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있는 세상에 죄없으신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에 대한 전부라면 너무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혹 여러분은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는 방법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는가?'라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기 위해서라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애당초 율법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요구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셨음을 생각해 본다면, 그렇게 하시지 않고 예수님도 세상에 보내시지 않고 말씀만으로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전능은 말씀만으로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말씀만으로도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말씀만으로도 죄있는 자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인간의 죄를 극복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전능하심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죽게 하시고 다시 부활하게 하시고 하늘로 올리우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예수님을 믿어야 죄가 용서된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라면 굳이 아들을 죽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죽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속빈 강정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은 성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늘에 전쟁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타락한 천사가 하나님에게 도전한 전쟁입니다. 그 전쟁에서 악한 천사가 패하게 되고 땅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땅에는 이미 타락한 천사, 즉 사탄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어떻게 죄가 들어오고 사탄이 존재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을 내릴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는 사탄의 세력에 의해서 타락할 것을 미리 아셨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지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이 의며 무엇이 죄인가를 확실하게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의는 구원하시고 죄는 멸하시기를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에 의해서 창조된 세상에는 항상 죄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죄의 세상에 하나님은 의를 가진 자를 등장시킵니다. 그리고 죄에 의해서 의가 핍박을 받고 희생당함으로써 세상의 죄를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세상의 죄인들 속에서 '너 너는 내 백성이다' 이렇게 점찍고 무조건 그 사람들의 죄를 용서 해 버리시고 천국으로 데려가 버리신다면 구원받은 자는 있겠지만 의와 죄는 드러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고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이 함께 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계시고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지니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고 예수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봤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배척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자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이러한 악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이 기다린 메시아가 아니라고 해서 죽여 버린 것입니다.
31절에 보면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는데 사실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세상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심판이 이르렀고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죽으시면 곧 바로 그 죄를 묻고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으로서 세상의 악이 드러나게 되고 결국 악으로 뭉쳐진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으로 규정되어지는 의미로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시간적인 의미로 이해함으로써 '예수님이 죽고 하늘로 가셨는데 세상은 왜 아직 멀쩡한가?'라는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을 죽인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 속에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입니다.
신자는 심판이 언제 이를 것인가를 따지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자는 심판의 때를 기다리고 산다기 보다는 하나님이 맡기신 인생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에 힘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심판 속에 있는 세상에서 신자의 본분을 잃지 않고 살아감으로써 세상과 그리스도안이라고 하는 새로운 나라가 구별됨을 증거하는 것이 신자된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임금도 쫓겨날 것입니다.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죄의 세력이 쫓겨날 때가 분명 이를 것입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때이기 때문에 피할 수도 취소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세상의 권력에 마음을 둬서는 안되는 사람이고, 세상 것을 쫓아가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사라지고 쫓겨날 것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을 향해서 무엇이 영원한 것이고 무엇이 진리인가를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있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왜 죽으셔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3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자신이 죽어야 하는데 그 죽음이 어떤 죽음인가를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어떤 죽음입니까?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이 죽어야 다른 죽은 생명이 살 수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24절)는 말씀입니다.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이었던 것입니다. 그 밀알이 죽지 않으면 다만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즉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죽지 않고 계신다면 다만 예수님 한분이 영웅시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으시면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서 하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알의 밀로 인해서 맺어진 많은 열매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을 들은 무리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34절에 보면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그리스도, 즉 메시아는 영원한 분입니다. 이들은 이사야 9:6-7절의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는 말씀을 그 근거로 했는지도 모릅니다. 분명 이사야의 예언에는 하늘에서 한 아들을 이스라엘에게 주는데 그 아들로 세워진 나라가 영원토록 보존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여기서 말하는 영원을 세상에서의 영원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로 오신 분이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런 자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이 그들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죽으셔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을 하지 않게 되고 배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비록 그것이 죽어야 하는 길이라고 해도 그 길을 가심으로써 순종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5절에서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고 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생명을 요구한다면 가차없이 거부해 버릴 것입니다. 결국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그 사람만이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에 의해서 세상에 증거된 의입니다.
신자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증거된 의를 따라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그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