란 오늘날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3절을 보면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전을 야곱의 하나님의 전이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28장에 보면 야곱이 이삭을 속여서 축복을 받고 에서를 피하여 도망을 칠 때 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곳을 '하나님의 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야곱은 하나님의 전에 대해서 오해를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며 자기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하신 것은 그에게 참된 복이 무엇인가를 알리고 장자란 섬기는 자임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야곱은 자기 인생에 개입하셔서 간섭하신 하나님을 통해서 복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에서에게 절함으로 장자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전이란 우리에게 세상에서 참된 것이 무엇인가를 알리기 위해서 가르치는 말씀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은 성전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성전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성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을 때 그것을 성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전이 있는 여호와의 산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지고 말씀이 다스리고 있는 그 자리를 여호와의 산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산에서 마지막 때까지 남는 신자는 세상의 다른 것에는 소망을 두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말씀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산을 향해서 올라가며 '이것이 진리의 말씀입니다'하면서 참된 말씀을 증거하는 자입니다. 여호와의 산은 참된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말씀에 의해서 다스림 받는 그 자리가 여호와의 산입니다.

신자가 여호와의 산에서 말씀에 의해서 다스림 받을 때 다른 산은 작은 산으로 보여져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마지막 때에 여호와의 산이 모든 작은 산 위에 굳게 선다고 합니다. 여기서 작은 산은 무엇을 말합니다. 말씀에 의해서 다스려지지 아니한 모든 것을 작은 산으로 보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이 없는 것을 작은 산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지 아니한 모든 것은 마지막 때에는 모두 작은 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작은 산에 불과한 것은 아주 큰산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씀에 의해서 다스려지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큰산인지를 판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출세하고 높은 자리에 앉는 모든 것이 작은 산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을 큰산으로 여기며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되고 헌금이 많아지고 하는 이런 모든 것들이 작은 산에 불과한데 말씀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큰산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가는 이유도 큰산을 보지 못하고 작은 산을 큰산으로 여기며 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 모든 작은 산 위에 곧게 설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산에 서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못견뎌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에 있는 자들을 작은 산에 서 있는 자들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힘을 자랑하고 돈을 자랑해도 마지막 때에는 말씀 위에 서 있는 자가 굳게 선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에 서서 세상을 바라봅시다. 작은 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생의 전부가 시집가고 장가가고 돈벌고 잘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산에 서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인생의 전부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작은 산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것을 자랑하고 내세운다고 그것 때문에 기가 죽거나 낙심하겠습니까? 오히려 작은 산에서 그것이 최고인줄 알고 자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산에서 사는 사람은 세상이 부럽지가 않습니다. 신자는 언제나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4절의 말씀과 같이 경쟁과 다툼이 아니라 여호와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보여주며 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이 은석교회가 말씀이 다스리는 여호와의 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 여러분 각자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