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라 (사 31:1-9)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가 불려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인하여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을 인하여 굴복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산과 그 영 위에서 싸울 것이며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 하셨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저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우상,금우상을 그 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버릴 것이며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키울 것이나 여러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것이라 그의 반석은 두려움을 인하여 물러가겠고 그의 방백들은 기호를 인하여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치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을 향해서 죽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 낭떠러지다. 그대로 가면 죽는다'라고 외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같이 그 경고를 무시한 채 낭떠러지를 향해서 자기 생각대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하는 습성을 가진 인간은 경고가 사실로 닥치기 전에는 절대 믿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노아 때가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이것이 변함없는 인간의 죄악의 모습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뭔가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절대 믿지 않겠다는 심보로 살아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눈을 볼 수있을 때에는 이미 멸망을 피할 수 없을 때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지혜로운 것은 보지 못할 때 보는 것 같이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있는 신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도 뭔가를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드리기 전에 한가지 우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경고가 이번 한번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수없이 많이 되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행여 경고에 대해서 무디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만약 계속 되어진 경고로 인해서 뭔가 무디어진 마음이라면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의 경고를 처음 대하는 심정을 오늘 본문 말씀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1절에 보면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있을진저"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화있을진저'라는 말은 저주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한순간도 저주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누구인가하면 애굽에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내려가는 자들입니다. 무엇 때문에 애굽에 도움을 구하러 내려갑니까? 애굽을 통해서 어떤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1절에 보면 애굽에는 말이 많고 병거가 많고 마병이 강한 나라입니다. 이들은 이것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이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는 경고는 수없이 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의지하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에 힘있는 것을 의지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을 그대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맨 처음에 나오는 것이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처럼 섬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힘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할 때 그 대상을 무너뜨리시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이스라엘에게 보이셨던 것입니다.

애굽에 도움을 구하러 가는 사람들은 '애굽만 우리를 도와주면 우리는 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에게 선망의 대상은 애굽이 됩니다. '우리도 애굽같이 되었으면'하는 것이 그들의 소망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환상은 그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모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세상모두가 환상 속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개인은 개인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교회는 교회대로의 환상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비록 원하는 것은 다르다 해도 추구하는 그 본질은 같습니다. 힘입니다.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을 보면 '나도 저런 좋은 집에서 살아봤으면,라는 환상에 빠지게 되고, 다른 집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출세를 했다면 '내 아이도 저렇게 되었으면'하는 환상에 빠집니다. 교회는 큰 교회에 대한 환상이 있고, 국가는 부강한 국가라는 환상이 있습니다. 학교는 명문학교라는 환상, 회사는 재벌이라는 환상이 있는 것입니다. 이 환상은 누구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차피 인간의 죄가 피조물의 위치를 망각하고 신이 되고자 하는 환상에 빠진 것이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환상이란 죄인된 인간에게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환상에 빠져 살아갈 때 그 마지막이 멸망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환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즉 인간의 눈을 가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의 현실은 낭떠러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자동차입니다. 죽음을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현실을 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나도 저렇게 되었으면'하는 환상에 빠진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상에 빠진 사람들은 지금의 자기 환경과 형편에 대해서 절대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항상 불만이고 불평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의 현실과 소망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환상에 빠진 사람들의 현실과 소망은 오직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낭떠러지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세상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환상을 부수고 성경을 통해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신기루와 같은 것입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물이 떨어져서 목이 말라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물이 가득한 호수가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달려가 보면 호수는 사라지고 없고 모래만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분명히 눈에 보이는 실체를 신기루라고 표현한 것은 장차 사라지고 없어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얘기하면 역사 세계와 묵시 세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매우 어려운 말이지만 역사 세계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나 묵시 세계란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바로 이 묵시 세계입니다. 역사적인 세계는 사라질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거품과 같고 안개와 같은 것이 역사 세계입니다.

결국 역사 세계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은 묵시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도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묵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역사 세계를 절대로 믿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환상을 벗어나 있는 신자입니다.

환상이란 '나도 저렇게 되었으면'하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런 생각들이 없습니까? 자식을 대상으로 교회를 대상으로 가지고 있는 환상이 없습니까? 만약 그 환상 속에 빠져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여러분의 욕망을 위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1절에서 말씀하는 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는"자들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즉 여호와를 앙모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자신을 부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순다는 것은 내가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환상을 부수는 것입니다. 환상을 부숴 버릴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은 꿈과 소망이 있는 세상이 아니라 낭떠러지를 향해서 달려가는 세상일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그 이유는 환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희망 사항에 하나님이 가리워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예 자기의 욕망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의도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인간의 희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앙모치 않게 하고 여호와를 구하지 않게 합니다. 물론 오직 여호와가 자신의 희망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애굽을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애굽보다 더 능력이 있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알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애굽의 도움을 구하려고 하겠습니까?

인간은 자기의 희망을 가지고 환상 속에서 살아갈 때는 오직 그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에 목적을 둡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자신의 희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쁨의 대상이 아니라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이 기쁨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향해서 '화있을진저'라고 경고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절에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려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해서 마지막때 하실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돕는 자도 도움을 받는 자도 다함께 멸망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린 지금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듣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애굽의 도움을 구하러 내려가는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교회라고 합니다.

4,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가 불려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인하여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을 인하여 굴복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영위에서 싸울 것이며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 하셨나니"라고 말씀하면서 하나님은 예루살렘, 즉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는 모습은 마치 크고 젊은 사자가 입에 먹이를 물고 그것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지키는 것과 같고, 어미 새가 새끼를 품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교회를 사자와 같이 어미 새와 같이 지키고 보호하시는데 왜 이것을 모르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스라엘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에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미 새가 새끼를 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은석교회를 사자가 먹이를 지키는 것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은석교회는 전혀 두려울 것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은 교회를 부흥시키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은 끝까지 교회가 하나님의 구원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자인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어떤 일속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떨지 말고 하나님을 앙망하고 여호와께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세상으로 내려간다면 그것은 결코 교회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로 인정받는 자들이 따로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을 의지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진짜 교회입니다. 그래서 참된 교회는 언제나 평강속에서 살아갑니다. 자신의 희망사항, 모든 환상을 부숴버린채 어떤 일속에서도 조용히 여호와만 앙망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교회로 인정하시고 이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이지 교회라고 간판 붙였다고 해서 다 교회로 인정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6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애굽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거역했던 이스라엘을 향해서 돌아오라고 외치십니다. 지금은 애굽을 의지했다 할지라도 말씀을 듣는 순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리로 돌이킨다면 그 사람은 이스라엘로 인정받습니다. 돌아오는 자가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도 은석교회를 향해서 돌아오라고 외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앙망하고 구하는 자리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은우상 금우상을 다 던져 버리고 하나님만 앙망하며 살아갑시다. 그럴 때 하나님은 분명히 여러분을 도우시고 지키십니다. 항상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겸손한 신자로 살아가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교회로 인정하시고 여러분이 어디를 가나 사자와 같이 어미 새와 같이 여러분을 지키고 보호하시면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끝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