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7:7-13 나를 위하여

사람이 그리스도의 죄사함을 모를 때 나타나는 현상은 참으로 여러 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실수를 했을 때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려고 하는 모습이 있을 수 있고, 복을 얻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모든 불의함과 허물을 가리신 죄사함의 은혜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자신의 노력과 정성으로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지난주에 말씀 한 대로 당시 이스라엘은 왕이 없음으로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들 안에서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분이 없었기 때문에,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보여지는 것은 각기 자기들의 생각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묻는다는 것도 없습니다. 내 생각에 옳으면 옳은 것으로 여겨버린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에게서 보여진 것이 제사장을 사사로이 세운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미가의 어머니가 아들인 미가의 복을 위해서 집에 신당을 세우고 신상을 둡니다. 그리고 신당을 책임지고 하나님에게 복을 빌 제사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제사장은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하나님에게 나아가 복을 빌어주는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제사장이 있어야 우리 가정을 위해서 복을 빌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미가의 가정에 나타난 사람이 유다 가족에 속한 레위인이었습니다. 제사장이 될 자격은 레위인에게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가의 가정에 레위인이 나타난 것은 참으로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레위인은 자신이 거할 것을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 다니고 있던 차였습니다. 즉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살 곳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안 미가는 그 레위인과 계약을 합니다. 이것이 10절에 나옵니다.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리라 하므로 레위인이 들어갔더니"라는 말을 보면 미가는 그 레위인에게 일년에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약속합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연봉 얼마에 해마다 양복을 제공하고 양식도 주겠다는 것입니다. 거할 곳을 찾아다니던 레위인에게는 참으로 구미가 당기는 제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은 미가의 가정에 제사장이 되기로 작정합니다. 그리고 미가의 가정을 위해서 복을 비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오직 자신의 생계와 복이 최우선이었습니다. 떠돌아다니는 레위인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거할 곳이 없는 형편에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든 거할 곳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 레위인에게는 옳은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미가의 가정은 복이 최우선이었습니다. 아들이 범인인줄 모르고 돈 훔쳐간 자를 마음껏 저주한 상황에서 아들에게 저주가 떨어지지 않고 복받고 살아가는 것이 미가의 어머니에게는 옳은 생각이었습니다. 이러한 소견에서 나오는 것이 자기 복을 위해서 개인을 위한 제사장을 채용하고, 레위인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미가의 집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레위인은 오직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할 자로 택함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성에서 기거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레위인에게는 여섯 도피성과 40여 개의 성읍을 각 지파에서 떼어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시대에 이스라엘은 이 말씀을 지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레위인을 위해서 도피성을 내어 주고 40여 개의 성읍을 떼어 준다는 것은 자기 소유가 감소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또한 레위인을 위해서 식물을 공급해야 하는 규례도 지켜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레위인은 생계에 위협을 느끼게 되고 자연히 스스로 기거할 곳을 찾아 헤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미가의 집에서 해마다 은과 옷과 양식을 약속을 하자 미가의 집을 위한 제사장으로 눌러 앉게 된 것입니다. 결국 왕이 없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은 몇몇 사람의 타락의 모습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 레위인까지 퍼져 있던 신앙의 타락이었던 것입니다.

