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앙망하라 (사 45:14-25)

9805132076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당신이 아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안다고 하셨으면 내가 아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로서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보여주는 것은 자기를 믿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그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신 줄을 모릅니다. 그 결과로 마음이 황폐해지고 몸도 망가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인간의 죄가 있고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은 살려주심으로써 살아가는 존재인데, 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이 나를 주관하심을 알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 그 어리석음이 수고로움과 괴로움을 낳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뭔가를 생각하고 나름대로 인생을 계획하며 산다고 할지라도 그 의식이 하나님께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지 못하면 인생은 염려와 근심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안다하면서도 결국 하나님을 거스리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도 관심 없고 성경에도 관심이 없이 하나님을 믿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관심이 없이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자신에게 복이 주어지는 것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가?'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오직 관심은 '어떻게 하면 내가 영화롭게 되는가?'에만 쏠려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겉모습은 신자인체 하지만 그 속은 불신자와 똑같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하나님께만 관심 두고 성경에만 관심 두는 것이 아니라 교회 짓고 교인수 늘리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성경만 가지고는 목회성공 할 수 없다는 말을 쉽게 내뱉고 있는 현실입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겠습니까?

하나님을 아는냐는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 인간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 피조물이 창조주에 대해서 연구하고 분석한다는 것이 사실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몰라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피조물이면서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자식이 아버지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 역시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아버지에 대해서 알 때는 자식이 아버지를 연구해서 알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앉혀 놓고 아버지에 대해서 알려줄 때 알려준 것만큼 알아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도 하나님의 자식으로서 하나님을 알아야 하지만 그것은 신자 스스로 연구해서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스스로에 대해서 계시하신 것만큼 알아 가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하나님에 대해서 연구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자기의 호기심과 자기 만족을 버리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희생하신 하나님이 일에 관심을 둘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보이시는 분이 아니라 숨어 계시는 하나님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문 15절에서 그것을 말씀합니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합니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이 찾지 못하도록 보이지 않게 숨어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은 숨은 그림 찾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숨은 그림 찾기의 그림은 숨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주위의 비슷한 그림 때문에 발견되지 않는 것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숨어 계셔서 인간들이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관심을 두지 못하고 세상에 난무하는 신으로 행세하는 것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숨어있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숨어 있는 하나님은 신자가 세상의 가짜를 알아보고 그것을 부숴 버리고 가짜를 가짜라고 할 때 그 현장에 나타나십니다. 결국 신자가 가짜를 알고 가짜 속에서 진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더 이상 숨어 있는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필히 가짜 신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짜 신이 인간이 무엇을 제공하고 무엇을 약속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가짜 신도 보이지 않는 신으로 행세합니다. 그러나 약속하고 제공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 가짜 신을 따르는 자는 보이는 것에 매이게 되고, 진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을 따르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이지 않는 약속,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 매어 살아가게 됩니다.

20절에 보면 "열방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한가지로 가까이 나아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능히 구원치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니라"고 합니다.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라고 하는 것은 보이는 것을 추구하며 사는 세상 속에서 참된 여호와를 의지하고 순종하기 위해서 피난 나온 자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능히 구원치 못하는 신을 찾아서 기도하는 무리들 속에서 빠져 나온 또 하나의 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능히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을 찾아다니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21절에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이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가짜 신은 공의를 행하지 못하고 구원을 베풀지 못한다는 결론이 됩니다.

하나님은 의를 행하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의는 죄있는 자를 죄없다고 하신 의입니다. 무턱대고 죄없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희생을 피를 대신 흘리게 해서 우리 죄를 없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진짜 하나님을 만난 신자는 하나님께 나올 때 '나는 죄 있는 자다'는 것을 앞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죄있는 자를 죄없다고 하신 어린양의 피가 너무 소중해서 다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됩니다.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만난 신자입니다. 기도를 해도 그리스도의 피가 나를 살렸음을 감사하면서 항상 주님의 피를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봉사를 해도 '나는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살기 때문에 내 봉사가 귀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가 귀하다'고 하면서 봉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짜 신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입만 열면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 의를 자랑하고,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해서 복을 외칠 뿐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피보다는 내 희생이 더 소중하고 내 돈이 더 중하고 주님의 십자가보다 자기 인생이 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16절에서 이런 사람들은 결국 부끄러움을 당하고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의가 우리를 영원토록 생명 안에 살게 합니다. 죄가운데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는 것은 내 의가 아니라 주님의 의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자기 의는 무가치한 것으로만 보이고 오직 주님의 의만 마음에 박힐 뿐입니다. 이런 신자에게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22절에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앙망하십니까? 어떤 하나님을 앙망하십니까? 거짓 신을 섬기는 자들이 앙망하는 하나님은 자기 사랑에 동조하고, 자기 의를 칭찬하고, 자기를 위한 수호신이 되어주는 하나님 아닌 하나님이지만 참된 여호와를 만난 신자는 우리에게 의를 행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앙망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런 신자이기를 바랍니다. 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앞에 의를 구하는 마음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의를 아는 자는 자동적으로 자기의 의가 소멸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변함없이 자기의 의를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의를 만나지 못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너무나 귀하고 엄청나기 때문에 그 의 앞에서 감히 쓰레기 같은 인간의 의를 내세울 수 없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알게 된 신자의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구원합니다. 세상에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될만하게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무엇 하나도 우리를 구원시키지 못합니다. 때문에 여호와를 앙망하라는 것도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의를 행하시는 하나님 한 분임을 알고 그분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있든 없든, 세상 살기가 고달프고 힘이 든다고 해도 우리의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것 만으로라도 힘을 얻고 살아가는 신자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