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의 길 (사 26:1-10)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 이로다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사오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뜻은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에 이어서 성도의 눈물을 씻어주시는 것까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과연 나에게는 주님을 위해서 흘려진 눈물이 있느냐?'는 점을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모든 눈물을 흘려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대부분 주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흘려지는 눈물입니다.

눈물이란 자존심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자존심이란 자기를 포기하지 못한 것을 의미하는데,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라는 자신을 포기하지 못한 불평과 불만에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눈물까지 씻어주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님 때문에 흘려진 눈물이 있는가를 보십니다. 물론 이것은 실제로 흘린 눈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신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인가?'라는 점입니다. 나를 위해 사는 인생이라면 눈물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눈물일 것이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과 핍박 속에서 흘려지는 눈물일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육신이 잠시 머물러 살아가는 세상에서 믿음으로 인해서 힘든 일이 있다 할지라도 마지막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참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롬 5:3,4절을 보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 신자의 삶인 것입니다.

신자가 소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소망이란 마지막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을 바라보기 때문에 현재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소망은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서 흘러간다는 것을 아는 신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에서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는 일임을 믿습니까? 이것만큼은 잊지 말고 사시기 바랍니다.

요즘 세상을 산다는 것이 많이 피곤하고 힘이 드실 것입니다. '사는게 뭔지'라는 한숨이 나올 정도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전쟁터이고 고통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래도 사람들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려고 합니다. 꿈이 무엇입니까? 꿈은 세상의 성공과 출세를 향한 인간의 욕망과 인간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꿈은 육신이 잘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일이 꼬이고 잘 안될 때 낙심하고 좌절하면서 '하나님 도와주시지 않으려면 방해나 하지 마십시오'하고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댑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하고 힘이 드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도 힘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향을 받고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도무지 하나님의 영향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말씀을 앞에 두고 살고 말씀을 수시로 읽고 들으면서도 말씀을 영향은 전혀 받지 않고 사는 사람들로 차고 넘치는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관공서에 가면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대통령 일굴 익히라고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 놨겠습니까? 관공서에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은 '우리는 대통령의 다스림을 받는다.' 이런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과연 사무실에 붙어 있는 대통령의 사진을 보면서 그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까? 대통령은 부정부패를 없애자고 강조하는데, 대통령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사람들은 대통령 사진 앞에서 버젓이 부정부패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즘 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마치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단지 관공서에 붙어 있는 대통령 사진 정도로 취급해 버리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시하신 말씀이 있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 뜻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모두 무시해 버리고 자기의 뜻과 자기의 계획과 자기의 꿈을 앞세우고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영향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에게도 힘이 있기 때문에 굳이 하나님의 힘을 빌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돈, 직장, 집, 자식, 남편, 살아가는데 필요한 있을 것은 다 있는데 뭔가 아쉬워서 하나님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날 현대교인들이 천국을 기다리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제대로 된 신자, 즉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신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영향을 받아 살면서 주님을 위해 살다가 의로운 하나님의 나라에서 장차 하나님이 손수 눈물을 씻어주실 신자는 과연 누구인가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5절 6절을 다시 보면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로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높은데 거하는 자, 솟은 성으로 표현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을 좋아하며 세상의 좋은 것에 취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마지막때 낮추고 헐어버린다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좋아 보이고 세상에서 높은 것이 영원토록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낮아지고 헐어지며 짓밟음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누구에게 짓밟게 하십니까? 빈궁하고 궁핍한 자입니다. 즉 빈궁하고 궁핍한 자들이 마지막 때 천국이 오면 세상을 지배하고 짓밟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가난한 자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억눌렸던 한을 풀게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지금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 구약에서 빈궁하고 궁핍한 자들을 등장시킬 때는 항상 '자기들의 힘으로는 살 수 없다'는 의미로 등장시킵니다. 가진 것이 없고 힘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믿지도 바라보지도 못하고 항상 제삼자의 도움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바로 빈궁하고 궁핍한 자들입니다. 즉 '가난한 자'의 의미는 '자기 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힘만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이 천국을 기다리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천국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기 힘을 믿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의지하고 힘으로 삼을 것이 하나도 없이 하나님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그런 상태를 심령이 가난하다고 합니다.

나에게 돈이 없어서 슬프고, 남들은 다 좋은 집을 사서 잘사는데 나는 셋방살이하는 것 때문에 한스럽고, 남의 아이들은 착하고 공부 잘하는데 내 아이는 왜 공부도 못하고 속만 썩이나 하면서 슬퍼하고 한탄하며 하나님께 불평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세상은 믿음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드물고 말씀을 따라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어서 슬퍼하고 한탄하면서 의에 대해 주려하고 목말라하는 그런 신자가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말씀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을 믿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 건강, 출세, 이런 것들은 있다가도 없는 것입니다. 있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없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역시 주관자는 하나님 아니십니까? 남보다 실력 있다고 해서 그 실력을 믿지 마십시오. 공부 잘한다고 해서 그 지식의 힘으로 인생을 자기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돈을 벌고, 건강한 몸으로 직장 다니고 공부를 하는 가운데서도 지금 나는 하나님의 힘으로 산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인생을 움직여 나가시는데 우리가 힘이 되고 도움이 되어 드린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지식도 열심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하나님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또한 하나님 마음대로 인도해 가십니다. 여러분의 꿈과 희망이 무엇이든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 홀로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인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인도 받는 삶을 살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 뜻대로 하신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면서 찬송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감상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살려주시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우린 다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속에서 울고 웃고 짜증내고 화내는 일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살아오시면서 기뻐서 웃었던 것, 슬퍼서 울었던 것, 분냈던 것, 이런 모두가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었던 것입니다. 웃을 일도 울 일도 화낼 일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야 항상 웃을 일만 있기를 바라면서 살지만 웃을 일을 우리들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린 우리의 인생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이 그저 나에게 좋은 일이면 웃었고, 나쁜 일이면 울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자기 스스로 책임지려고 하고,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하고, 정 안되면 하나님께 지금 인생이 마음에 안드니까 내 마음에 드는 쪽으로 바꿔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드라마입니다. 하나님이 각본을 쓰시고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드라마입니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데 드라마 내용이 내 마음에 안든다고 바꿔달라고 하면 방송국에서 그 요구대로 바꿔줍니까?

같은 이치입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힘든 일이 있든 편하게 살든 그것은 하나님의 각본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고 죄가 많아서 힘들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아는 신자라면 기도할 때도 '하나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게 하소서'라고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좋은 것만 은혜가 아니라 나쁘다고 생각되는 환경에서도 은혜를 발견합니까? 모르겠으면 그것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더 좋은 것을 얻으려고 기도하지 말고, 현재 나에게 주어진 것만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런 신자가 마지막때 주의 궁정에서 거할 수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합니다. 악인도 은총을 입고 삽니다. 햇빛, 물, 공기 등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은총을 모릅니다. 은총으로 살면서도 은총을 모르는 것이 곧 악인의 모습입니다. 모두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줄 착각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잘되면 자기 힘을 과시하고 자기를 자랑합니다.

마지막때 멸망을 받는 사람들은 은혜를 안받아서 멸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살았으면서 자기 힘으로 살았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멸망 받습니다. 오늘 우리도 은혜로 삽니다. 주어진 은혜가 어떤 것이냐에 관심 두지 마십시오. 저 사람이 받은 것이 내가 받은 것보다 더 좋다는 생각일랑 모두 버리십시오. 어떤 은혜를 받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을 아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주어진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제대로된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인의 길을 가는 신자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