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 (사 5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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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

성경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어떻게 보면 기독교의 상식 같은 말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는 이 상식에서 벗어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부 예수를 모르는 몰지각한 교인들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그렇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제쳐두고라도, 소위 교회를 다닌다고 하고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보면 예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칭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을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사건 하나하나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약속으로 오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면, 오늘 우리들은 성경에서의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나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정직하게 성경을 대하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대할 때는 철저하게 자기 입장은 배제하고 예수님의 입장에 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자기 입장에 서서 성경을 대하게 되면 자기 생각이 앞서 버리게 됩니다. 성경의 내용을 제멋대로 상상하게 되고 모든 말씀을 자기 상식선에서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도 인간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말고 철저하게 예수님의 입장에서 봐야 할 것입니다.

먼저 12절을 보면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말합니다. 여기 보면 예수님께서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죄를 용납하지 않고 죄인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오히려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아야 할 죄인이 예수님의 기도 때문에 천국가게 되었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자가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입니까? 인간은 죄인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심판 받아야 할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죄인된 우리가 천국을 가게 된 것은 우리들이 훌륭해서도 아니고 믿음이 좋아서도 아니라 오직 한가지 이유, 즉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공로는 전혀 포함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우리들이 도와드린 것도 아닙니다. 우린 다만 죄만 지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모른 가운데서도 죄를 짓던 우리들이 예수님을 알았으면서도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다면 죄에서만큼은 벗어나야 마땅한데 여전히 죄가운데 살아갑니다. 다만 달라진 점은 전에는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모르던 우리들이 이제는 죄가 무엇인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붙들린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예수님을 마음에 떠올리게 되고 결국 이런 내가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자가 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우리들의 노력도 아니고 성품도 아니고 믿음도 아니며 오직 주님이 쉬지 않고 나를 위해 기도하셨기 때문이며, 그 주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우리에게서 보여질 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범죄자를 위해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범죄는 인간에 대한 잘못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잘못을 범죄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에게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범죄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주인이신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대로 세상 사람은 범죄하고 살면서 죄인 줄을 모르고 있고, 그것을 죄라고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신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면서 '나는 주님의 기도 때문에 산다'는 고백을 하며 나오는 사람에게서는 한가지 특징이 보여집니다. 그것은 '내가 했다'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든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게 한 것이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로 모여서 말씀을 듣고 감사할 수 있는 것도 주님의 기도 덕분이고, 돈을 사랑하는 내가 그래도 교회에 헌금을 할 수 있고, 내 몸을 아끼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이 교회에서 기쁨으로 봉사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주님의 기도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범죄자인 나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순간도 믿음으로 살 수 있고 주님의 마음을 드러내며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아는 신자의 마음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내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되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기도라는 것은 없습니다. 인간의 기도, 즉 내 기도는 내 중심일 뿐입니다. 내 중심에서 나온 기도가 나를 위한 기도가 되는 것은 뻔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주님을 위하고 복음을 위한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이 그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 중심을 떠난 기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과연 내 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내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기도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주님의 마음으로 하고 있는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잘해 보겠다거나,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추구하는 것들은 모두가 종교인의 작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볼 때도 기도할 때도 언제나 주님의 입장에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가령 '하나님 오늘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 높이는 신자로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누가 와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집사님은 기도도 열심히 하시고 믿음이 참 좋으십니다'라고 칭찬한다고 할 때 '제가 믿음이 좋아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게 하셔서 하는 것뿐입니다'라고 할 때 그것이 바로 주님만 높이고 주님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내 기도가 응답되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의 기도가 응답되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신자들이 주님만 높이며 십자가를 따르는 신자되기를 위해서 항상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만 좋아하는 것이 본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주님을 좋아하고 있다면, 그것은 범죄자인 나를 위해서 주님이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를 따져볼 때 내가 나 된 것은 내가 잘해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모두가 범죄자인 나를 위해서 주님이 쉬지 않고 기도하신 덕분입니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주님이 기도하시면 우리가 천국을 가게되는 것입니까?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셨고, 그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물이 되셨다는 말이나 그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셔서 우리가 죄사함을 입었다는 말은 누구나 아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 앎이 삶을 통해서 보여지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물 되심과 하나님이 그 제물을 받으신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말하는데,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께 드려질 만한 제물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세상에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깨끗하고 흠없는 제물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시지 않고 그것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제물 되게 하시고 그 제물을 받으시겠다고 하신 것은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 제물될만한 것은 전혀 없다는 것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들은 하나님께 소위 제물이란 것을 들고나옵니다. 십일조를 제물이라고 바치고, 예배당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하면서 헌당식이라는 것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땅에 있는 것 중 그 어느 하나도 제물로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 소나 양을 제물로 드릴 때도 고기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지만 먹어서는 안되고 태워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름입니다. 기름은 그 누구도 먹지 못합니다. 그러면 기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기름과 연관된 분은 예수님입니다. 구약에서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 메시아를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 역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직 메시아 되신 그리스도만이 제물의 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았던 왕이나 선지자는 다만 메시아 의 기능이 어떤 것인가를 미리 보여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목사를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목사도 역시 범죄자입니다. 따라서 목사 역시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즉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목사를 기름부음 받은 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뭔가를 바쳐서 복을 얻어내려는 발상은 결국 마귀의 발상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물을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바쳐야 할 제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우리들이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범죄자인 나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예수님께 감사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올 때, 하나님은 그 마음에서 제물 되신 예수님의 피의 흔적을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된 신자입니다.

우리는 내게 있는 것을 바쳐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발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그 발상 자체가 마귀에게 붙들려 있는 모습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만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범죄자인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 범죄자의 모습으로 범죄자같이 형벌을 받드시고 자기를 버려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제물을 기쁘게 받으시고 예수님이 기도하는 대상을 천국에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10절에 보면 씨라는 말이 나옵니다. 씨는 후손 또는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자기를 버리시고 스스로 제물 되심으로서 예수님의 씨가 탄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씨를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과연 그리스도의 씨냐 아니냐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씨는 예수님을 닮게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예수님의 입장에서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씨들의 모임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필연코 예수님의 마음을 드러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는 범죄자는 오직 예수님만 높이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해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높이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에 도움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예수님만 높이는 사람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예수님을 위한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씨의 모습이 보이는지 살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