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강) 12:46-50 선지자 예수

신앙생활은 교회 다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것으로 구원에 대해 안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원을 꼭 교회와 연관시킵니다. 마치 교회가 없으면 구원에 지장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마음대로 교회를 세울 수 없고 교회를 다닐 수 없는 국가에 남아 있는 신자들은 구원에 지장이 있는 것입니까? 교회에 안다녀도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임을 생각하고 다른 그 무엇도 개입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든 아니면 선하다고 생각하는 예배, 기도, 헌금이든 그 무엇이든 구원과 연관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만 적당히 다녀주면 다른 것은 몰라도 구원의 문제만은 보장된다는 생각이야말로 사단의 생각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구원의 문제가 교회를 다니는 것으로 해결되어 버린다면 자연히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교회를 다녀주면 됐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됐지, 자기를 부인하라느니 십자가를 따르라느니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해 버리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성경은 절대로 구원을 그러한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것 또한 교회를 다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는 지금 교회를 다니니까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다면 그러한 생각은 믿음에 있어서 걸림돌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 드립니다.

신자는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신자는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자입니다. 교회에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입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교회로 대체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으려는 버릇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이 더 확실하다는 생각이 굳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보이는 어떤 표적으로 나타나 주시기를 기대하고, 예수님 역시 세상에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신다는 것이 보이는 어떤 증거물로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버릇에 의해서 막연하게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보다는, 교회에 충성하고 교회를 위해서 열심을 내는 것을 더욱 확실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구약에서는 선지자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결국 구약에서의 선지자 활동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자기 백성을 간섭하시고 다스리셨다는 증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말씀으로 다가오신 선지자는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 1: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말씀이 되어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의 역할은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판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본문 47-48절을 보면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유는 예수님은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오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삶은 말씀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늘에 대놓고 예수님을 욕한다고 해도 하늘에서 벼락이 치거나 벌이 내리지 않습니다. 교회가 잘못을 행해도 교회가 망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잘되는 교회도 많습니다. 이러한 결과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잘못된 것은 벌을 받아야 하고 참된 것은 잘돼야 한다는 상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식으로 세상을 판단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혼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잘못된 것에 대해 아무리 말을 한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증거는 다른 것입니다. 잘못되었다면, 분명 복음과 다르다면 하나님이 벌을 줘야 하고 그런 교회는 망하게 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잘되는 것을 보니까 그 교회가 옳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심판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보여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49-50절에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 자의로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이르신 것을 그대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오직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예수님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세상이 볼 때 예수님의 마지막은 실패며 망하는 것으로 판단되어질 뿐입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선지자나 사도들의 생애 역시 세상적인 시각에서는 성공이 아니라 실패일 뿐입니다. 이처럼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증거하고 있는 확실한 증거물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증거물에 더욱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잘됐다면 '저 사람이 어떻게 했기에 저런 복을 받게 된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복은 그리스도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곧 복안에 있는 것이라고 아무리 외친다고 해도 사람들의 마음에 박혀들지 않습니다. 이미 모든 관심이 세상적인 것에 쏠려있기 때문에 세상 것이 주어짐으로써 입맛을 채워주기 전에는 그리스도니, 천국이니, 영생이니 아무리 말해도 마음에 와 닿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세상을 보지 않는다 하고 그리스도를 말하고 복음을 외치다가도 힘든 삶이 지속되어질 때 자신이 말하는 복음에 대해 의심하는 경우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인내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되어진 결과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진 결과가 좋으면 옳은 것이고 좋지 않으면 잘못된 것으로 판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든 교회가 부흥되어진다면 그것을 진리로 여기는 것입니다. 진리이기 때문에, 참된 복음이기 때문에 부흥이라는 좋은 결과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현 시대에 악한 자가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은 심판의 때가 따로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 심판하실 분이 따로 계십니다. 그리고 심판의 기준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않았다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잘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옳은 것으로 보는 것은 아주 잘못된 시각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잘된 것이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세상에 두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진리로 믿어진다면 그 믿음으로 끝까지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나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고 득이 되는 것도 없는데, 엉터리로 사는 사람들은 잘되고 성공하는 것이 보인다고 해도 말씀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가 있음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옳고 그름은 현재의 세상에서 드러나고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마지막 때, 그것도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된 것이 기준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기준 되어서 판단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때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누가 뭘 어떻게 했더니 복을 받았다더라'는 것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이고 무엇이 진리며 참된 복음인가를 살피고 주님을 좇아가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생명이다. 이것이 아니면 너희는 망한다'는 것을 외치셨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듣지 않아도 자신들의 삶에는 아무런 손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무시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멋대로 살아도 하늘은 잠잠하다는 것 때문에 말씀을 받지 않는 것에 대한 심각함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있고 그 때가 되면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이 교회에 대한 열심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우리의 착한 행동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이 증거하신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심판하신다는 것을 믿는 신자라면 모든 삶의 중심을 그리스도께 두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신 것은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백성을 세상에서 잘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는 말씀을 자기 백성들만큼은 진리로 받아들이게 하심으로써 누가 주의 백성인가를 구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 것으로 판단하지 말고 진리이기 때문에 좇는 삶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