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절에 보면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이 영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왜 진리의 영이라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안하는 것 같습니다.
진리의 영이라는 것은 진리를 위한 영이라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은 진리를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을 두고서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나에게 임하시면 무슨 신비한 힘이 주어진다든지 신령한 체험을 한다든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에 머무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의 영을 세상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에 대해서는 세상도 말합니다. 무당들도 신내림을 받았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신내림을 받았다는 것이 곧 영이 임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영이 임해있기 때문에 신비한 힘이 주어지고 그 힘으로 앞일을 예언하기도 하고 병을 고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 역시 성령에 대해서 이러한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많습니다. 신자가 성령을 받은 것을 마치 무당이 신내림을 받은 것처럼 하늘에서 신비한 영적인 것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내가 신비한 힘을 사람으로 되는 것을 성령 받음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성령을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성령 받은 표를 자신의 경험으로 확인하려고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성령이 들어왔다면 분명 어떤 변화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감정의 상태가 아무런 변화도 없는 밋밋한 상태로 있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상식과 지식을 그대로 적용하여 성령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일 뿐이지 성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성령이 어떤 분이시고 무엇 때문에 성령에 오셨으며 성령을 받은 자에게서는 어떤 현상이 있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빌립이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아마 빌립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마음은 사실 우리의 마음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싶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에는 단지 성경만 보고 목사의 말만 듣고 믿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불만일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성경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고 하지만 성경만 가지고는 안되고 실제 내 자신이 체험하고 확인함으로써 성경의 내용이 사실로 여겨졌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만약 자신이 직접 보고 체험을 하게 되면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하지도 않을 것이고 확고한 믿음으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고 싶기도 하고 기적과 같은 신비한 일을 체험하고 싶은 마음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분명 직접 보고 체험한 것처럼 믿음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을 위해서 좋은 방법인데 하나님은 왜 그 방법대로 하지 않으시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성령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말합니다. 다른 보혜사란 성령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하늘로 가시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은 하늘로 가시지만 성령이 오심으로써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과 함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가시면 세상에는 계시지 않고 볼 수 없게 되는 것인데 어떻게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17절에서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진리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영이라는 것이고 예수님의 영이란 예수님께 속한 영으로써 오로지 예수님을 증거하고 전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진리의 영으로 오신 성령이 우리에게서 하시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깨달은 그 상태를 가지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실제 몸이 함께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만나게 되는 것을 곧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신자된 자가 이것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마치 성령이 일부러 오시지 않아도 내 믿음은 내 알아서 잘 할 수 있다는 식입니다. 내가 마음만 굳게 가지면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고,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도 모두 나에게 달린 문제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17절 뒤의 말씀을 보십시오.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알거나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에 우리도 속해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리의 영이 오심으로써 진리를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길을 가도 마다하지 않고 따라갈 수 있고 어떤 길로 인도하든 불평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그 길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이 일하신 결과임을 말씀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런데도 과연 성령이 오신 사건이 우리에게 별것 아닌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기적을 체험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 사실 인간적인 면에서는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기준으로 생각할 때 그러한 마음은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뭔가 체험을 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말씀만으로는 내 속이 채워지지 않음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여러분이 기적을 체험한들 그 체험으로 구원받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되어집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믿으면 그것으로 구원의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됩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다시 병 고침 받는 기적을 체험하라는 요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믿는 것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뭔가 그것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는 의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고 신비한 체험도 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구원은 그리스도를 알고 믿음으로 되어집니다. 때문에 구원에 가장 확실한 것은 구주되시는 그리스도를 알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우리의 지식과 지혜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진리의 영으로 오셨다는 것은 구원을 사모하는 성도에게는 놀라운 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 가장 확실한 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알고 깨달은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말고 다른 증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깨닫고 믿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달리 무엇을 체험하고 싶다느니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성령이 오심으로 그 마음이 그리스도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체험을 하고자 하고 눈으로 보고자 하는 것은 신앙의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오심으로써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고 오직 그분에게만 마음을 두고 살게 한다는 것에 대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홍해의 기적을 목격하지 못했고 병고침 받은 기적이 없다고 해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았다면 세상이 맛볼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을 맛본 것입니다.
성령이 오신 것은 자기 백성을 진리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은 사람은 그 어떤 수고를 해도 알 수 없는 것이 진리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진리가 앞에 있는데 진리가 무엇인가 묻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이 오셨다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리의 영으로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