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사 25:6-1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 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 속의 초개의 밟힘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그가 헤엄치는 자의 헤엄치려고 손을 폄 같이 그 속에서 그 손을 펼 것이나 여호와께서 그 교만과 그 손의 교활을 누르실 것이라 너의 성벽의 높은 보장을 헐어 땅에 내리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

지난 시간에 땅이 깨어지고 흔들리고 갈라지는 심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 25:1절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그것을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이 말씀을 보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 하나님이 정하신 뜻대로 행하시는 것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서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원하는 것은 세상 나라가 발전하고 번영하며 사람들이 살기에 편한 지상 천국 같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이 땅이 깨어지고 심판을 당해도 좋으니까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사로운 인간 개인의 뜻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망하든 흥하든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기를 원하는 것이 선지자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사야서를 살펴보면서 선지자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이스라엘이란 국가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서 기도한 흔적이 있었습니까? 발전과 번영은커녕 오히려 '너희들 그렇게 하다가는 망한다'는 심판만 계속해서 선포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서 66장 끝까지 본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는 죄로 더러워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세상은 망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개인적인 마음은 다 접어둔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기만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앞에서 인간 개인의 뜻은 고개를 내밀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 개인의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고집을 부린다면 더욱 죄를 쌓아갈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비춰볼 때 종종 기독교계에서 행해지는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조찬기도회'라는 것이 얼마나 엉터리이고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서,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 기도회를 하고 거기에 소위 이름있다는 목사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 사도들이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 또는 왕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있다면 궁중에서 왕의 비위를 맞추면서 왕이 듣기에 좋은 말만 해주고 평안하다 편안하다는 말만 했던 거짓선지자들입니다. 오늘날의 조찬기도회라는 것이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매일이라도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이 있습니까? 남북한의 통일이 있습니까? 왜 통일에 목적을 두고 발전과 번영에 목적을 두고 삽니까? 통일과 발전과 번영이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입니까? 세상은 결국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심판으로 들어가고 그때 다 함께 사라지고 없어질 것들이 아닙니까? 통일이 심판을 이기게 하고 번영한 국가가 심판을 이기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은 분명히 다 불에 타서 사라진다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집착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통일이 되든 발전을 하든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통일과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완성될 그날 영원토록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심판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의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소원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주기도문에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가 있는데, 우리는 주기도문을 할 때만 아니라 답답하고 막막한 일이 생기거나 일이 잘 안풀려갈 때 기도하면서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이 기도는 아무 생각없이 섣불리 할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의 뜻에 맡긴다는 기도는 선지자의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짜 선지자의 마음으로 기도했을 때 결과가 좋고 나쁘고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으로 찬송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좋은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잘못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순복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다는 것은 진심으로 선지자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심판을 보고 찬송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신자들은 주님의 뜻을 말하면서 편하고 좋은 길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주님의 뜻에는 좁은 길만 있을 뿐이지 편하고 좋은 넓은 길은 없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좁은 길로 인도하시고 험하고 고통스러운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신자가 진짜 선지자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신자인 것입니다. 그 사람만이 주님의 뜻대로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을 진행시키시는 분입니다. 그 뜻대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2절에 보면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견고한 성읍으로 황무케 하시며 외인의 궁성으로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영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라고 말합니다. 땅위의 성읍을 무너뜨리시고 황무케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하나님의 뜻이 끝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만약 이것으로 하나님의 뜻이 끝난다면 신자가 바라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심판 뒤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6-8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어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름지고 좋은 것으로 잔치를 베푸시고, 사망을 멸하시고, 눈물을 씻기시고, 수치를 제하신다는 것이 심판에 이어서 나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은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 뒤에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마지막까지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근시안적인 시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눈앞의 것에만 집중함으로 마지막에 주어질 영광스러운 것을 놓치고 사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많은 고통과 욕과 수치를 받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 뒤에는 신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시고 수치를 제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마지막까지 보지 못하고 중간 과정만 보면서 쉽게 낙심해 버리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시고 수치를 제하여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정하신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신자는 눈에서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이고 수치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눈물을 씻겨주시기 위해서는 흘린 눈물이 있어야 하고, 수치를 제하여 주시기 위해서는 받은 수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흘린 눈물이 없고 받은 수치가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눈물을 씻겨주실 수가 있고 수치를 제하여 주실 수가 있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마지막 뜻은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 때문에 눈물 흘리고 수치를 받고 욕을 먹으며 살았던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 말이 계시록에도 나옵니다. 7:17"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러라" 또 21:4에 보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때 있을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의 성실하심과 진실하심으로 이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고 사는 신자라면 이 땅에서 어떤 고통과 수치와 욕이 있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위로를 믿는다면 말입니다. 신자가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 때문에 겪는 손해, 고통, 수치 등 모든 것은 마지막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눈물을 씻겨주시고 수치를 제하여 주시는 위로가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마지막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겪든 그것이 결코 마지막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중에서 일어나는 일에 너무 집착을 하지 맙시다. 마지막 목적지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만 생각하며 삽시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눈물이 없는 삶을 원하지만, 신자가 세상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마지막때 하나님이 씻어주실 눈물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이 땅에서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없으면 마지막때 받을 위로가 없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그래도 세상을 좀더 편하게 넓은 길로 가면서, 좁은 길은 될 수 있으면 피하면서 살고 싶습니까? 마지막때 주님이 위로해 주고 싶어도 받을 위로가 없는 신자로 남고 싶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신자는 좁은 길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주의 뜻입니다. 우리가 신자로 세상을 살려고 한다면 도저히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좁은 길은 마지막 때도 계속 좁은 길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좁은 길에서 주님을 섬겼기 때문에 마지막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위로만 잊지 않고 산다면 지금 세상에서의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의 길을 간다는 것이 너무 힘이 든다고 여겨질 때 쉽게 낙심하지 마시고, 아직 천국을 향해 가는 도중이고 마지막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마지막까지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부터 하늘의 위로를 미리 맛보며 살 수 있을 것이며 힘있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길에는 눈물도 없고 괴로움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들은 천국에 가는 길에서 험하고 나쁜 것은 다 제해 버립니다. 오로지 편안하고 휘파람 불며 여유 있게 놀면서 가는 천국을 제공합니다. 뭔가 인내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극복해야 되는 것은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 때문에 눈물이 될만한 일을 다 피해버립니다. 수치를 받을 일도 다 피해버립니다. 눈물도 없고 수치도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도중에도 눈물이 없고, 장차 천국에 들어가도 눈물이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눈물을 흘릴 일이 없었던 자에게 위로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눈물도 없이 수치도 없이 살았던 사람을 어떻게 위로하겠으며 위로한들 그 위로가 기쁨으로 다가오겠습니까?

마지막 때는 위로와 함께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8절에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는 것'입니다. 사망이란 죽는다는 것인데 그것을 멸한다고 합니다. 존재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사망이란 우리의 목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단이 멸망을 당한 것 같이 죄인인 우리도 함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시겠다고 합니다. 이 날을 기억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이 기쁨으로 열심히 주의 길을 가는 신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주님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 흘릴수록 하나님은 그만큼 많은 위로로 여러분의 눈물을 씻어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