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칼 (사 34:1-7)

"열국이여 너희는 나아와 들을지어다 민족들이여 귀를 기울일지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들을지어다 대저 여호와께서 만국을 향하여 진노하시며 그들의 만군을 향하여 분내사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육 케 하셨은즉 그 살육 당한 자는 내어던진바 되며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멸망으로 정한 백성 위에 내려서 그를 심판할 것이라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 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수양의 콩팥 기름에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스라에서 희생을 내시며 에돔 땅에서 큰 살육 을 행하심이라 들소와 송아지와 수소가 한 가지로 도살장에 내려가니 그들의 땅이 피에 취하며 흙이 기름으로 윤택하리라"

인간은 강한 국가를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강한 국가만이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식처가 될 수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국가를 자신의 둥지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둥지 안에서 평안한 삶과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소망입니다. 때문에 국가가 발전하면 자기 자신도 힘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지고, 반대로 국가가 쇠퇴하면 자연히 자신도 불안하게 됩니다. 요즘같이 국가 경제가 불안하고 흔들릴 때 민중들의 마음도 불안해지고 혼란이 일어나는 것도 결국에는 국가라는 자신의 안식처가 기틀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국가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국가는 민중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해주는 안식처가 아니라 불에 태워지고 사라져야 할 심판의 대상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더러움으로 가득차 있는 악의 소굴로밖에 보시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고 조금만 노력하면 살기 좋은 안식처, 편안함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둥지가 될 수 있는 세상으로 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엔 전혀 다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 즉 국가를 멸망하신다고 할 때 국가를 자신의 안식처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단지 신의 심술 정도로만 여겨버릴 뿐입니다. 심판이라는 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세상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윤리와 도덕으로 인격을 다듬고 인간을 타락케 하는 주위 환경들을 개선하면 얼마든지 선한 사람들이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면서 신의 심판에 대해서 정면으로 도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고 해도 선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착하게 사는 사람도 악한 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는 우리의 안식처가 아닙니다. 국가는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고 즐거움을 제공해주는 튼튼한 둥지가 아닙니다. 국가는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중심으로 모여든 교회일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의 흔적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 외에는 그 무엇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는 것이 진정한 안식처이며 둥지입니다. 밖에는 바람이 불고 비가 몰아쳐도 어미 새의 포근한 날개 아래서 평안함과 따뜻함을 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교회입니다.

국가는 이러한 안식과 평안이 없습니다. 국가가 흔들리며 같이 흔들리고 국가가 불안하면 같이 불안해야 합니다. 때문에 국가를 안식처로 삼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은 국가가 흔들릴 때 같이 흔들리고 불안해 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신자는 우리의 산성이 되시고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언젠가 우리들이 갈 그 나라를 바라보면서 세상의 피곤과 불안을 물리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를 안식처로 보지 않고 멸망의 장소로 보는 것이 신자의 시각이어야 합니다.

오늘 이사야 34장도 그동안 수없이 외쳐 왔던 세상의 멸망에 대해서 거듭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열국의 멸망, 이것은 새삼스러운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다니면서 수없이 들었던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너무나 소홀히 대합니다. 마치 심판을 없다고 믿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세상은 심판 당한다는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여기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눈에는 잘사는 이방 나라가 보였습니다. 자기들보다도 편안하게 좋은 음식 먹으면서 좋은 집에서 살아가는 이방 나라들이 행복하게 보이고 그들이 부러웠기 때문에 '우리도 저들처럼 잘 살아보자'는 욕심이 일어나게 되었고 결국 이방 나라가 행하는 풍습을 따라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나라가 망하는 땅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현대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눈에 세상이 망하는 땅으로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세상이 가지고 있는 탐욕과 똑같은 탐욕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때 누구나 그들을 부러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 누구도 수고와 고통과 눈물을 벗어난 행복을 누리는 자들은 없습니다. 즉 수고와 고통과 눈물의 결과로 얻어진 잠시 동안의 편안함과 만족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세상이 생각하는 행복은 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돈이 풍족할 때 행복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와 땀을 흘려야 합니다. 고통을 견뎌야 합니다. 아끼면서 절약하면서 살아가야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돈입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 소유로 만들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기 소유로 만들었을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주는 것이 돈입니다. 따라서 돈을 벌기 위해서 수고와 고통과 눈물로 살았던 세월을 돈을 씀으로서 위로를 받는 것이지 결코 행복은 아닙니다.

