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강) 14:7-12 나를 본자는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는 애당초부터 논의할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볼 수 없다는 차원이 아니라 육체가 된 인간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단절됨으로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인간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나서 보여주시기만 한다면 나는 진짜 하나님만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꿈속에서나마 하나님 보기를 소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철저하게 감추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스스로를 세상에 나타내셨던 보여주셨습니다. 다만 세상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던 것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보여줘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면 계속해서 하나님보기를 소원할 것이고, 결국 평생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지 못하고 인생을 마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면 그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6-7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후에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8절)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하나님을 보고 싶다는 것은 다만 바램으로 그쳐야 했던 문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알았고 또 보았다는 말씀을 합니다. 그러니 스스로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고 여기는 빌립으로서는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하늘 높은 곳에 계시는 분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도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높은 곳에서 우리를 살피고 계신다는 것만 생각하지 하나님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알았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자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되시고,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면 예수님만이 참된 진리이기 때문이고,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은 곧 생명에 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생명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르고서는 아버지를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믿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지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아버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아버지를 믿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가 말하는 하나님은 그 대부분이 그리스도를 앎으로 인해서 알아진 하나님이 아닙니다. 다만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개념으로 하나님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증거는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나, 또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사고방식이 현 교회가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 이상하게 하나님이라는 신의 명칭을 제외하고는 세상이 말하는 신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기능과 능력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짜 하나님이고 우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원인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제쳐버리고 인간의 종교적 개념과 상식에서 하나님이란 신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모르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스스로 계시하시고 증거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을 알고 싶고 보고 싶다면 방법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뿐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알 때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유기적인 존재와 실체론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매우 죄송하지만 지금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교회를 출입하면서 학습해온 지식과 세상적인 사고방식에 의해서 여러분의 지식으로 형성된 하나님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우려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예수님을 앎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여러분이 아는 예수님은 분명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로마군대나 유대인에게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들이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고 창으로 찌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허용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만약 하나님이 허용하지 않았다면 전 세계가 힘을 모아 예수님을 죽이고자 해도 안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죽으심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면서 외치신 말씀처럼 아들을 버리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어찌 보면 비정하다 할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까? 이처럼 하나님은 아들을 버리시고 죽음에 내어주심으로 해서 죄악 가운데 있는 세상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임을 외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본다면 그 하나님은 죄악된 인간을 버리시는 분입니다.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심판으로 갚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안에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가리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앎으로 알게 된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에게는 헌금을 많이 하면 복을 준다느니, 봉사를 많이 하면 하늘에서 상이 크다느니, 무엇을 구하든 열심히 기도하면 다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등의 말이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은 인간들이 예수님을 보지 않고 자기들 머리에서 멋대로 상상하여 만들어 낸 우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에 나를 복종시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세운 기준에 하나님이 따라와주기를 원하고만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에 대해 그렇게 사셨습니까?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에 자신을 복종시키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일에 부름 받은 도구인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내 개인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에 복종하는 것입니까?'를 물으며 살아야 하고,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하는 것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신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할 것은 예수님을 앎으로 하나님을 알고 본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문제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내가 하나님을 알았고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봤다 이제 됐다'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봄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합니다. 지금은 과연 누구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이고 알게 하시는 것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신자를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알게 하셨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게 하셨다면 그것은 여러분 개인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이 시대에 여러분을 예수님을 보이고 증거하는 자로 세워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계속 드러내시고 보여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도덕과 윤리적인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즉 도덕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심으로써 아버지가 누구신가를 보이신 것처럼, 신자가 주님의 뜻에 복종하기를 힘쓰며 살아갈 때 자연히 하나님이 누군신가가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된 여러분은 삶의 목표를 하늘에 소망이 없는 세상의 사람들처럼 세상의 것을 소유하고 얻기 위한 것에 두지 마시고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이루고자 하시는 그 일에 맞추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세상에 남겨지고 있음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자신에게서 보여지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삶의 목표와 뜻을 그리스도에게 맞추고 살아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