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강) 유다서 1:20-21 성령이 있는 자

<본문>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다서 20-21)

<설교>

마지막 때에 있을 것 가운데 하나가 거짓 선지자의 등장입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가 증거하는 것은 다른 예수입니다. 예수로 위장을 하긴 했지만 예수가 아니기에 다른 예수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칫 다른 예수의 정체에 무지함으로써 다른 복음의 길을 가게 된다면 자신은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부인되며 영생과 상관이 없는 존재로 전락될 수 있기에 다른 예수에 대해 분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신자가 성경을 통해 신앙이 무엇이고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끊임없이 알아가며 자신을 점검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진리일 것이라고 무작정 믿어 버립니다. 말씀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자기 생각으로 자신을 믿고 인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진리 아닌 것을 진리로 여길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말씀은 자신을 살피는 도구가 아니라 다만 기독교 교인이기 때문에 옆에 둬야 하고 적당히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만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3절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은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는 것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 산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믿음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졌다는 것은 땅에서는 생산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즉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믿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결국 그것은 믿음을 흉내 낸 가짜일 뿐입니다. 그리고 가짜를 진짜로 여기며 잘못된 길을 가는 무지한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언제는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을 기준으로 하여 분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20-21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말씀합니다.

지난 시간에 성령이 없는 자에 대해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성령이 없는 신앙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참된 신앙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면 성령에서는 무엇이 나오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고, 성령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의 신앙에 담겨 있는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신앙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신앙에는 행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에 행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도덕과 윤리에 일치된 행위가 없을 때 스스로의 신앙을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서 나오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입니다. 갈 5:18절을 보면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행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령은 신자로 하여금 행함이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함으로부터 이끌어 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갈 5:25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성령으로 산다면 성령으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이 행하게 하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행한다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갈 5:26절을 보면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는 말씀을 합니다. 25절의 말씀과 연결하여 이해하면 서로 격동하지 않고 투기하지 않는 것이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격동과 투기는 사람이 헛된 영광을 구하고자 하는데서 발생합니다. 즉 남보다 좋은 것,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그것으로 자신의 영광을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격동과 투기는 모두 성품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함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격동하지 않고 투기하지 않는 성품적인 것을 성령으로 행하는 것으로 언급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성경이 말하는 행함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행하는 행함은 분명히 있되, 우리가 행함이라고 여기는 것, 즉 성경읽기, 기도하기, 주일 지키기, 봉사하기, 십일조 하기 등등의 행함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을 보면 지금의 신자들이 무엇을 놓치고 사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놓쳐 버리고 전혀 중요하지 않는 헛된 것들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주일 잘 지키고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 잘하면 신앙이 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아무리 그러한 열심히 있다고 해도 자기 손에 쥐어진 것을 서로 비교하면서 헛된 영광을 위해 서로 격동하고 투기하고 자랑하고 미워하고 시기한다면 그것은 분명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마음껏 격동하고 투기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믿음으로 사는 것으로 여기고 있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성령은 신자를 율법이 아닌 십자가로 끌어갑니다. 십자가 아래서 이미 죽은 자인 자신을 보게 하고 죽은 자이기에 의가 되는 행함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때문에 의로우신 예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있는 자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힘이기에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되는 것이지 교회 내에 나를 추종하는 세력을 따로 만들고자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야 말로 성령이 없는 것이고, 거짓 선지자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이 없는 자와 성령이 있는 자의 차이는 자신을 무엇을 굳게 세우고자 하는가에 있습니다. 성령이 없는 자는 하나님을 말할 뿐 하나님을 힘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상으로부터 힘을 구하고자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있는 자에는 세상의 힘이 불필요 합니다. 세상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힘이시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의 터 위에 자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믿음위에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아직 과학의 세계에서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하지 못하는 것도 언젠가는 기술이 발달하여 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비록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믿음은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믿음은 믿는 자의 자기 포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착함과 의로움, 행위, 이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는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알 수가 없는데 우리 힘으로 자신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때문에 선물의 의미를 안다면 믿음이 있는 자는 자신의 의를 보지 않게 됩니다. 유다서는 이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라고 말합니다. 이 믿음 위에서 지어져 가라는 것입니다.

참되 믿음 위에서 지어져 가는 신자에게서는 무엇이 보이겠습니까?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고 오히려 힘없음을 자랑하는 것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자신을 굳게 세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만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굳게 세워지고 이런 나를 위해 자신이 힘으로 여기는 것들을 차라리 꺾어 달라고 기도하는 이것이야 말로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사랑과 긍휼로 그의 속이 채워진 자로서 감사와 기쁨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흉내 낼 수도 없고 우리의 실력으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서만 이러한 믿음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께 성령을 주셨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끌어 들이기 위함입니다. 사랑과 긍휼로 감사하는 것이야 말로 성령으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