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유다서 1:9-10 천사장의 변론

<본문>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유다서 1:9-10)

<설교>

사람은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철저히 엄격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옳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해 본적도 없으면서 남이 옳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는 마치 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사람인 것처럼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인간은 교만, 시기, 핑계, 과장, 비판, 위선, 거짓, 사기에 익숙하지 정직, 가난, 청결, 온유, 겸손과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아예 반대쪽에 등을 돌리고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 겸손하고 정직하고 온유한 사람이라면 교만과 비판과 위선과 거짓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겠지만 교만한 사람과 똑같이 교만에 익숙한 자로 사는 것이라면 판단은 그의 몫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비판이란 악에 익숙한 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비판은 오직 예수님의 권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선이십니다. 그러므로 선악이라는 판단의 모든 기준과 근거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선 자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맞지 않으면 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 하여 절대적 선이신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자기 영혼과 삶 속에서 배제해 버린 채 독립을 하게 되자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을 하나님처럼 자기 자신의 생각과 기분에 두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이후의 모든 인간은 의사 판단의 기준을 자기에게 두어 남보다 자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신의 잘못에는 한 없이 관대해지고 남의 허물에는 철저히 엄격해진 것입니다.

신자가 된 것은 불신자시절과는 180도로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그럼 이 문제에 대해 신자는 불신자와 반대로 내 잘못에는 한없이 엄격하고 상대의 허물에 대해선 끝없이 관대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신자의 달라진 모습입니까? 그래서 잘못된게 있어도 아무 소리 없이 그냥 넘어가주는 것이 신자다운 것입니까?

아닙니다. 문제는 모든 선악의 기준을 하나님께만 두는 것입니다. 절대적 선이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죄로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신자도 싫어하고 미워하며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은 신자도 좋아해야 합니다. 신자가 겉으로만 ‘내 탓이오’라고 도덕적 겸손을 떨기 전에 무엇이 악이고 선인지 분명하게 분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절대적 선이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하는 것이 신자에게 주어진 책임이고 역할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비판하고 판단하고 심판하고 정죄하는 권세는 하나님께만 있음을 알자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이라고 말합니다. 천사장이 모세의 시체를 두고 마귀와 변론을 했다는 것은 유다서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내용입니다. 모세의 시체를 두고 어떤 변론을 했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천사와 마귀라는 극과 극에 위치한 두 존재가 변론을 했다는 사실에 염두를 두어야 합니다.

외경에 보면 마귀가 모세는 살인자이기 때문에 그의 시체에 대한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는 주장을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잘 알려진 이러한 내용을 유다가 인용을 했다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정확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초점은 ‘변론의 내용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마귀와의 변론에서 천사장이 보여준 모습에 있습니다. 천사장은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는 말을 했다고 말합니다. 즉 천사장은 마귀와의 변론에서 마귀를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모든 심판과 판단을 주께 맡겼다는 것입니다. 심판과 판단을 주께 맡겼다는 것은 천사장조차도 심판주의 권위에 복종하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에게서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 없는 것입니다. 복종하는 것 대신 자신을 권위자의 자리에 서 있는 대리자로 내세우며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곧 하늘의 권위자에게 복종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들은 심판하고 판단하는 것 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권세로 여겨버립니다. 심판주가 계시다는 말을 하면서도 심판주의 권세를 자신의 것으로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주는 명목상의 심판주로 만들어 버리고 모든 권세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인 양 행세하는 것입니다.

천사장과 마귀의 변론에서 천사장이 옳은 말을 했을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천사장은 자신이 옳은 말을 한다는 것을 앞장 세워 마귀를 꾸짖거나 판단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사장이라고 해도 판단할 권세는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이 ‘주께서 너를 꾸짖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은 꾸짖을 권세도 자신에게는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이러한데 하물며 신자는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즉 여러분이 알아야 하는 것은 아무리 내가 옳은 말을 하고 상대방이 틀린 말을 한다고 해도 그를 판단하거나 꾸짖을 권세는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상대방의 말이 복음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를 판단하거나 꾸짖을 권세는 없습니다. 상대방의 잘못된 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신자에게 주어진 것은 다만 복음을 증거하는 것까지라는 것입니다. 꾸짖음과 판단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이 아는 복음에 대해 증거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진정한 판단자이신 주님의 권세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자는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권세 앞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그 어떤 지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주어진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권세를 누리는 것에만 마음을 두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목사니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도 하늘의 권세를 무시하는 것이고, 내가 장로니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도 역시 하늘의 권세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늘의 권세를 무시하며 자신의 권세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일 수밖에 없고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는 모습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자가 조심해야 할 것은 ‘나는 옳다’는 생각입니다. 복음을 알고 성경을 바르게 안다는 것을 조건 삼아 자신이 옳다는 기준을 세워두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을 안다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복음에 대해 무지한 사람을 대할 때 은연중 ‘나는 옳다’는 인간적 습성을 앞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그 중심에 있는 신자라면 비록 복음에 무지한 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를 복음을 증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야 합니다. 비록 그가 비복음적인 내용을 주장하며 달려든다 하더라도 신자가 그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이 무엇인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천사는 진리를 알고 권세를 알았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가 꾸짖기를 원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권세를 훼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남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를 훼방하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거짓된 자들은 하나님의 권세를 훼방하는 훼방자일 뿐입니다. 이런 자들은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신의 본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삽니다. 성령에 의해 내가 악한 존재임을 깨닫고, 악한 나에게 주어진 은혜와 긍휼과 사랑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신자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본성을 물린 친 자로 산다는 것이 아니라 본성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악함을 발견케 된다는 것에서 다른 것입니다.

인간이 본성으로 아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본성으로 아는 그것이 악하다는 것을 발견케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권세를 잊지 마십시오. 신자는 그 권세 아래 사는 사람이지 권세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세상에는 그 누구도 권세자는 없습니다. 다만 하늘의 권세에 복종할 사람들만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권세는 세상을 심판하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하늘의 권세 아래 있는 모든 인간은 누구도 타인을 심판할 수 없으며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옳다는 것을 내세워 누군가를 ‘너는 아니야’라고 판단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늘의 권세를 훼방하는 것에 불과할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는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복음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를 선포할 뿐입니다. 꾸짖음이든 판단이든 주께 맡기시고 복음을 증거 하는 이 역할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권세에 복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