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강) 9:13-34 소경의 경험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된 사건을 대하면서 행여 소경의 믿음에 대해 관심을 두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믿음이 있게 되어지는 것이지 우리의 믿음을 보고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가 원하는 일을 이루어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소경의 믿음에도, 또 소경이 눈을 떴다는 일 자체에도 관심을 두지 말고, 다만 예수님이 소경을 찾아오셔서 소경에게 있게 된 일,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 옳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기 위해서 소경을 만나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눈을 뜨게는 하셨지만 그것은 눈을 뜬 자들에게 진정한 소경이 누구인가를 가르치기 위한 시작이었을 뿐입니다. 소경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결국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마음이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얻어지는 귀중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경험이 있을 때 눈을 떠서 세상을 보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떠서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이 귀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소경이 눈을 떠서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눈을 뜨게 했으니까 예수님에게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도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러이러한 일만 해주신다면 평생을 두고 하나님만 믿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유익을 근거로 한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계속되어지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이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상을 것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분명 소경도 자신이 눈을 떴다는 것으로 인해서 예수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초보의 수준입니다. 어린아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가 좋은 것을 주면서 가르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더 크고 귀한 것을 주시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 세상 것을 주시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하늘의 귀한 것을 보게 되는 눈이 뜨이게 되었을 때는 자신에게 주어진 세상 것이 별 것 아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을 뜬 소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소경이 눈을 떠서 세상을 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임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를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일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내신 자를 믿게 하기 위해서 일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대해야 할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우리 일을 이루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보내신 분을 믿게 하기 위해서 일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설령 여러분이 살아가시면서 세상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땅의 것을 풍족히 받았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마음이 그것에 머물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분을 믿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이시고 예수님을 믿게 됨으로써 세상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자리로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순순히 인정할 수 없었던 유대인들이 소경을 불러서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추궁에 대해서 소경은 예수님이 자신의 눈을 뜨게 하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증거 합니다.

25절을 보면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것을 보면 소경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그 근거는 자신이 눈을 떠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지 못하던 내가 본다는 것이 소경의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35-38절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는 말을 합니다. 눈을 뜬 자신의 경험을 의지해서 '예수가 내 눈을 뜨게 한 분이다'는 증거를 하던 그가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 그분이 인자이심을 믿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아는 마음의 눈이 뜨인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소경을 찾으신 것입니다. 때문에 소경에 대한 하나님의 일은 육신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 인자로 오신 예수님을 믿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소경은 예수님이 자신의 눈을 뜨게 했다는 것을 증거하기보다는 인자로 오신 예수를 증거하는 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만난 신자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소경의 진짜 경험은 인자로 오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눈을 떠서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경험보다 인자로 오신 예수님을 보게 된 것이 더 큰 경험으로 자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을 믿습니까? 혹시 우리가 눈을 뜬 자기 경험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수준에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자녀가 좋은 직장에 들어간 경험이나, 사업이 잘되는 경험이나, 소위 세상의 복을 받은 것을 경험으로 해서 '나에게 예수님은 이런 분이다'는 증거를 하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은 인자로 오셨습니다. 고난 받으시는 하나님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분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예수님을 만난 분은 자신이 받은 세상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 받으심으로 주어진 하늘의 은혜를 내세울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근거로 해서 인자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의 소경이 눈을 뜬 사건은 8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8장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이 선포하는 생명과 진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소경을 만나서 눈을 뜨게 하시고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알게 하시는 사건들을 통해서 눈을 떠서 세상을 본다고 해서 소경이 아닌 것이 아니라 인자로 오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면 모두가 다 소경임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토록 거부하고 예수님이 말씀하는 진리와 생명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은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를 아실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생명과 나라에 참여할 수 없는 우리가 예수님의 희생과 고난으로 인해서 참여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것을 거부한다면 그 누구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라면 분명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도 잘 알고 믿을 것이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이미 하나님의 백성된 자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대해 철저했기 때문에 구원은 당연히 자기들의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자신들을 죄인으로 여기지 않았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의인으로 여겼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생명과 진리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잘 아는 우리 역시 은혜에 대해서 혼동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 얻은 것이 아니다'는 말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합니다. 구원은 분명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인데, 그렇다면 믿어야 구원을 얻는 것이고 따라서 내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 분명한데 우리가 믿었기 때문에 구원얻은 것이 아니라고 할 때 쉽게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를 안다 하면서도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경험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즉 내가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경험에서 구원이라는 결과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붙드셨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해서 우리가 말할 것은 오직 은혜일 뿐이지 우리의 그 어떤 경험도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소경이 눈을 떴다는 것이 신앙의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한 그 어떤 것도 신앙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어떤 봉사를 하고 무엇을 얼마나 했든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보여지는 것일 뿐이지, 그것들이 믿음의 경험으로 내세워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자로서 말할 수 있는 경험은 오직 그리스도를 알았다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심으로서 인자로 오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예수님에 대한 눈이 뜨였다는 것, 이것만이 우리의 경험으로 자리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의 모든 경험을 무시해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에게 있게 된 삶의 경험에서 그리스도이 은혜의 흔적을 더욱 깊이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할 것은 그 어떤 경험도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발판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발판은 없습니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붙드신 것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우린 그리스도로 기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