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24:1-13 내가

사람에게는 과거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나가 버린 세월들이 사라지지 아니하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과거 없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누구든 세상에 존재한 시간이 있는 이상 과거는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살아갑니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후회하기도 하고 또는 과거에 비해서 낮아진 현실에 대해 비관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과거에 잘한 것, 잘된 것을 추억하면서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는 과거에 고생했던 것을 회상하면서 '옛날에 그렇게 고생을 해서 지금 이만한 것을 얻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이렇게 과거에 집착을 하는 것은 모두 현실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나이가 든 사람은 과거에 젊었을 때를 생각하면서 나이든 현재에 대해서 낙심을 하기도 하고, 실패한 사람은 과거에 잘나갔을 적을 생각하면서 실패한 현재에 대해서 낙심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옛날 일을 기억하는 것은 자연스런 것입니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을 일부러 지울 수도 없는 것인데 어떻게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과거를 기억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말도 있지만 과거를 기억하지 말아달라고 해서 마음대로 기억하지 않을 수가 있다면 세상사가 참으로 편할 것입니다.

마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자료를 삭제하고 입력하듯 과거의 일을 나쁜 것은 삭제하고 좋은 것만 입력해 넣을 수 있는 것이 사람 뇌의 구조라면 과거 나쁜 기억 때문에 고통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 머리에 있는 뇌라는 것은 우리들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다르게 머리 스스로 운동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 없는 사람이 없다면,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거 속에 살아가고 과거를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과거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과거에 대해서 바른 인식을 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삶이란 모두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든 현재든 또 앞으로 미래든 상관없이 모든 것은, 흘러가는 세월 속에 존재했던 모든 것은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상관없이 그 모든 일에는 하나님이 개입하여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지금 하나님이 개입하신 일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말씀을 드린 것은 먼저 여러분에게 분명히 할 것이 있어서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신 일에 있어서 '나쁜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이 우리 인생이라면 과연 인생에 있어서 '나쁜 일'과 '좋은 일'의 구분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쁜 일'과 '좋은 일'은 모두가 육신과 연결된 세상일이 기준이 되어서 판단되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고, 도움이 되지 않고 손해를 보는 일이라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준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롬 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란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나 나쁜 것으로 여기는 모든 것을 포함한 것입니다. 결국 나쁜 일이라고 여겨지는 것도 결과는 선을 이루는 것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들이 지금껏 지나온 세월 속에 나쁜 일이란 없었으며, 또 현재에도 나쁜 일은 없고, 앞으로도 나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해서 나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면 모두 나쁜 일이라고 여겨버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지향하는 목표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리기를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셨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우리 인생이 있는데 하나님이 불청객으로 들어오셔서 훼방을 하시고 자기 마음대로 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우리 인생이란 하나님의 일 자체입니다. 즉 하나님이 하시고자 한 일이 우리들의 인생으로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지, 우리 인생이 따로 있었는데 하나님이 불쑥 들어오신 것은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인생이 하나님의 일 자체라면 인생을 나쁜 일 좋은 일로 구분할 수 없으며, 과거 역시 좋았다 나빴다는 것으로 회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거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파들을 모아 놓고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까지의 인생 여정을 조목조목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과연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에 대해서 얘기를 하겠습니까? 23장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서 지도자 위치에 있는 자들을 불러서 '나는 나이 많아 늙어서 이제 죽는다. 나는 죽지만 너희들은 앞으로 우상을 섬기지 말고 이방 신의 이름을 부르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고 살아야 한다'는 당부를 합니다. 그리고 24장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불러서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앞으로 살면서 이방신의 이름을 부르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말로 할말을 다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과거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섬기겠다'는 자신의 결심과 작정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결심하고 하고자 한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심 삼일'이란 말이 있습니다. 흔히 담배를 끊는다든지 술을 끊는다든지 할 때 '작심 삼일'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아무리 하고자해도 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도박을 끊는 것, 마약을 끊는 것, 이 모두가 마음먹고 생각한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중독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담배에 매이고 술에 매이고 도박에 매이고 마약에 매일 때 이미 그는 자신을 붙들고 있는 것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지배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믿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믿을 대상을 고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믿고 살아가던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돈을 믿든지 아니면 권력을 믿든지, 그것도 아니면 자식을 믿든 자기 직장을 믿든 사람은 누구나 믿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세상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지금까지 믿고 의지했던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자신을 붙들고 있던 것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붙들린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과연 이러한 믿음이 우리가 결심하고 생각했다고 해서 마음먹은 대로 되어지는 것입니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누구를 섬기겠는가? 여호와를 섬기겠는가 이방신을 섬기겠는가?'라고 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이구동성으로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16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대답을 했을 때 여호수아는 뭔가 안심을 한다든가 아니면 그들을 대견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스스로 여호와만 섬기고 이방신은 결단코 섬기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다짐하는 이스라엘에게 '아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섬기지 못할 것이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믿는다는 것은 생각하고 다짐한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다짐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호수아의 이 말이 이스라엘을 무시하는 말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이스라엘의 믿음에 대해서 너무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생각되십니까? 하지만 여호수아의 그 말은 인간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음이 생각처럼 되어지던가요? 여러분은 설교를 들으면서 수없이 많은 결심을 할 것입니다. '주님만 있으면 됩니다'라고 할 때 '그래, 주님만 있으면 되는데 왜 고민을 하는가? 돈 때문에 근심하지 말고 주님만 믿고 살아가자'라는 생각을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회에서는 얼마든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밖에서 여러분을 기다리는 것은 '현실'입니다. 당장 돈이 필요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결국 현실은 여러분이 교회에서 했던 생각과 결심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믿음의 현실이 아닙니까?

