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강) 요한복음 17:2 권세

본문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2절)라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아버지께 권세를 주신 것에 대해 기도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신 권세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주어진 것인가를 분명히 하는 기도인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예수님은 우리들처럼 ‘무엇을 달라’는 기도를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해 확인하는 기도를 하신 것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기도와 차이점입니다. 즉 우리들의 기도를 예수님의 기도와 비교해 볼 때 우리는 기도의 참된 의미에서 벗어난 기도를 할 때가 많음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달라고만 하지 이미 주어진 은혜를 확인하고 돌아보는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를 생각하며 은혜 받은 자로 살아가야 할 삶을 두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좀더 풍성한 유익을 누리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고 고쳐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권세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권세하면 사람들은 권력을 상상합니다. 사람들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힘으로서의 권세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권세를 받으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권세는 분명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은 아닙니다. 사람을 지시하고 명령하는 권세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를 보면 권세를 가진 사람이 난무합니다. 특히 목사가 목사에게 주어진 권세를 말하면서 교회를 지배하고 모든 사람을 다스리려고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목사에게 권세를 주신 적이 없습니다.

또한 사회에서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든 그것을 교회에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는 세상의 권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는 죄인만이 존재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를 보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보게 되고, 결국 교회에서도 대우받고자 하고 섬김을 받으려는 악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어떤 지위나 소유를 주셨다면 그것으로 이웃을 섬기라고 주신 것임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직분 역시 결코 권세가 아닙니다. 어떤 직분이라 해도 사람을 다스리고 지배할 권세는 주어지지 않았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직 모든 신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돕고 섬김으로서 교회의 모습을 증거하는 일에 유익이 있게 하기 위해 직분을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애에서 예수님이 만민을 다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까? 오히려 만민에 의해서 죽으시는 것만 있지 않습니까?

권세란 복종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 복종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권세는 도대체 어떤 권세입니까?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습게 여겼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권세가 무엇이기에 세상이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권세에 복종하는 자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까?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권세를 주신 것은 예수님을 세상에서 높이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 즉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권세를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 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찾아 나오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 할지라도 내 쪽에서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에 대해 아예 관심을 두지도 않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자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붙들어서 죄에서 건져낼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힘을 가진 분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을 권세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권세는 우리의 심령을 다스리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붙들어서 다스리시며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는 힘이 바로 예수님의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권세에 복종하는 것은, 날마다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곧 복종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18-20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아와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만물을 주관할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하늘 아래 어디에 있든 예수님의 권세 아래 거하는 것이 됩니다. 어느 한순간도 예수님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않게 됩니다. 비록 매 맞고 고난 받는 것이 있다 해도 다 예수님의 권세 아래서 되어진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권세로서 제자들을 지키시고 다스리신 것은 제자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 믿음이 변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권세로 제자들을 다스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집니다.

오늘 우리들 역시 예수님의 권세 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지신 권세로서 여전히 우리를 다스리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가 아니면 우리는 한순간 예수님에게 마음을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과 힘을 자랑하지도 내놓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세로 되어진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예수님의 권세 아래 산다는 것은 굳건한 반석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세가 우리를 그렇게 만드실 것입니다. 이 권세를 믿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본다면 주님의 권세는 권세로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을 소망하시고 천국에 우리의 인생의 전부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권세를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