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강) 11:38-44 예수님의 감사

사람들은 기적에 대해 거의 모두가 신비적이고 놀라운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즉 기적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흔히 볼 수 없는 놀라운 현상으로 보여지는 것이지 흔히 보여지는 일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일하시는 것에 대해서도 항상 특별한 것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상적이고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여지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과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됨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우리 신앙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에서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려냈다는 것보다는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실 때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입니다.

41절에 보면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듣기에는 단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씀이지만 당시 상황의 순서를 생각해 볼 때 41절의 말씀은 분명 순서가 뒤바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1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감사가 오늘날 우리들의 감사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삶의 표준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에수님 한분의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예수님 개인이 하신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기도의 모본으로 제시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예수님 개인의 삶과 행동으로만 인식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신자가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에게 있어서 완벽한 신자의 모습은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완벽하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분이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 내시기 전에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시는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인데 우리들이 하는 감사와는 다르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이 하는 감사와 다르다면 결국 우리들의 감사가 잘못되어 있음을 예수님의 감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면에서 우리의 감사가 예수님의 감사와 다르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는 것을 두고 하는 가사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때까지의 상황은 단지 무덤의 돌이 치워졌을 뿐입니다. 즉 무덤의 돌이 치워졌을 뿐이지 아직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또 나사로에게 나오라는 말씀을 하기도 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다는 예수님의 말이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덤의 돌이 치워진 것을 하나님이 예수님의 말을 들으신 것으로 말씀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39절에 보면 예수님이 무리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지시하신 것이지 하나님께 돌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말씀하시고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는 것을 두고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다는 말을 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거듭말하지만 우리 상식대로라면 이 말씀은 나사로가 무덤에 나온 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감사는 어떤 결과가 있을 때 그 결과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두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지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을 일을 두고 미리 '하나님 감사랍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를 일으켜 나오게 하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덤의 돌만 치워놓은 상태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실 본문과 같은 말씀은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예수님이 신자의 표준이라면 신자는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것을 배워야 하고 옳고 그름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행하신 것만이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행하신 것과 우리의 행함이 다르다면 그것은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잘못됨이 드러나는 말씀을 대하면서도 전혀 심각해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이 애초부터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 의한 것도 아니며, 말씀이 기준된 것도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경일 뿐 나의 삶과는 관계없다는 식으로 살았고, 자신의 삶을 말씀에 의해서 점검하는 것도 없으며, 말씀이 나의 삶을 인도하는 푯대라는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신자라면 말씀 때문에 고민되는 것이 있어야 하고 갈등이 있어야 하고 애통함이 있어지는 것이 당연한데 그러한 모습들이 없다면 그것은 나의 삶이 말씀과 거리가 멀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감사에서 우리들의 감사가 어떠한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감사가 어떤 것인가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감사가 예수님 한 분의 감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고쳐야 하고 배워야 할 감사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의 감사가 현재 우리들과는 다른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대로 우리는 말씀을 기준으로 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우리 상식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되어진 일이 있을 때 감사를 합니다. 때문에 되어진 일이 없을 때는 자연히 감사도 없게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되어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하는 습성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원하는 일이 되어지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에서 드러나 있고 확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으로,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된 것으로 확증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을 보지 않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일이 되어지지 않으면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여겨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일, 즉 내 인생에 대한 욕심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눈을 멀어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무엇 때문에 세상에 보내셨는가를 알았습니다. 죽음에 처한 자기 백성을 일으켜 무덤에서 나오게 하게 위함인 것을 알았습니다. 42절에 보면 예수님은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는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는 것은 예수님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예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둘러선 무리들에게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음을 믿게 하기 위해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항상 자신의 말을 들으시는 줄을 알았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라고 말씀하기 전에 미리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마음과 일치된 것이기 때문에 되어진 결과가 있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거나 아예 외면하고 살아가는 것이 태반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일을 고집하게 되고 우리의 일을 이루어 달라고 매달리기 일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세상에 있게 하시는지 그 이유와 그 마음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오직 내 일이 잘되면 그것으로 만족해하려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오로지 되어진 일로만 기뻐하고 감사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며 자연히 예수님의 감사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나오라고 말씀하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되어질 결과를 미리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예수님의 감사가 이런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예수님과 같은 감사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되어질 결과를 미리 아는 재주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하나님께 기도해 놓고 미리 감사한다는 것도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무모한 것이며 하나님을 농락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했으면 되어진 줄로 믿고 감사하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비오기를 기도했으면 하나님이 이미 그 기도를 들으신 것으로 믿고 하나님이 비를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하늘에 구름 한점 없더라도 우산을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있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믿음이 아닙니다.

소위 기도라는 것 중에 십일조를 얼마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도 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하나님께 많은 헌금을 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그 속마음은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것임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십일조를 얼마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 그 기도가 응답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으로 믿고 기도한대로 십일조를 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믿음을 보시고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것은 믿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고 만약 이런 것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빙자하고 믿음을 빙자한 사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감사는 결코 이런 차원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감사는 예수님의 모든 일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차원의 감사입니다. 나사로가 나오는 것도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그 이유와 일치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음을 믿게 하기 위한 일이고 무엇 때문에 보내셨는가를 보여주시는 일이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 안에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사로를 나오라고 말씀하기 전에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도 하나님 안에 있는 일입니다. 일이 내 생각대로 되어지든 되어지지 않든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하나님 안에 있는 일입니다. 이것을 마음에 두고 사는 것이 진심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내 생각을 앞세웁니다. 교회와 연관된 일이면 무조건 하나님 안에 있는 일로 여겨버립니다. 때문에 내가 원한대로 되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일 중 그 어느것 하나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결과로 드러나듯 우리에게 유익되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일이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 되어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믿음을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무리들의 믿음을 위해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때문에 신자는 어느 순간도 어떤 부분도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 있거나 하나님의 계획에서 이탈된 인생이 없습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물론 이런 이유로 인생이 고통스러울 수는 있습니다.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잘라내실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아프고 고통이 된다 할지라도 그런 고정을 통해서 나의 마음이 비워지고 대신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신자의 인생이기 때문에 신자의 감사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십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일은 분명 여러분의 신앙의 유익으로 열매맺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기에 신자는 되어질 모든 일이 우리의 신앙적 유익으로 맺어질 것으로 알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감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신자의 감사입니다. 신자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