한 가정에서 제사장 노릇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규례에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레위인은 오직 성전에서만 봉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섬기고 희생하는 것이 레위인인데 본문에 등장하는 레위인은 자기 생계를 위해서 결국 한 가정의 복을 위해 하나님에게 빌어주는 일을 하는 제사장 아닌 제사장직을 수락한 것입니다. 물론 그 레위인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해마다 제공하겠다는 미가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생계가 레위인으로 선택받은 자로서 해야 할 하나님의 일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 레위인에게는 옳은 소견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가의 가정 역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 가정의 복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은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은 무시하고 자신들에게 옳다고 생각되는 원칙을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원칙이 어떻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쉽게 자기 원칙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원칙은 우리의 생계와는 관계가 없는 것인 반면에 우리들의 원칙은 생계를 지키기 위한 기본적인 틀에서 세우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레위인이나 미가의 가정에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다면 과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들의 실책을 깨닫고 돌이키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고집하려고 한다면 결국 그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령 레위인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면 내 생계가 곤란해지는데 어떻게 합니까?'라는 반발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미가의 가정은 나름대로 생계가 곤란해진 제사장을 우리가 책임진다는 것이고 다만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달라는 것뿐인데 그것이 뭐 그리 잘못된 것인가?'라는 반발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원칙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입장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항상 내 입장이라는 것을 버리지를 못합니다. 내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니까 자신의 행동이 항상 옳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하고 하나님도 이해하실 것이라고 스스로 자문자답하면서 자기 소견대로 행한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왕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절대적입니다. 왕의 말 앞에서 신하된 자는 자기 입장을 내세워서 거부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입장보다는 왕의 지시와 명령이 더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왕과 신하의 관계입니다. 신하된 자의 행동은 왕의 명령이 기준입니다. 명령을 따라가는 것이 곧 신하된 자의 행동인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지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입장을 근거로 해서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분명히 할 것은 하나님과 신자된 저와 여러분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섬겨주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우리 마음대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는 이미 신자의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다만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고 교회를 찾아 나오는 불신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에게서 보여지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과 고집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택하셨습니다. 이것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는 것을 인정하신다면 이제 여러분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원칙을 세워가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의 입장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을 세상에 증거하고 나타내야 할 사람입니다. 비록 내 입장에서는 나에게 손해가 되고 참아야 하고 내 감정 기분과 반대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여러분의 자기 소견이 하나님의 원칙과 말씀을 세우는데 방해가 되고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여러분 자신의 소견을 포기하고자 하는 것이 신자로서 마땅한 것입니다.

미가의 가정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을 우리 가정의 제사장으로 세웠으니까 이제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복을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자신을 대리하는 대리자로 레위인을 세운 것입니다. 레위인은 자신들과 다른 특별한 위치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레위인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복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복은 희생 제물의 피를 통해서 주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지금으로 말하면 복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가의 가정이 하나님의 원칙을 알았다면 자신들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하는 제물의 피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를 깨달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미가의 가정은 그러한 것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윤택해지는 것과 전혀 연관이 없는 원칙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자라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죄사함에 흥미를 두지 않는 이유도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죄사함이 천국을 약속할 뿐 세상에서의 삶의 윤택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죄사함보다는 자기 복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죄사함의 은혜가 없는 사람들은 항상 복을 얻기 위해서 여러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가의 가정이 자기 가정을 위해서 제사장을 세우는 것처럼 목사에게 잘하면 자신에게 복이 주어지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을 세워서 복받겠다는 것은 제물의 희생의 피를 모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모른 사람은 항상 자신의 노력과 정성을 통해서 복을 얻고자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13절의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는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말하면서도 '주님의 은혜만 말하니까 하나님이 복주시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칙이나 말씀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생각에 맞다고 여겨지면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 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면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길을 떠나서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신자의 참된 도리입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은 성경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나에게 손해가 되고 불편을 가져오고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거부하겠다는 그런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말씀을 보면서 '나는 이 말씀의 지시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언젠가 말씀드린 대로 성경을 소설책을 대하듯 대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읽는 책이 아니라 우리에게 말씀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 속마음에 능력으로 권위로 자리해서 우리를 간섭하고 틀린 것은 책망하면서 저와 여러분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마치 책을 대하듯 한다면 이미 그 마음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려는 의도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아무리 성경을 읽는다고 해도 보여지는 것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뿐일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청지기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맡은 자로서 주어진 것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인생의 풍요로움만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통 거기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교회는 다닙니다. 천국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죄사함과 상관없이, 기독교란 종교를 포기하기 싫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지 다시 생각해 봅시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자 하는 깊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