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강) 14:12-15 신자의 기도(2)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 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것을 실제로 보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이기에 비현실로 여기고 지나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마치 보고 있는 것과 같은 현실로 여기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론이고 예수님도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분입니다. 성령 역시 볼 수 없는 분입니다. 하늘의 것, 즉 영생이니 생명이니 하는 것들 역시 죄인된 우리들의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미심쩍어 합니다. 불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까지 하늘의 것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믿음은 단지 말에만 있을 뿐, 삶에서 그 자신을 지배하는 능력으로 자리하지를 못합니다.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은 보이는 것을 믿습니다. 보이는 것만이 현실이며 참된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단지 가상으로 여기려는 버릇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보이는 것으로 확인하려고 하기 때문에 결국 눈에 보이는 증거물이 없다고 여겨지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보이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합니다. 보이지 않아도 무작정 믿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보는 것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의심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가상도 아니고, 환상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라 날마다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는 자의 기도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현실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세계를 현실로 보기 때문에 결국 참된 현실인 믿음을 위해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못하는 현실에서의 소유와 복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엉뚱한 것을 보고 있다는 것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의 기도는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의 기도는 예수님이 중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더 귀하고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자연히 자신은 포기되어지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기도로 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13절에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신자의 기도가 아버지의 영광과 연관되어 말씀되어집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시행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응답하시는 이유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기도와 다른 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영광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기도 응답을 바라는 것 역시 자기 영광을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시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바른 기도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응답하셔서 내가 잘되면 그것으로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내세워서 결국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것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라면 예수님은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지 못한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장사해서 많은 돈을 벌어서 성공을 했어야 아버지께 영광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약자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으신 것은 결국 아버지를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밖에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과 신자는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살아갑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뜻과 마음이 우리와 연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는 것이 신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고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실 길은 따로 있었던 것이고 우리가 가야할 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신자로 부르신 것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감으로서 세상에 남은 예수님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신 길이 곧 우리가 가야 할 길이며 그렇다면 예수님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신 그것이 곧 우리가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가난한 자는 아버지의 영광에 해가 된다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만 영광을 얻으십니다. 즉 아들의 일로만 영광을 얻으시는 것이지 그 어떤 인간의 일로도 하나님께는 영광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일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광을 자기들 멋대로 꾸미고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상관없이 인간의 행위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해보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뜻과 마음은 무시해버린 불신앙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아들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아들이 하신 일만이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하늘에 계신 지금에 있어서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것은 신자가 아들의 일을 행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들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아들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아들이 하신 일을 위해 구하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아들이 하신 일을 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아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아들의 이름,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을 다만 기도의 정당성을 위해서 하는 주문처럼 여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말을 해야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신의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수준의 기도는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할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는 그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물입니다. 마음에 그리스도를 두고 살아가는 신자라면 그리스도가 가신 그 길을 가기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세상의 일을 두고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음에 그리스도가 있는 신자라면 세상의 일에서도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 되어지기 위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신자가 주님의 일을 두고 기도할 때 예수님은 분명히 시행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즉 신자를 통해서 예수님의 일이 계속되어지게 함으로써 아버지께 영광이 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두고 기도하시든 먼저 이것이 주님의 이름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자식이 대학에 합격하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먼저 내 자식이 대학에 합격하는 것과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생각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믿음은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꼭 대학에 합격시켜주기를 바라는 욕심에서 대학에 떨어진다고 해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게 도와달라는 기도로 뒤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에 대학에 붙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면서까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살아가지 못하는 자 되는 것을 더 두려워하기에 그러한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이름에 합당한 기도이며 예수님은 그 기도를 분명히 들으시고 시행하실 것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말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십니까? 기도하신다면 무엇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여러분 자신의 일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진심으로 여러분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되어지기 위해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하십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잘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 살아가고 있음이 그 기도로 증거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참으로 기뻐할 일입니다. 하지만 욕심에서 헤어나지 못한 기도가 계속되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저주만 쌓아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기도 잘못했다고 지옥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말씀을 통해서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기도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곧 믿음에 있지 않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기도가 문제가 아니라 믿음 없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말씀을 대할 때 말씀은 지금 나를 고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임을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합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뤄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주님께 도움을 구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나의 관계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가 내가 지금 주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기도가 오직 주님의 뜻을 위해 사용되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