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마 12:1-13) - 19강

옛날부터 사람들은 신성한 것과 신성하지 못한 것, 즉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못한 것을 구별하여 왔습니다. 어떤 특정한 장소, 즉 조상신을 모시는 장소나 신에게 제사드리는 곳, 또는 신과 연관된 어떤 기물을 보관하는 곳 등을 신성한 곳으로 규정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특정한 사람도 거룩한 존재로 여겨왔습니다. 이 거룩한 존재는 신과 연관이 있으며 인간과 신의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특정한 시간 역시 거룩한 시간으로 여겼습니다. 이 특정한 시간이란 신에게 제사드리는 시간을 말합니다. 그 시간만큼은 신과 교통하고 있는 순간이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종교심이었고 그 종교심이 세상에서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못한 것을 구별하여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에서는 공통적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는 어떻습니까? 지금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이것과 하등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하는 장소인 예배당을 거룩하다, 신성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예배당에 비치되어 있는 기물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쓰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만지면 안된다거나 하면서 기물을 신성시할려는 의도나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를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서 대리자의 역할을 하는 거룩한 인물로 여긴다거나 특정한 날, 즉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기 때문에 거룩한 날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옛날 바리새인들에서도 보여졌던 종교심입니다. 바리새인들도 특정한 건물인 성전을 거룩시 했고, 그 성전에서 쓰여졌던 기물을 거룩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라는 특정한 날을 거룩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부정하셨고 결국 이런 문제로 인해서 바리새인과 예수님을 첨예한 대립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성전이라고 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거룩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을 공격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의 주인은 인자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여기고 여러 가지 규례를 스스로 정해서 소위 안식일을 지키고자 하는 것도 공격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바리새인의 모습은 우리들에게서 얼마든지 보여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대신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면서 거룩한 곳으로 여기는 것이나 목사를 제사장이라고 부르면서 거룩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나, 신약에는 안식일 대신 주일이 주어졌다고 하면서 주일을 거룩한 날로 여기는 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 가운데서 오늘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안식일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식일 문제는 지금도 소위 주일성수라고 하면서 주일이라는 특정한 날을 지킬 것을 교회가 요구하고 있음으로서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바리새인을 공격하셨다면 지금도 이 말씀을 통해서 주일을 지킨다고 하는 교회인을 공격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공격하신 것은 특정한 날이 거룩한 것이 아님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이지 '안식일이 거룩하지 않고 주일이 거룩하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안식일 말고 주일을 지켜라'는 의도로 안식일을 지키는 바리새인을 공격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봐도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란 무엇이다를 말씀하고 있지 안식일은 일주일 중 첫날이다 아니면 마지막날이다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되었다는 근거를 제시할 구절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날에 그토록 집착을 하는 것은 어느 한 날을 거룩한 날로 정해서 그 날을 지킴으로 자신들도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성수라는 것도 이런 개념에서 나온 말입니다. 주일을 지킴으로 신자다워지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을 주일답게 더 잘 지키기 위해서 성경에 없는 여러 규례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세상은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구별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지막때 거룩한 것은 남기시고 거룩하지 못한 것은 모두 심판해 버리실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고, 오늘 우리들이 과연 거룩한가 거룩하지 못한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안식일이라는, 주일이라는 특정한 날을 지킴으로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도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먹은 것을 안식일을 범한 것으로 말합니다. 즉 이삭을 잘라먹은 것을 안식일에 일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날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구약의 모든 규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항해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모든 규례의 의미가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구약의 규례의 의미가 완성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십자가 이후에는 어떤 규례라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가 주일을 안식일이라고 하면서 특정한 날에 대한 규례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무시하는 처사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이후에는 안식일이라는 특정한 날은 없습니다. 따라서 주일이라는 특정한 날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신자가 어느 한 날을 통해서 거룩해진다거나, 복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십자가와 연관이 있는 것이지 결코 특정한 날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안식일이 어떤 날이냐라고 묻지 말고, 안식일이 누구냐라고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시간이 아니라 인격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을 감사하기 위해서 자기 일을 쉬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일해서 얻어진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셔서 얻어진 구원을 감사하면서 예배드리기 위해서 우리의 일을 쉬는 것입니다. 즉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가리켜서 한 말이지 우리가 안식일에 일을 안했다는 것으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해도 다 더러운 것입니다. 더럽지 않고 거룩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만이 거룩합니다. 심지어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하는 예배 행위도 모두 더러운 것입니다. 단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자신의 더러움을 고백하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가 나를 살린다는 것을 알 때 주님의 거룩한 피로 인해서 내가 거룩한 존재로 여김 받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피를 말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예배 행위 때문에 주일을 지켰다고 생각하거나, 헌금 때문에 자기에게 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님의 피를 말은 하면서도 결국 피를 모독한 것이 되기 때문에 그 예배 행위는 더러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 드렸다고 주일 지킨 것이 아닙니다. 7절에 보면 예수님은 주일을 지킬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고 하십니다. 제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원하십니다. 즉 하나님께 나와서 내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임을 알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그 마음,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그 마음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날마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는 더러운 존재이고, 부정한 존재인데 이런 나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리셨다는 것을 알고 그 피안에서만 나는 거룩한 존재로 여김 받을 수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이런 마음으로 살 때 그것이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구하는 인간을 거룩한 인간으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비를 원하는 그 마음에만 자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주일성수라는 것은 유대교의 모습을 그대로 이어 받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어떤 문제를 가지고 공박을 하였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에도 오늘이 주일인데 이런것하면 되느냐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장사를 안하고 일을 안하는 것으로 주일을 지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바리새인들을 공격하셨다면 오늘 예수님은 주일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여러분들을 공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특정한 날에 예배드리고 일을 안했다고 해서 거룩해지거나 복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날마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사느냐를 보시는 것입니다. 자비를 구한다는 것은 자기가 더러운 존재임을 안다는 것입니다. 내가 더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뭘해도 그것은 더러운 것이고, 자랑스러운 것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그 자를 거룩한 자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특정한 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안에서 산다면 그것이 곧 안식일이고 날마다 주일을 지키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안에 있지도 않으면서, 날마다 자기를 위해 살고 몸을 위해서 모든 힘을 쏟고 있으면서 한 날, 즉 주일에 예배당에 와서 예배드리고 헌금하는 것으로 신자되고 복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무시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함과 복은 십자가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날도 신자가 십자가 안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날마다 세상에 대한 자기는 죽고 의에 대한 자로서 사는 것이 곧 거룩이며 그것이 곧 복입니다.

12절을 보면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안식일에는 선한 일, 즉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인 일을 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 아닙니다. 선한 일은 예수님이 하신 생명을 찾는 일 외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신자가 예수님 안에서 살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보임으로 또 다른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가는 삶이 곧 신자가 할 일이고 그것이 안식일에 하는 선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예배 그 자체가 아닙니다. 헌금도 아닙니다. 자신이 더러운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의 자비를 원하는 그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 사람을 거룩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자리할 공간이 없습니다. 자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복을 원하는 마음이 가득차 있고, 자기몸을 위해서 오히려 십자가를 멀리하는 모습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알고 자비를 원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이 여러분들 마음에 함께 하시고 그 예수님과 더불어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안식일입니다.