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강) 요한복음 17:11-15 보전

신앙생활을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얻기 위한 기대를 가지고 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낙심하고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신앙생활에서 알게 되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더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 때문입니다. 때문에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생활이 삶에 도움을 둘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하나님을 믿어도 아무 소용이 없더라’는 말밖에 나올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일을 돕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일을 도우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필요해서 만들어 낸 결과가 내 쪽에서는 내 삶에 득이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나에게 득이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이고 득이 안되었다고 해서 돕지 않으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돕기 위해서 일하셨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일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득으로 나타날 수 있고 때로는 손해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일이 잘되면 그것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깁니다. 반면에 안될 때는 하나님이 돕지 않으신 것이 되버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을 잘못된 길로 끌어가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 일이 잘되고 못되는 것이 우리의 영혼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내 일이 잘되었다고 해서 천국가고 못되었다고 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육신의 편안함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이 언제나 육신을 향해 있습니다. 영혼이 잘되기 보다는 육신이 잘되기를 더 간절히 원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전혀 돕지 않으시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 우리를 도우십니다. 과연 무엇을 도우시는지 오늘 말씀에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아버지께 우리를 보전해 달라는 기도를 하십니다. 보전한다는 것은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기도를 아버지께 하셨다면 아버지는 우리를 항상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신다’는 느낌이 희미한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그런 경험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전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보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면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에는 제자들만이 남게 됩니다. 이런 제자들을 아버지께 부탁을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세상으로부터 육신의 화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까? 예수님은 세상에 남은 제자들의 믿음을 아버지께 부탁을 하시는 것입니다.

14-15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신자는 예수님에게서 말씀을 받은 자로서 예수님과 하나되는 관계에 거하게 됩니다. 이는 성경책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하나된 관계에 있을 때 필히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은 환난과 핍박을 받을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속히 세상에서 구출해내시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겠습니까? 신자에게는 어려움만 있는 것이 세상인데 그러한 세상에 오래 남겨둘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려움과 고통에서 건지는 것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기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알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편안히 지내게 하는 것이 이 세상에 자기 백성으로 남겨 놓으신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남겨 놓으시면서 아버지께 부탁하는 것은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해 달라는 것입니다.

악에 빠진다는 것은 도둑질 살인 과 같은 나쁜 짓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세상의 악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오로지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그것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달라는 것은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이 세상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빠져들지 않도록 보호해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인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신자가 세상의 삶의 방식에 빠져들지 않도록 지키시는 것입니다. 신자가 아무리 말씀을 앞세우고 살려고 해도 항상 주변에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혹으로 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사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하는 바램을 가지면서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안전하게 보호해달라는 것이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아버지께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연약합니다.

여러분 세상을 보실 때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이왕이면 좀 잘살았으면'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사단의 유혹입니다. 우리 옆에 세상 사람들이 있게 함으로써 그들을 통해 우리를 흔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라고 시험한 사단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영혼을 책임지시고 천국 보내는 하나님이 아닌 내 육신을 위해 일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으로 믿게 하기 위해 세상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번성한다고 해도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에게 가장 귀한 보물은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전하사 믿음을 지켜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 감사가 지금 이 세상에서부터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편함을 누리는 것을 일부러 마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갖기 위한 목적으로 산다면 그것은 잘못된 길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편하게 하실 수도 있지만 힘들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 보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키심입니다. 이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