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 (사 42:14-25)

사람들은 보이는 대상과의 교제를 말하면 쉽게 이해하고 또 교제를 위해서 자기가 뭘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스스로 기준을 세우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대상과의 교제를 말하면 금방 난감해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보이지 않으신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것에 대해서 뭔가 뚜렷한 기준을 두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신자들의 현실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뭐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고 동행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답을 듣지 못하고 단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경 보는 것을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에녹이란 사람이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린 에녹의 동행을 잠시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유다서에 보면 에녹은 장차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알고 세상에 대해서 심판을 경고하고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에녹의 마음에는 심판이 살아있었으며 에녹의 관심사도 세상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에녹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 하나하나를 그냥 보지 않고 심판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일고 연관지어 생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만약 심판을 안다고 해도 평소 살아가는 삶에서 심판을 잊어버린 채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신자들은 너무 자기 입장만 내세운 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겨우 예배당 안에서나 하나님으로 대우받고 있지 예배당 밖에만 나가면 하나님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생활 속에서 자기 입장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신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삶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지만 말씀을 듣고 이해했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우리들의 삶속에 그대로 녹아져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시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을 때는 이해한다고 하면서 막상 교회 밖에서 살아갈 때는 삶속에서 말씀하시고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말씀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한다고 해서 신자된 것이 아닙니다. 이해한 말씀을 통해서 인생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바르게 알고 이해했다는 것이 신자된 증거도 아니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이 말씀을 바르게 배우기 위해서 힘쓰는 것은,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믿고 그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분별하기 위해서 말씀을 제대로 배우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즉 삶과 말씀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고 하나님을 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점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키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사건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전혀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은 소경이요 귀머거리라고 책망하십니다.

16절에 "내가 소경을 그들의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의 알지 못하는 첩경으로 인도하며 암흑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지금껏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였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알지 못하는 길로, 첩경으로 이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전혀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상을 의지하고 우상을 신이라고 하는 어리석음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소경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광야 40년의 생활은 하나님보시기에는 이스라엘에게 가장 적절한 행로였습니다. 하나님을 보게 하고 자신의 잘못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은 전혀 보지 않은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들의 입장만 철저하게 내세웠습니다. 물론 광야 40년의 생활은 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두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동일합니다.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방식 그대로 저와 여러분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에게는 언제나 가장 적절한 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최고의 길입니다. 그러나 내 입장만 생각해 버리면 최고의 길이 될 수 없습니다. 피하고 싶고 원망이 나오는 길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소경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도구들입니다. 따라서 진짜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자라면 어떤 일이라 할지라도 내 입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애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인생의 사건 속에서 전혀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을 잘 알고 바르게 깨닫고 있다고 큰소리칩니다. 이런 사람이 보지도 못하면서 본다고 하고 듣지도 못하면 듣는다고 큰소리치는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마음에 두고 사는 신자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발견하며 살아갑니다. 19절에 "소경이 누구냐 내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해야 할 종, 사도들이 소경이요 귀머거리라고 책망을 듣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소경이고 귀머거리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20절에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소경, 귀머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서도 전혀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하는 것이 소경이고 귀머거리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21절부터 나옵니다. 21절"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하였으나"라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씀에 순종치를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이 22절입니다.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

즉 이스라엘로 하여금 도적 맞게 하고 탈취를 당하게 하고 굴속에 잡혀 갇히게 하고 노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키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적을 맞게 하고 탈취를 당하게 하는 등의 일에는 '너희가 나의 말에 순종치를 않는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이 하신 일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내 말을 듣고 나를 본다고 할 수 있느냐? 아니다 너희는 모두 소경이고 귀머거리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스스로 본다고 하고 듣는다고 하는 하나님의 종이고 보냄 받은 사자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소경 아니다' '나는 귀머거리 아니다'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은 지금 내가 소경이고 귀머거리라고 하고 계신다. 내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를 살피고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경, 귀머거리는 우리의 인생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경, 귀머거리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어져야 합니다. 내가 가는 곳이 어디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다 듣고 계시고 심지어 내 마음으로 말하는 것까지 다 들으시고 내 행동을 모두 보고 계심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내 곁에 계신 분으로 여기고 않고 산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신 일에 전혀 유의치 않을 것이고, 결국 하나님을 발견치도 못하고 음성을 듣지도 못한 채 자기 입장만 앞세우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어리석음만 나타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소경으로 귀머거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당에서 신자인척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목사에게 믿음이 있는 척하려고 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쓰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당에서의 행동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모든 곳에서의 행동을 보십니다.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신자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시선을 나를 향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들은 하나님을 모른 자들이 세상을 사는 것처럼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세상 사람은 자기 입장만 있기 때문에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어서 낙심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신자는 내 인생이 하나님께 붙들려 있음을 알기에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하고 이 일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깨어있는 신자입니다.

신자가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를 생각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뒷전이고 자기 일만 우선으로 생각하다 보니까 신앙생활을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내 몸부터 챙기기에 바쁘니까 나오는 것은 변명이고 핑계이고 불평이고 원망입니다.

24절에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탈취를 당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도적을 갖다 붙인 분이 여호와라고 합니다. 왜 도적을 이스라엘에게 붙입니까?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잘못했으니까 맛좀봐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만드시기 위해서 도적을 갖다 붙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면 도적을 맞고 탈취를 당하는 가운데 자기들의 잘못을 깨달으며 하나님을 발견하고 음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신자가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짜증내고 불평하고 못살겠다고 울지만 말고, 그 일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힘쓰십시오.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셨는가?'라고 하면서 여러분의 인생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보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입장만 생각하면서 세상에 마음둔 채 세상사람처럼 불평과 원망이 계속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삶도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가지고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무엇을 가르치시는가? 언제나 이것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생각하십시오. 많은 것을 보면서도 그 일에 유의치 않아서 하나님의 뜻은 전혀 발견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알게 될 것이고 몸은 고달프고 힘들어도 마음은 기쁨으로 채워진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