참된 행복은 수고와 고통과 눈물을 벗어났을 때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것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종신토록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소산을 먹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수고와 고통과 눈물은 인간의 죄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수고와 고통과 눈물로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수고와 고통과 눈물이 없는 다른 나라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우리의 안식처가 되고 행복의 둥지가 되는 그 나라를 바라보는 것이 망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자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수고하고 고생하고 눈물을 흘릴수록 가슴에 한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한을 가슴에 품게 되면 믿음을 자신의 한을 해소하는데 이용하게 됩니다. 돈이 없어서 고생을 하고 눈물을 흘린 사람들은 돈에 대한 한을 마음에 가지게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왔을 때 하나님께 과연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때문에 신자는 세상에서 가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소유하지 못한 한을 가슴에 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에 대한 한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과 안식이 주어지는 다른 나라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신자입니다. 신자란 세상에서 고생하고 수고하고 눈물을 흘릴수록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영원한 그 나라가 그리워지고 기다려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때 세상은 참으로 비참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그 모습이 어떠할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멸망으로 정한 백성 위에 내려서 그를 심판 할 것이라"고 합니다. 멸망은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신 일입니다. 지금 세상 위에는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놓여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나무 뿌리에 도끼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 위에 놓여 있는 여호와의 칼, 심판의 칼을 보지 못하고 세상과 더불어 희희낙락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라면 세상 위에 놓여 있는 여호와의 칼을 보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멸망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자가 됩니까? 이것을 6,7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수양의 콩팥 기름에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스라에서 희생을 내시며 에돔 땅에서 큰 살육을 행하심이라 들소와 송아지와 수소가 한가지로 도살장에 내려가니 그들의 땅이 피에 취하며 흙이 기름으로 윤택하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편에서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강제적으로 피를 흘리게 해서 스스로 만족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세상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피를 흘림으로서 만족케 됩니다.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수양의 콩팥 기름에 윤택하니'라는 말씀이 곧 그 의미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희생의 피를 드리지 아니하고 교만히 행하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에 칼을 들어서 심판을 행하시고 강제로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만족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살아남을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심판의 칼을 미리 만족케하고 윤택케 하는 사람이 삽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칼로 강제로 피를 흘리시기 전에 미리 스스로 하나님께 나와서 자신이 죽어야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 자들만이 사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내가 흘려야 할 심판의 피임을 고백하는 자만이 마지막 심판의 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 가슴속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사는 것입니다.

심판을 미리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심판이 없습니다. 신자의 마음에서 늘 떠나서는 안되는 것은 '나는 주님의 희생 때문에 산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이 곧 복된 자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의 희생 때문에 내가 산다는 것을 아는 자이기 때문에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됩니다. 어제의 십자가가 아니라 오늘 십자가를 마음에 품고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열국은 망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열국과 다른 나라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중심으로 모인 나라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스도의 피가 중심이 아니라 인간의 피를 중심으로 형성됩니다. 같은 피, 같은 민족, 같은 혈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국가입니다. 한 국가 안에서도 또 조상을 따지고 성을 따지고 고향을 따지는 것이 인간의 국가입니다. 그리고 서로 자기의 혈통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피로 이루어진 혈통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혈통은 죄와 죄를 연결 지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이유도 인간의 혈통은 인정하지 않으시겠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혈통은 거부하시고 어린양의 피로 이루어진 새로운 혈통만을 인정하실 뿐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고, 오늘날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새로운 혈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피로 인해서 태어난 것은 육이요 육은 무익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은 영이요 그들이 마지막때 사는 자들입니다. 신자가 조상을 숭배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구약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도 아브라함을 섬기지 말고, 이삭을 섬기지 말고, 야곱을 섬기지 말고,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에게 간섭하셨던 그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을 흠모하고 섬기지 말고 그들에게 간섭하셨던 하나님을 흠모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조상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조상에게 간섭하셨던 그 하나님이 오늘 나를 찾아오셔서 나를 살리시기 때문입니다.

국가를 의지하지 말고 세상의 혈통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세상 국가가 우리가 살아갈 나라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모여진 나라가 우리의 나라입니다. 여러분의 진짜 형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모여진 신자입니다. 인간의 피로 맺어진 혈족의 관계는 세상이 망하는 것과 함께 사라집니다. 영원한 것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세상은 여호와의 칼이 놓여있는 장소임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강제로 피 흘리시는 그 날이 이르기 전에 미리 심판 받은 자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 죽은 자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간의 혈통을 자랑하지 말고 여러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피를 자랑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세상에는 비록 육으로 태어났으나 그리스도안에서는 새롭게 영으로 태어난 자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