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부 (사 4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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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천국과 세상을 각각 분리하여 생각합니다. 즉 지금은 세상만 있고 천국은 세상이 심판을 받으면 그때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세상에서 잘사는 것을 신자에게 있어야 할 당연한 축복이라고 여깁니다. 못살고 힘들고 괴로운 일이 끊이지 않으면 뭔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거나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고 다시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기도하며 하나님 마음에 들만한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과 천국은 각각 다른 나라이지만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중첩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사라지면 천국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상 위에 천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여러분은 천국을 죽어서 믿음이 좋으면 가는 장소 정도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세상과 천국이 중첩되어 있다는 것은 한가지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천국을 동시에 다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천국을 원한다면 세상을 포기해야 하고, 세상을 원한다면 천국은 포기해야 합니다. 이것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동방박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서 예수님을 찾아 베들레헴으로 옵니다. 그런데 별이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합니다. 박사들은 예루살렘의 헤롯왕과 신하들 앞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있느뇨'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헤롯왕을 왕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있느뇨?'라고 묻는 순간 나라가 둘로 나뉘어져 버립니다. 헤롯이 다스리는 나라와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구분되어 버립니다. 물론 땅덩어리가 나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두 종류로 나뉘어져 버린 것입니다. 즉 헤롯의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나라와 예수님의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나라로 구분되어 버립니다. 이 두 사고방식은 서로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습니다.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 막혀 있습니다. 교류할 수 없고, 서로 타협이 안되고 양보가 안됩니다. 그래서 한쪽은 한쪽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예수님의 정신, 예수님의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이미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침투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앞에는 세상이냐 그리스도냐는 갈림길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을 갔다가 나중에 다시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길은 마귀가 제시하는 길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천국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게 된 사람은 세상에 대해서는 자연히 눈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의해서 믿음이 흔들리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여전히 죄속에 있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죄와 상관이 없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죄속에서 구원자를 바라보게 합니다.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알고 어두움에 갇혀 있는 자신의 소망 없음을 고백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장부'입니다. 8절에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다시 생각하라"고 합니다. 장부라고 할 때 우리는 대장부를 생각하게 됩니다. 대장부란 씩씩하고 힘있고 의지가 굳건한 사람을 가리켜서 부르는 말입니다. 8절에서 '장부'가 되라는 것은 곧 신앙에서 이런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씩씩하고 힘있고 굳건한 신앙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장부가 되라고 하신 것은 지금의 이스라엘은 장부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장부가 아니다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6,7절을 보면 우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치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리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고난과 어려움과 재앙을 미리 피해보고자 하는 심리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나쁜 일이 주어지고 어려움이 오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고난과 어려움 때문에 자신의 행복이 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세상 적인 조건과 환경 속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을 위협하는 고난과 어려움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복을 지키고 유지하고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어떤 초월적인 신적 힘을 소유하고 있는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서 그것을 의지하거나 신적 힘을 발휘하는 방법이나 도구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소위 부적이고, 기도이고, 무당들의 굿입니다. 또한 소위 재수 없다는 행동은 삼가려고 하고, 무슨 일만 일어나도 '혹 내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것은 아닌가?'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간 것은 아닌가?'라고 하면서 불안해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우상입니다. 결국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마음이 굳건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목표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소망인 사람들이 항상 세상에서 일어난 일에 의해서 이리 저리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비록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치겠습니까? 교회 안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장부답지 못한 신자는 평소 주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주님의 이름을 불렀을지 모르지만 그 목적은 세상에 힘이 될만한 것을 얻기 위해서 부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돈이 힘이고 자식이 힘이었습니다. 돈 있고 자랑할만한 자식이 있다면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끄떡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이들은 결국 돈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면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듯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면서 주님을 찾습니다. 자식이 자신을 실망시키면 살 소망이 다 끊어진 듯 한숨을 쉽니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이고 자신이 없어져 버립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장부답지 못한 신앙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장부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고난과 어려움 때문에 마음 흔들리고 걱정하면서 굳건하지 못한 마음상태를 나무라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리기를 천국과 세상은 중첩되어 있고 이 둘은 서로 단절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천국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은 포기할 수밖에 없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마음이 여전히 세상에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장부답지 못한 모습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장부답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마음 졸이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이지 않습니까? 그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장부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장부란 되고 싶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일을 다시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이 일'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9절에 보면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고 합니다. 옛적 일을 기억하는 것이 장부로 살아가는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그 옛적 일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3,4절에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신 옛적 일입니다.

