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에 보면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는 말씀을 합니다. 지금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의 3년 공생애 동안 함께 동행하며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또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몸소 겪은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것이기에 제자들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16절에 보면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예수님은 13장에서부터 제자들을 떠나실 것에 대해 말씀을 하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을 떠나신다는 것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17절에서도 보면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나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나 다시 볼 것이라는 것이나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말씀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토록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 세상에서 다른 나라를 만드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새로운 예수님의 나라를 만들어서 예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자신들은 그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공로를 내세우며 자리다툼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세상에서 활동하고 세상을 다스릴 분으로 알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늘로 가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가셔서 성령이 오시고, 성령이 오셔야 그들이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모든 문제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성령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도와줄 누군가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원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항상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수준이고 제자들 역시 이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 본래의 생각에서는 예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인간 본래의 생각에서 이해되는 예수님은 우리를 복주시기 위해서 일하시는 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나를 믿는 것은 나와 함께 죽는 것이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죽는 것을 불행으로 알고 있는 수준으로 주님과 함께 죽는다는 것을 어찌 이해하겠습니까? 죽음 자체를 겁내고 두려워하는 수준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진리는 세상 모든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막혀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 스스로 찾아갈 수 없고 깨달을 수 없는 것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본래 생각과 지식은 접어두고 하늘에서 오시는 분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의 것은 하늘의 지혜로만 알 수 있는 것이지 세상의 지혜나 지식으로는 접근도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예 진리를 진리로 여기지 않고 팽개쳐 버리는 것이 세상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것은 인간 본래의 생각이 살아있는 우리는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절대로 진리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진리를 알고 있고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주어진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자신을 알고 성령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고 말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예수님의 것을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것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성공이고 출세입니까? 예수님의 것은 지는 것이고 죽는 것이고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 성령이 오신다는 것인데, 왜 성령이 와서 알려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지기 싫어하는 본성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는 것, 죽는 것, 섬기는 것이 진리이며 예수님의 것이라고 말해봐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셔서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에게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책망을 하시는 것입니다. 죄와 의와 심판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을 때, 예수님의 것이 왜 진리인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 힘든 것은 예수님의 것으로 살기 보다는 내 것으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 것은 이기는 것이고, 높아지는 것이고, 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것과는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린 항상 나는 죽어서는 안되고, 져서도 안되고, 낮아져서도 안된다는 유혹속에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이 낮아지신 것처럼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으로 너희도 죽으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 말이 지극히 타당하고 내가 목숨을 다하도록 순종해야 할 말씀으로 들려진다면 그분이야말로 성령이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곡하고 애통한다는 것은 장차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서 곡하고 애통하게 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심으로 근심하게 되지만 그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이런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죽었어야 마땅함을 아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있기 때문에 주님의 죽으심 앞에서 애통하고 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마련하신 하늘의 천국을 생각할 때 도리어 기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오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신자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것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