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사 43:1-13)

하나님께서 신자를 부르신 이유는 결코 한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평안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한 도구로 쓰시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도구로 쓰여지느냐는 것은 쓰시는 분의 자유 의사이지 쓰여지는 도구의 입장에서는 '나를 어떻게 써달라'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신자들은 자신을 도구로 써달라고 말을 하면서 어떤 도구로 써달라는 것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나를 교사로 써달라느니, 성가대로 써달라느니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나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사를 하든 성가대를 하든 그것은 하나님의 관심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진다는 것은 교사를 하고 성가대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교회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신자는 도구로 쓰여지지 않다는 결론이 됩니다. 교사를 하건 성가대를 하건 하고 싶으면 하면 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지는 것은 무엇을 맡아서 하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건 현재의 그 위치와 삶의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느냐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란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주는 역할로서의 도구이지 지상에 세워진 교회를 위해서 교사를 하고 성가대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는 자신에게 현재 주어진 모든 환경과 여건이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최적의 조건으로 주어진 것임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어려움이든 평안이든 관계없이 언제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삶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하며 사는 신자 아닌 신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인생을 자기의 것으로 여깁니다. 모든 관심이 자기에게 있습니다. 자신이 교회에서 열심히 한 것만큼 하나님은 보답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이런 사람은 좋은 일이 있으면 웃지만,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는 울고 원망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주시고 힘들게 하시는지 그 이유를 전혀 발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눈이 감겨 있고 귀가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경과 귀머거리로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본문 8절에 나옵니다.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소경과 귀머거리로 살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에게 맡긴 일이 있는데 그 일은 소경과 귀머거리된 자를 이끌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을 가리켜서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종, 또는 증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같이 멸망에 빠질 뿐입니다. 귀머거리가 귀머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전달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우리들은 소경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눈 뜬 자로 삽니까? 귀머거리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듣는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점을 오늘 우리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꾸 다른 쪽으로 관심을 두고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내 생존을 내가 책임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존은 분명히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모든 신자들은 이것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 생존을 책임지신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책임지실 것으로 생각해 버립니다. 세상에서 번듯한 인생으로 인도하실 것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 생존을 하나님이 책임지신다고 말은 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존을 자신이 책임지려고 하다보니까 자신의 삶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점차 희미해지고 나중에는 아예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뭔가 세상 사람과 다른 모습이 보여져야 하는데 생존이라는 문제에 걸려서 세상과 동일한 모습만 보여지는 것입니다. 생존을 내가 책임지려고 할 때 우리는 세상과 타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것에 고개를 숙여야 하고 타협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의 삶속에서 보여져야 할 하나님의 모습이 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함께 소경 되고 귀머거리 되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어두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양심으로 살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생존의 문제는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철저히 할 때 신자는 얼마든지 타협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내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게 되고, 교회에 와서는 안그런척 내숭떨면서 자기 허물을 감추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소경이고 귀머거리입니다.

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보면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 너를 조성하신 여호와가 말씀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조성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불렀고 우리를 자기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것이라'는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끼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신자가 자기의 신앙과 삶을 자신이 책임지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린 단지 하나님이 하신 일속에서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시다가 포기하시거나 그만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를 책임지시겠다고 하셨으면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때문에 신앙생활은 하나님에 하게 하시는 것이지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설교하는 것도 제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건강주시고 이 자리에 세우셔서 하게 된 것입니다. 은석교회가 지금까지 유지되어 나온 것도 목사의 힘이 아니고 여러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석교회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지금껏 유지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주라고 목사를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목사라면 자기 힘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자기 힘으로 교회가 유지되는 줄 착각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내세운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종의 모습이 아니라 소경이고 귀머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며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서 물과 불을 피해가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물과 불 속에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물과 불을 우리 힘으로 벗어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 힘으로 애써보다가 힘이 부족하면 기도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고 물과 불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물 불을 통과했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의 힘이 전혀 아니다는 것을 알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사람이 곧 종이고 증인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여러분을 조성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분이 여러분을 책임지시고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러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은석교회도 역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가 모여지든 흩어지든 그것은 하나님의 소관이지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분명히 '너는 내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은석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에 의해서 없애겠다고 하신다고 해도 우리는 '안됩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안됩니다'라고 나선다면 그것은 은석교회를 내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 내가 아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린 다만 하나님이 모이라고 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은석교회의 사람 수가 늘든 줄든, 재정이 많든 적든 그것으로 우리가 안타까워하고 염려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안타까워하고 염려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은석교회에 애착을 가지지 마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은석교회를 자기 소유화하면서 자기의 욕망을 심게 되고, 하나님께 자기가 바라는 교회로 만들어 주시기를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은석교회에 애착을 가지지 마시고, 십자가를 알고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함께 모이는 여러분의 형제 자매를 사랑하려고 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할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문제를 가지고 한숨쉬고 걱정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이 마음대로 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걱정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생존을 스스로 책임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래봐야 남는 것은 걱정 근심이고 늘어가는 것은 주름살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은 창조주이시고 능력이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주어진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내힘으로 살려고 하지 마시고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기를 포기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알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드러내면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진 것을 자기 힘으로 되어진 줄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소경이고 귀머거리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세상일에 바쁘신 것을 나무랄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염려되는 것은 바쁜 것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돈 벌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없다'라는 생각에 빠져서 자기 바쁜 것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일하심으로 내가 산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내가 열심히 일해서 살았다는 것만 생각하지 하나님이 배후에서 일하신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염려가 됩니다.

바쁘게 살아도 내가 바쁜 이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이고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일이 없고 한가해져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애당초부터 자신의 힘도 아니고 자기 바쁜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바쁘면 바쁜 가운데서, 놀게 되었으면 노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의 종이고 증인이다는 것입니다.

5-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방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은 자를 모으시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 누구도 건들지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백성은 반드시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그러면 누가 택한 백성입니까? 그것은 모릅니다. 다만 오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물과 불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모습이라고만 말씀 드릴 뿐이지 누가 택한 백성이다 아니다는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실 문제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과연 택한 백성의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종의 모습으로 증인된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를 날마다 점검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택한 백성 되려고 하지 말고 택한 백성의 모습이 보여지는지를 살피십시오.

내 생활, 내 신앙을 스스로 책임지려고 하는 것은 택한 백성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입니다. 종은 책임이 없습니다. 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13절에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라는 말씀과 같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린 단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찬송할 뿐입니다. 모든 일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을 믿으면서 물과 불 속에서도 평안하고 감사하는 신자의 능력을 보이는 증인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