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강) 13:12-20 서로 발을 씻기라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자기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표로써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일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기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설령 우리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들어서 생명으로 이끌어 가시겠다는 주님의 의지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구원은 확고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포기하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에 신자의 구원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고 흔들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심하고 마음대로 살아도 되겠습니까? 그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으로부터 끝없는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신자에게서는 '이제는 안심하고 내 마음대로 살자. 내 마음대로 살아도 예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구원하지 않겠는가?'라는 불순한 생각이 보여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것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의 말씀이 바로 이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13-15절을 보면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과연 무엇으로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확인되어지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신자가 행해야 할 덕목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제자들에게도 이처럼 행하라고 했으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발을 씻기는 행위를 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 돕고 사랑하고 희생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순히 행할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15절에서 예수님이 행함의 본을 보이셨다고 하시는 것은 신자에게 예수님과 같은 행함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엉뚱한 행함에 매달리지 말고 예수님이 행한 것 같은 그런 행함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함에서 잘못되는 이유는 무엇을 행할 것인가를 예수님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몽땅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의 상식과 윤리 도덕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엉뚱한 행함에서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것은 예수님이 '행하라'고 하셨다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라는 말씀에 주의해서 과연 예수님이 무엇을 행하셨는가에 먼저 관심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함은 예수님의 행함과 일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행함의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행함을 구제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것 등으로 이해하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행함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자기사람들에게 그러한 행함을 원하신다면 15절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먼저 그러한 행함으로 본을 보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행함은 분명 그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행함은 분명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우리도 서로 발을 씻겨줘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러한 행함을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제자들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을 계속 붙들어 주심으로써 깨끗함을 입은 그리스도의 은총안에 살아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깨끗하지 않은 제자들이 그리스도로 인해서 깨끗함을 입은 은총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것을 행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과연 이 행함이 무엇을 의미하냐는 것입니다.

서로 발을 씻긴다는 것은 어느 쪽도 우월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서로 발을 씻어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은 절대로 동등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깨끗함을 입어야 할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은 처음부터 깨끗하고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서로 발을 씻기라는 것은 형제를 대할 때 '더러운 내가 예수님으로 인해 깨끗함을 입었다'는 은총을 형제의 관계에서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형제 앞에서 자신의 의와 옳음을 주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태도가 보여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발을 씻김 받아야 할 더러운 자고 악한 자인데 오직 예수님의 은총으로 깨끗함을 입었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가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을 입고 있음이 확인되어지는 것입니다.

형제에 대한 사랑은 형제를 나와 동등하게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몸처럼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자신보다 훨씬 못하게 보여질 수 있지만 세상적인 기준을 아예 악한 것으로 보고 예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기준으로 해서 형제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지식과 소유를 떠나서 모두가 동일하게 예수님의 은총으로 깨끗함을 입은 존재임이 확인되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고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본받아 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서로 발을 씻기라고 말씀한 뒤에 영접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이 발을 씻기시는 본을 먼저 보이시고 예수님의 행하신 것처럼 행하게 하심으로써 뭔가 의도하신 것이 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20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홀하신 후에 하늘로 가실 분입니다. 계속해서 세상에 남아서 제자들을 부르고 그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늘로 가신 뒤에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하고 자기 사람을 부르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그 일을 염두에 두시고 서로 발을 씻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단지 신자답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행함을 하게 함으로써 자기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나의 보낸 자'가 나옵니다. 여기서 나의 보낸 자라는 것은 예수님이 보낸 자를 말하는 것으로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을 영접하는 자는 곧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곧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치'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나를 본자는 하나님을 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함이 하나님과 일치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를 영접한 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되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신자가 말하고 행하는 것이 예수님과 일치되어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신자가 말하고 행하는 것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시고 행하셔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행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예수님과 일치하는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으로부터 보냄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행하게 하심으로써 자기 사람을 찾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기 행함으로서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도덕과 윤리적인 행위로써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행함은 '우리가 깨끗함을 입은 것은 우리의 행위를 보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방적인 은총 덕분이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처럼, 신자는 서로 발을 씻기면서 '우리의 깨끗함은 우리의 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총으로 되어진 일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행함과 일치되는 것이고 그것으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어떤 경우에도 누구에 대해서도 자신의 잘남과 행위의 공로를 드러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증거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고 오히려 자신을 증거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주의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행함이 있고 너는 없으니까 내가 너보다 더 낫지 않느냐?'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을 받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는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은총을 보여줄 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행위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결코 내세울 수 있는 공로가 되지 못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말을 받아들이고 '예 맞습니다. 아멘'하는 사람이 있을 때 예수님은 그를 예수님을 영접한 자로, 그리고 하나님을 영접한 자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자는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사람을 부르는 일에 쓰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세상에 보내신 분의 뜻이 있기 때문에 그 분의 뜻을 살피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행하는 것은 그냥 행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증거하는 도구로 쓰여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