신앙생활이 생각처럼 쉽게 되어지는 것이라면, 믿음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도 바울이 무엇 때문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탄식을 하면서 자신에 대해 책망을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조차도 믿음의 문제에서만큼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하고자 해도 안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에도 '불가능'이란 말은 붙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남자가 아이를 낳는 것까지도 어쩌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현대 과학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불가능'이란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고자 한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세상에 붙들린 자로 태어납니다. 그러한 사람이 세상에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께로 간다는 것이 생각처럼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다짐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생각으로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삶을 통해서 항상 증명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지 마시고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시라는 것입니다. 삶에서 만나지 못한 하나님은 여러분을 다스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바르게 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해도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다면 결국 삶과 생각은 각각 분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에서 여호수아가 과거에 대해서 나열하고 있는 것도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삶속에 존재하셨던 하나님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2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말합니다. 출발부터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가족이었음을 언급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비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다면 아브라함 역시 아버지를 따라서 우상을 섬겼을 사람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이끌어 내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고, 그 씨를 번성케 하기 위해서 이삭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출발이 우상을 섬기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결코 스스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모인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으로 섬기는 자로부터 이끌어 냄을 받은 자가 이스라엘입니다.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믿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이처럼 간단하고 명료한 사실을 사람들이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간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각으로만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과거를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의 출발이 과연 믿음입니까? 하나님입니까? 그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믿음은 없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고 세상 것을 의지하던 자가 이끌어냄을 받아서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내가'라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내가'라는 말이 12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내가'라는 말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모든 과거는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되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가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일이고, 이삭이 주어진 것도, 야곱과 그 가족들이 애굽으로 가게 된 것도, 모세와 아론을 이스라엘에 보낸 것도, 애굽에 재앙을 내린 것도, 홍해를 건너게 된 것도, 그리고 지금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것도 모두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이스라엘의 손이 들어간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과거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과거를 말하고 있는 것은 단지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에 잠겨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말하고 싶은 것은 너희들이 가나안에 오게 된 것은 아주 먼 옛날 우리들의 조상인 아브라함 때부터 이미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지나온 과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오늘 현재의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과거의 하나님과 현재의 하나님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항상 변화합니다. 과거의 하나님과 현재의 하나님을 각기 다르게 생각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와 나쁜 일이 있을 때의 하나님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과거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다.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다'라고 하면서 좋아하다가, 나쁜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나에게 왜 이렇게 하는가?'라고 하면서 불평을 합니다. 과거에 좋으신 하나님이라면 현재에도 좋으신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좋다가 현재는 나쁘다면 그것은 한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두 자신의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서 하나님을 각기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게 되는 이유입니다. 자신의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너희는 시작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자들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날 너희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된 이유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애굽에서 고생을 하던 것이나 홍해의 위기를 겪게 된 것이나 광야에서 모진 고생을 하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각만 하지말고 실제 삶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은 이방신을 부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으로만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생각으로만 신앙의 삶을 살아가지 마십시오. 생각을 한다고 해서 믿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아시고 또 생각하신다면 그 생각이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보여져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당부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진심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임을 안다면 그들의 삶은 이방신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여호와만 섬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방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현재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현재에 대한 불만이란 곧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항상 현재적인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과거는 어디까지나 지나간 것입니다. 지난 과거가 현재의 신앙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과거를 말하는 것은 '옛날에는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렇게 잘나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너희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나를 있게 했다면 오늘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현재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면 불평이나 원망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만나고 삶으로 증거되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적은 것이 아니라 현재 처해 있는 곳에서 이미 받은 은혜를 따라 넉넉하게 살아가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현재에 대한 불만족과 원망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자신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자기 만족을 위해서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생각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져버린 분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만나십시오. 인생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것이라면 우린 삶 속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과거에도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고생과 어려움 속에서 당시에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는데도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은혜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을 오늘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섬기십시오. 부족한 것이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것을 선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지금의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섬기고 경외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