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종류의 현실 (사 43:14-28)

각 사람마다 현실에 대한 감각이 다릅니다. 그 이유는 주어진 환경과 경험, 지식의 정도 등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현실을 느끼고 반응하는 기준은 자기이기 때문에 자신이 지금 처한 환경이나 경험이나 지식 등에 따라서 현실을 느끼는 것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가령 경제가 어렵고 실업자가 속출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들이 느끼는 현실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렵다는 감각을 모든 사람이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살기가 힘들다고 해도 돈이 있는 사람들, 즉 돈에 의해서 압박을 받지 않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어렵다는 현실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현실을 살아가게 됩니다. 가령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자기들의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고급 자가용을 굴리고 골프를 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돈 있다고 해서 골프 치고 사치한다고 욕을 하지만 사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냐?'는 말들이 그들의 현실에서는 나름대로 타당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 돈을 쌓아두고서 다른 사람들이 어렵다고 해서 그 돈을 쓰지 않고 가만히 둔다는 것은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바보 같은 짓이고 참을 수 없는 일인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성경도 사람들의 환경과 경험 지식 등에 따라서 각기 다른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는 현실을 전혀 다르게 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각기 다르게 느끼는 현실을 모두 무시해 버립니다. 다시 말해서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과 인생을 살면서 경험했던 것들 각기 다른 지식들, 그러한 모든 것을 완전히 무시해 버린 채 새로운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새로운 현실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과연 어떠합니까? 성경이 말하는 현실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 사람이 느끼는 현실을 교회도 그대로 느끼고 있습니까. 제가 볼 때는 현대 교회는 성경에서 말하는 현실을 가르치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과 똑같은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본 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 교회도 현실 속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회가 느끼는 현실도 세상사람들이 느끼는 현실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각기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세상처럼 교회도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각기 다른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 교회는 돈걱정을 하면서 하나님을 찾고 있고, 돈이 있는 교회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자기들의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있는 돈으로 열심히 자기들의 사업을 벌이고 시행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결국 교회는 돈 있는 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돈 있는 자가 교회를 도와주어야 돈 없는 교회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결국 돈 없는 신자는 교인 수를 채워주는 역할로 그쳐버리고 돈 있는 신자는 교인 수를 채워주는 것을 넘어서 가장 중요한 '현실'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현실이 무엇이기에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현실을 느끼고 그 현실에 매어 사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현실을 생각하는 것에는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현실은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환경이나 인간 경험, 지식 이런 것들을 현실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서 어렵다는 것은 우리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느끼는 현실입니다. 그 현실 속에서 낙심하게 되고 염려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무엇입니까?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돈이 많은 것이 현실이 아니라 그 돈은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돈이라는 것이 신자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나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신자의 현실인 것입니다. 신자는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를 해도 내 소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나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내 소원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기를 기준으로 한 현실을 살아간다는 증거입니다. 사업이 안돼는 것이 자기 현실이기 때문에 사업이 잘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기준으로 한 현실을 살아가는 신자는 사업이 안된다고 해도 그것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여깁니다. 그리고 사업이 안되고 어렵다고 해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소원에 자기 소원을 두고자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준으로 한 현실을 살아가는 신자입니다.

본문 14,15절을 보면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고 말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창조하셨고 그들을 구속하셨고 그들의 왕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현실은 천지를 창조하신 위대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자기들을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현실인데 과연 이스라엘은 이 현실을 현실로 느끼며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자기들을 기준으로 해서 주어진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현실을 느끼며 살았을 뿐입니다. 어려울 때는 원망했고, 잘살 때는 그것이 자기들의 힘으로 된 것인양 교만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의 현실에는 그들을 구속하시고 창조하셔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전혀 느끼지 못한 현실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역시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신 여호와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지금 여러분들은 지켜주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현실을 살아갑니까? 과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현실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세상적인 어려움은 고민거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위에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할 것 같으면 그 마음속에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은 창조의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그 능력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옛날에 일어난 사건을 회상하는 것으로 그쳐버리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뭔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고 교회를 찾아 나오게 된 것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게 되었음을 고백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숨을 쉬면서 살아가는 삶이 곧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임을 고백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내 의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속하시고 성령이 인도하셔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들의 눈을 뜨게 하시고 예수를 보게 하신 분이 바로 창조주이십니다. 옛날 천지를 창조하신 그 능력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새창조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진다면 지금 이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느껴져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창조주이시고 구속자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어려운 환경이 우리의 현실이 아니라 능력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지켜주시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살아갈 때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며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16,17절에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려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고 합니다. 이 구절은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의 애굽 군사의 추격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서 길을 내시고 이스라엘은 살리시고 애굽을 죽이신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 군대의 추격 때문에 목숨이 위험한 것을 자기들의 현실로 느꼈습니다. 그래도 불안을 느끼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홍해를 갈라서 그들로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현실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같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옛날 홍해를 가르시고 길을 내신 그분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구속하셨다고 합니다. 그 증거는 여러분이 십자가를 깨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의 현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닙니다. 위대하시고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이 옛날과 동일한 능력으로 여러분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것이 곧 여러분의 현실입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많은 신자들이 이 현실을 현실로 느끼지 못하고 뒤에서 애굽 군대가 쫓아오는 것만 현실로 느끼며 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세상을 살면서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것은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눈에 보이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현실로 느끼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현실을 느끼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을 현실로 느끼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18절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라고 합니다. 또 21절에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었습니다. 사막에 강을 내는 것과 같은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옛적 일, 즉 홍해가 갈라지고 길을 건너는 일을 기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진 그것만이 능력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된 것도 홍해를 갈라지게 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데 왜 그 능력을 보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은바 된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할 일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것은 뭘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도 창조의 능력이고, 교회를 다니는 것도 창조의 능력임을 알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을 귀찮아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모든 일을 해보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날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되어진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창조의 능력으로 새롭게 창조되어진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결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마십시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능력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 현실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눈에 보이는 현실을 현실로 여기지 마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여러분을 구속하신 하나님이 반석이 되시고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시는 그 현실을 여러분의 현실로 바라보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두려움 없는 삶을 살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가 모여서 예배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부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우리들이 그 능력을 능력으로 보지 못하고 단지 나를 바라보면서 눈에 보이는 현실에 매여서 근심하고 걱정하며 살아왔을 뿐입니다. 아무쪼록 창조의 능력을 맛보면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아무리 작게 보이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일로 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두려움 없는 현실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