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 (사 27:7-13)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은들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살육 을 당하였은들 백성을 도륙한 자의 살육 을 당함과 같았겠느냐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 함을 얻을 결과는 이로 인하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로 부숴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대저 견고한 성읍은 적막하고 거처가 황무하며 버림이 되어 광야와 같았은즉 송아지가 거기서 먹고 거기 누우며 그 나무 가지를 먹어 없이하리라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이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자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자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일일이 모으시리라 그날에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파멸케 된 자와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기독교의 교리 가운데 선택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선택론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미리 예정해서 선택해 놓으시고, 그 선택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일하신다는 교리인데 이 선택론이 이상하게 오해가 되가지고 사람들이 쓸데없이 선택론에 빠져서 의혹을 가지기도 하고 자신이 선택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를 확인해 보려고 하는 나쁜 풍조까지 만연해 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흔히 교회에서 목사들이 선택론을 가르칠 때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가하면 '하나님은 만세 전에 이미 자기 백성을 택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한번 택하신 사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꼭 구원하시고야 만다. 때문에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은 아무리 타락의 길을 가고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기어코 구원시키시고,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을 받고 싶어도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쓴다고 해도 절대로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또 선택 다음에 견인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견인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붙드심'이라는 것인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아무리 죄를 짓고 타락해도 하나님의 손이 그를 붙들고 놓지를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결국 백성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다 보니까 성도들의 마음에 어떤 유혹이 일어나는가 하면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냐?'는 것을 확인해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받은 자의 모습에 대해서 많은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나는 선택받았는가?' '나는 구원받았는가?'에 대해서 확인해 보고 싶어하겠습니까? 그것은 뭔가 안심하고 싶어서입니다.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것이 확인되면 '나는 이제 적당히 죄가운데 살아도 하나님이 기어코 구원하시겠구나'라는 쪽으로 선택을 이용해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불안감 없이 마음대로 죄짓고 싶어서 선택을 보장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선택을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이런 생각이 있으면 빨리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선택은 유대인들이 생각한 선택입니다. 유대인들은 선택을 자기들을 위한 선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이방인과 달리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구원을 보장받은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자기들을 위한 하나님이었고, 모든 일을 자기들 중심으로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생각이 잠재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한 하나님이란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모든 부분을 잘못 이해하게 되는 것이고, 그 중에 하나가 선택에 대한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큰 오류가 뭐냐면 선택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선택으로만 이해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를 선택하셨다' 이것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선택을 자신의 구원에 연관시켜서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히 자신의 선택 여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엡 1:4-6을 보겠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사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아들로 택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구원이 아닙니다. 6절에 보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택하셔서 아들로 삼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들을 통해서 찬미를 받으시고자 아들들을 택하신 것이지 구원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때문에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지, 선택받았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이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자신에게서 확인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거저 주신 은혜를 찬미하는 사람인데 나는 과연 은혜를 찬미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엡 1:11,12을 보면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 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도 우리를 예정하신 이유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시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입으로 부르는 찬송 말고,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을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한 선택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은혜를 찬미하게 하기 위한 선택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옛날에도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을 택하셔서 일하신 것도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고 계시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지 그들 개인개인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선택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신자는 관심을 자기 개인의 구원에 둘 것이 아니라 '내가 과연 하나님이 은혜를 찬송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자기 구원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위한 신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관심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거저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하는 삶을 살아가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선택받은 아들이라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는 지금 은혜를 찬송하니까 선택받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타락해도 하나님이 다시 부르시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죄가운데로 간다면 그 사람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누가 선택받은 자인가 하는 것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 한순간 신앙인으로 산다고 해도 그것으로 모든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세상에서 사는 마지막까지 아들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사는지 날마다 살피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들로 택함 받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본문을 통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아름다운 포도원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포도원지기가 되셔서 포도원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데 그 속에서 움이 돋고 꽃이 피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과만 더불어 화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의 백성이 이런 삶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은 그들을 치시는데, 이때의 징계는 이방인들을 심판하시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7,8절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징계를 받는 이유는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과 화친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소위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9절에 보면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 함을 얻을 결과는 이로 인하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로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 보면 아세라와 태양상이라는 우상이 등장합니다.

우상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는 것을 의지하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우상은 자기 유익과 연관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우상의 공통점은 인간의 이익을 위하는데 있습니다. 아세라와 태양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세라는 여신으로서 다산의 신입니다. 아들을 많이 낳게 해주는 신입니다. 우리 나라 식으로 말하자면 아이를 점지해주는 '심신할머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태양상은 태양을 신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태양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농사꾼들에게 태양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 태양을 섬기는 것입니다. 날씨든 비든 항상 자기들에게 좋은 쪽으로 되어지기를 바라면서 태양을 섬깁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세상은 하나님 마음대로 하십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가뭄이 오든 홍수가 나든 지진이 나든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자기들이 원하는 쪽으로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면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삶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때문에 우상을 부숴라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알고 살아간다면 더 이상 우상은 필요 없으니까 부숴 버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축복과 저주는 하나님의 손에 달렸으니까 더 이상 다른 것을 붙들고 축복을 얻어내고 저주를 피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아세라 태양상을 부숴라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만 화친하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세상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아세라 태양상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다 부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께 '너희는 진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냐?'를 묻고 있습니다. 만약 진실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과만 화친하고 죄씻음 받은 야곱이고 이스라엘이라면, 그런 사람답게 하나님 외에 의지하는 것은 다 부숴 버려야 합니다. 아세라 태양상을 부수는 것 같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세워져 있는 우상을 다 부숴야 하는 것입니다. 돈을 의지하는 것도 부수고, 자식을 의지하는 것도 부수고, 직장을 의지하는 것도 다 부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아는 백성의 모습이고 하나님은 그런 백성을 통해서 영광의 찬미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아십니까? 은혜를 아신다면 분명히 그 흔적이 보여져야 합니다. 흔적이란 하나님 외에 다른 것과 화친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은 전혀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성경을 들여다봐도 선택받은 사람의 이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습니다. 자신의 선택의 문제에 대한 의혹은 다 지워버리고 단 하나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나에게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흔적이 있고 죄용서 받은 흔적이 있느냐를 찾으시라는 것입니다. 그 흔적이란 내 안의 모든 우상을 부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의지하는 것, 하나님 외에 화친하는 것을 다 부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엔 그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고,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바꾸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도 아니고 다만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만 살아가겠다는 고백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없으면 없는 대로, 병들면 병든 대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며 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있는가를 살펴보십시오.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11절에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이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자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자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고 합니다. 우린 애당초 지각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받을 자격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를 구하며 살게 된 것입니다. 은혜를 구하는 것도 은혜가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은혜를 받은 자가 할 일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는 백성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