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강) 14:12-14 신자의 기도

인간은 나약한 존재입니다. 육신적으로든 심적으로든 결코 강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그만 일에 대해서도 염려하고 근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하나님은 기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신자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맡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맡김으로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이루어주신 일에 순종하고자 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힘으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힘을 믿는 것이지요. 자신의 능력과 힘을 믿기 때문에 심령에 궁핍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자신의 힘으로 신앙을 지킬 수가 있고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주님께 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신자란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주님을 의지하는 것을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성경에 마음을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성경을 공부하면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온통 자신들이 목표하고 원하고 계획한 것을 내세우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고치지 않으면 결코 신자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기도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13절에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14절에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구하든지 시행한다는 말씀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즉 무엇이든지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철저하게 왜곡되어진 인간의 기도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기도하십니까? 금요기도회에 참석하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참석하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기도라는 행위를 하고 있는가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삶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방식이 여러분의 힘으로 계획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 힘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고 되어지는 일에 순종하고자 하는 방식이라면 그것이 곧 기도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라는 행위는 수시로 주어지는 삶에서 믿음으로 굳게 서지 못하고 흔들리고 염려하고 약해지는 자신의 모습이 보여질 때 애통함과 안타까움에 자연히 기도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결코 강요할 성질의 것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구하면 시행한다'는 것은 주님이 친히 하신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하십니까? 아마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러한 경험을 한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구하든 다 이루어주시더라'는 경험이 아니라 '아무리 기도해도 안되더라'는 경험이 태반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구하면 시행한다'는 약속에 대해서 강한 부정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기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오늘은 '무엇이든 구하면 시행하신다'는 내용에 대해 살펴봄으로서 과연 기도가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12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는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 뒤에 기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무엇이든 구하면 시행한다'는 말씀을 12절과 연관해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12절을 무시한 채 기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왜곡된 기도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2절은 내용대로만 이해한다면 예수님은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이보다 큰 일'즉 예수님의 일보다 큰 일을 할 것이라는 구절입니다. 어떻게 감히 사람이 예수님의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12절은 그렇게 말합니다. 이것까지 바르게 이해할 때 기도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믿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본문대로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은 우리의 일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을 하기 위한 힘이요 능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것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믿음이고 거짓된 믿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잘못 이해하게 되면 믿음을 사회에서 구제하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 세상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믿음이 좋은 것으로 평가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옳은가를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앎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하신 일이 세상이 말하는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까?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일은 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하시고 복음을 전하신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병을 고쳐야 하고 기적을 행하고 전도하면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과연 누가 예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할 수 있고, 38년된 병자를 고칠 수 있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의 일은 병고치고 기적을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병자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니면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단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오직 한가지 일을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죄인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신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바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즉 예수님이 해야 할 일을 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바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었음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그러면 병고치고 기적을 행하신 것은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그것들은 모두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고 가르치는 도구였음을 뿐입니다. '장차 저희가 죽일 나 예수는 이러한 존재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죄를 위해서 오신 분인데 그분을 죽인 것이 너희라는 것을 보이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믿음은 곧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죽는 자가 되게 한다는 것이 12절 말씀의 의미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곧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죽고자 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과연 누가 살 수 있습니까? 살고자 하는 것이 세상의 방식이고 인간의 본질인데,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거스리고 죽고자 한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 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즉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살고자 하는 삶이 아니라 죽고자하는 삶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여전히 자신을 살리고자 하는 본성이 있기에 믿음과 수시로 부딪히며 갈등하면서 결국 자신의 본성에 순종해 버리는 나약함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나약함을 파악하고 하나님의 믿음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애통하는 심령의 궁핍함이 있는 신자는 자연히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며 도와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살기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오히려 주님처럼 죽는자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의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포기하기 위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기도에 그대로 시행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즉 '무엇이든'이라는 말은 우리의 욕심에 의한 '무엇이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무엇이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도 주님의 이름만 들먹이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일에 걸맞는 것을 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십자가에 죽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일보다 큰 일을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신자가 믿음으로 행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게 된다면 그것은 인간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일보다 큰 일을 한다는 것은 너희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희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고 계시며 그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사는 것, 이것이 신자의 일인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