여기 보면 야곱 집, 이스라엘 집에 남은 자가 있습니다. 남은 자란 다 떨어지고 탈락되었는데 그래도 떨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들이 끝까지 남을 수 있었던 근거는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히 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품으시고 안으신 사람은 사랑해줄 만큼 예쁘고 사랑스런 자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3절에 '야곱 집'이라고 말합니다. 야곱이 누구입니까? 자신의 야망으로 뭉친 사람이고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인 사기꾼입니다. 여자를 얻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야곱이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습니다. 순전히 인간을 보지 않고 하나님 편에서 품어주신 것입니다. 야곱 집의 남은 자라고 하는 것은, 그 남은 자들도 다 야곱과 같은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이 야곱을 품으신 방식 그대로 그들을 품었기 때문에 남은 자가 된 것임을 말합니다. 이것을 아는 남은 자는 무엇을 믿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하심을 믿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날 남은 자는 하나님이 날 품으시고 안으셨기 때문에 천국가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자는 자신이 하나님께 의가 될만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교회 나왔다는 생각도 가질 수 없고, 자신이 잘한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품으시고 안으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행동의 여하에 따라서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의가 될만한 행동이 있으면 안심하고 든든해하고, 의가 될 행동이 없고 다른 사람보다 뒤쳐진 듯 싶으면 불안해하고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장부답지 못한 신앙입니다. 항상 자기 주위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마음이 요동을 칩니다. 이것은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죄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를 품으시고 안아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굳게 서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교회에 나오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늘로부터 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옛적 일을 기억하라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너희를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장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야곱 같은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은 내가 하늘에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나를 품으셨고 안으셨고 나를 구하여 내셨기 때문이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품으시고 안으신다는 것은 어떤 고난도 없고 어려움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있게 해서라도 세상에서 구하시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신자라면 세상의 고난과 어려움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오히려 고난 속에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더욱 믿음에 굳게 서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장부입니다.

장부는 세상이 소망이 아닙니다. 때문에 세상일이 잘 안 풀린다고 해서 고민하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돈이 없다고 해도 천국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오늘날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장부와 같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장부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이 우리 마음에 깊숙이 자리 잡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우리도 야곱 같이 교만하고 내 이익을 위해서는 남을 속이고 피해를 입히며 살아가는 인생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품으시고 안으셨습니다. 그냥 안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안으셨습니다. 이토록 예수님의 피로서 살아난 우리를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장부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를 내놔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의를 우리 속에 집어넣어서 그 의로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12,13절에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나를 들으라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이지 우리에게 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의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를 만들어 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를 만들어 내지 못해서 고난이 온 것은 아닌가라는 잘못된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 든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살린다는 약속 때문입니다. 이 약속을 믿는 자가 의안에서 사는 것이고, 의에 의해서 움직여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 즉 그리스도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이미 천국에 있는 것이고, 이런 사람들이 세상의 일에 의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부입니다.

하나님의 의로 배불렀기 때문에 세상 것에 대해서 주려하지 않고 마음 흔들리지 않습니다. 돈 많은 사람을 봐도 공부 잘한 자식을 둔 부모를 봐도 부럽지가 않습니다. 여러분이 뭔가 세상 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방황이 될 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신 일을 생각하십시오.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주라고 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을 붙들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