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강) 14:4-6 길, 진리, 생명

신자의 신앙에 있어서 항상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육의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의 문제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약한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6: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신이 함께 하지 않는 인간은 육체에 불과할 뿐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죄가운데 거하는 인간의 본질이 어떠한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육체에 매인 자로 살아가는 인간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육체에 매임으로 인해서 영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날마다 육체의 일로 허덕이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일생동안 육체의 일이 짐이 되고 그 짐에 의해서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게 된 것이 인간의 운명인 것입니다. 이러한 악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육체가 된 인간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생명으로 가는 길이 이미 막혀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사망으로 끝나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간의 비참함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육체가 된 인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의 일은 생각하지도 믿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영의 일보다 육체의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육체밖에 모르는 자였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우리 마음이 영의 일을 생각하는 새로운 마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육의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더욱 중요한 것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만을 보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만을 보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자 되게 하기 위해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살고, 영의 일을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으며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길과 진리와 생명은 곧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오면 되는 것이고, 예수님이 진리이기 때문에 다른 도를 깨달을 필요가 없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면 진리를 아는 것이고 예수님이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님안에 있으면 곧 생명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은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이 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길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고, 진리가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서 도를 닦고 수행을 한다고들 합니다. 이러한 세상을 향해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불교인들도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수행을 한다고들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부처의 가르침을 배운다고 합니다. 즉 부처의 가르침에서 진리가 무엇인가를 깨닫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가 그들의 길이요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어떤 교훈과 가르침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하게 하기 위함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자꾸 제자들에게 어디론가 가신다는 말을 하십니다. 이것이 제자들에게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잘 가시라고 인사할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자신들의 희망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베드로는 죽더라도 예수님을 따라가겠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을 더욱 답답하게 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어디로 가신다는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하시면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만 하실 뿐입니다. 제자들로서는 이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먼저 아버지께 가는 길이 있다는 것부터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다만 성전에서 제사드림으로서 섬기는 것이 그들의 전부였던 것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전부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감히 하나님과 함께 한다거나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에게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는 신이 전부였기 때문에 어떤 길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도마는 예수님에게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개념으로서는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시고 아버지와 함께 거하는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육체가 된 인간의 실체입니다. 하늘의 일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지금 하늘의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고 또 믿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육체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의 사람이기에 영의 일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시는 길은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율법을 실천하는 것도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좇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자신들이 사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신다는 말씀에 근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하는 것은 육신이 사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른다면 그것은 헛된 일을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께 가는 길은 아버지께 순종해서 자신의 몸을 버리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육신의 생명보다 더 큰 하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이고 그 길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인데 제자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말리고 붙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분으로 알고 그분을 섬겨주는 것으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곧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곧 생명안에 거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재주로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길로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죽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아들이 아버지께로 가시는 길이 되는 것이며 제자들을 위해서 처소를 예비하러 아버지께로 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리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이기에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곧 아버지의 생명에 거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면 하늘에 속한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하늘에 속한 자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수님 한분의 고난으로만 보려고 합니다. 날 위해서 죽었다는 것만 생각하고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어주면 천국의 문제는 다 해결되는 것으로 여기고 여전히 육신의 문제로 허덕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보고 산다면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죽으셔야 했는가를 마음 깊이 새긴다면 우리는 세상을 헛된 것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육체로 끝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처소로 인도하시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며 사랑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내 인생의 전부라는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의 전부일 수밖에 없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육으로 사는 것과 영으로 사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른 길에서 헤매는 세상과 달리 참된 길에서 진리로 살아가고 생명을 누리는 신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